“유럽연합(EU)은 1년에 550억 유로(약 78조7000억 원)의 통신망 투자를 하고 있는데, 빅테크(대형 첨단기술 기업)의 투자액은 10억 유로에 불과하다.”
리세 푸르 유럽통신사업자협회(ETNO) 사무총장은 8일 서울 강남구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 세계) 빅테크는 통신망 투자에 공정한 기여 없이 이익을 누리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푸르 사무총장은 세계통신사업자연합회(GSMA)가 서울에서 주최한 ‘모바일360 아시아태평앙(M360 APAC)’의 망 사용료 관련 토론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지 않으면 인터넷 생태계는 망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 지역 40여 개 통신사와 장비 제조사가 모인 ETNO와 국내 통신업계를 대변하는 KTOA는 최근 망 사용료 부과 관련 규제 도입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독점 수준의 시장 점유율로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빅테크를 대상으로 규제를 도입하려면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ETNO는 트래픽 발생 기준으로 5% 이상을 차지하는 구글 등 최대 8개의 빅테크가 망 사용료를 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TNO와 KTOA는 지난달 31일 공동 성명서를 내 “전 세계 모든 이용자가 디지털 혁신의 과실을 누릴 수 있도록 하려면 각국이 합리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디지털 시장에서 미국 기업에 영향력을 내준 EU는 전 세계에서 가장 강도 높은 빅테크 규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빅테크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통신망 부담은 커지는 만큼 규제를 통한 망 사용료 계약 의무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푸르 사무총장은 “빅테크가 과거엔 약간의 망 사용료를 내다가 (통신 사업자보다) 규모가 커지면서 불균형이 발생했다”며 “규제를 통해 이러한 상황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선 SK브로드밴드가 미국 넷플릭스에 망 사용료를 요구했다가 응하지 않자 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에 재정(중재) 신청을 내며 분쟁이 시작됐다. 넷플릭스는 중재를 거부한 뒤 망 사용료를 낼 의무가 없다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했다가 2021년 6월 1심에서 패소했다. 넷플릭스의 항소와 SK브로드밴드의 반소(같은 소송에서 피고가 원고에게 새로운 청구)로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국회엔 빅테크 등 인터넷 사업자의 망 사용료 계약 체결 등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 8건이 발의된 상태다. KTOA 관계자는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트래픽이 급격히 늘어난 상황에서 ETNO 등 해외 기관과 협력해 정책 대안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인터넷 사업자와 비영리단체 등은 망 사용료 부과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규제가 일반 이용자들의 피해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로 반박하고 있다. 그레그 피터스 넷플릭스 공동대표는 올해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3에서 “이용자들이 통신사에 통신요금을 내는 것이 통신망 개발을 위한 비용을 내는 것”이라며 “회사들도 돈을 내라는 것은 비용을 두 번 청구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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