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가 의사이면서도 인공지능(AI) 등 공학 지식까지 갖춘 의사과학자 양성에 나섰다. KAIST는 공학과 의학 두 영역에 대한 지식을 갖춘 의사과학자를 육성하기 위해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과기의전원)을 설립하겠다고 12일 밝혔다.
KAIST는 의사 자격이 없는 일반 학생을 모집해 4년간 의무석사 과정과 추가 4년의 박사 과정을 거치게 할 계획이다. 의무석사 과정에선 기초임상, 공학 등을 배우고, 박사 과정에서는 깊이 있는 과학 및 공학 과정을 습득하게끔 한다. 포스텍도 2021년 말 공학 기반의 의사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연구중심 의학전문대학원’을 설립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한국에서 임상의가 아닌 과학자의 길을 걷는 의사는 전체의 1% 미만이다.
하지만 실제 과기의전원을 설립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18년째 유지되고 있는 의대 정원이 늘어나야 한다. 의료계의 반발도 변수다. 의료계는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해선 의전원 설립보다 보건의료 환경을 개선해 의사가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KAIST가 정말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 싶으면 이미 활동 중인 의사들이 과학자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육성 정책에 힘을 보태는 게 낫다”고 말했다.
“AI-데이터 활용할 ‘의사과학자’ 양성” “결국 진료의사 될 것”
KAIST “2026년 과기의전원 설립” 포스텍도 ‘연구 의전원’ 설립 계획 복지부 “KAIST와 협의 한 적 없다” 의대 신설보단 정원 확대에 무게
“의사는 앞으로 병원 진료뿐 아니라 병원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공하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결국 ‘의사과학자’가 필요합니다.”
KAIST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과기의전원) 설립을 주도하고 있는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12일 의사과학자의 필요성을 이같이 설명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이용한 병 진단, 치료제 개발이 일상화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선 의사이면서 과학자인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 AI 공부한 의사 키우려는 KAIST, 포스텍
2021년 이광형 총장 취임 이후 과기의전원 설립 의지를 지속적으로 드러냈던 KAIST는 앞서 2004년부터 의과학대학원을 설립해 184명의 의사과학자를 길러냈다. 의사자격증을 취득한 이들을 신입생으로 맞아 공학 지식을 가르쳤다. 이미 의사였기에 생명과학 분야에서 성과를 냈지만 공학 분야에선 성과가 약했다. 과기의전원은 의사 자격이 없는 일반 학생을 모집해 8년간 의학과 과학을 모두 가르친다는 계획이다.
김 교수는 “(임상 중심의) 의대 교육을 마친 이들이 공대 박사 과정을 밟기는 쉽지 않다. (교육 과정에서) 공학 지식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공부를 가르치는 첫 단계부터 공학적 마인드를 갖게 하겠다는 것이다. 2026년부터 신입생을 맞는다는 게 KAIST의 목표다.
포스텍도 2021년 말 난치병, 인공장기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기 위한 공학 기반의 의사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연구 중심 의학전문대학원’ 설립 계획을 밝혔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자체 의전원 설립은 아니지만 울산대 의대와 협력해 상호 수업을 들을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의학과 과학 지식을 모두 갖추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의사과학자 등 융복합 인재 양성은 윤석열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윤 대통령은 2월 대전 KAIST 캠퍼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KAIST 의사과학자 양성을 적극 지원하겠다”며 힘을 실어준 바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6월 바이오 특화 AI대학원 신설, 의과대 내 의료 AI 정규 과정을 개설해 융합인재를 양성하고, 세계적 수준의 의사과학자를 키우겠다는 지원책을 내놨다.
● 의료계 “의대 신설보단 연구환경 개선을”
KAIST 등이 추진하는 과기의전원을 설립하려면 의대 정원 확대가 필수적이다. 현재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18년간 3058명을 유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KAIST의 과기의전원 설립 계획에 대해 “협의된 바 없다”고 밝혔다. 현재 고교 2학년생이 대학에 입학하는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복지부는 의대를 새로 만들기보단 기존 의대 정원을 늘리는 방안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의료계에선 의사과학자를 육성할 별도의 의대를 신설하기보다는 의사가 보건의료 분야를 계속 연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NTIS)에 따르면 2021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27조4005억 원 가운데 병원에 투입된 금액은 1499억 원(0.5%)에 그쳤다. 보건의료 투자가 열악한 상황에선 공학을 전공한 의사도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 분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박은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의사과학자를 키운다는 취지 자체는 좋지만, 졸업 후에도 연구를 지속하도록 할 방편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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