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가족여행 표 취소 등 시민 불편
노조 “KTX-SRT분리, 민영화 포석”
정부 “민영화 검토안해… 정당성 없어”
양측 대치에 파업 장기화 우려도
경기 광명에서 서울 강남으로 출근하는 직장인 김모 씨(28)는 14일 오전 9시부터 전국철도노동조합(철도노조)이 총파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섰다. 그는 “다들 일찍 출근한 건지 열차를 한 대 보내고 두 번째에 겨우 탔다”며 “신도림역과 사당역에서 승객이 몰려 숨을 못 쉴 정도였다”고 했다. 퇴근길에도 혼잡은 이어졌다. 지하철 1호선에 승객들이 가득 찼고, 일부 역에선 승객들이 열차를 여러 대 보낸 후에야 겨우 탔다.
서울 도봉구에 거주하는 김모 씨(71)는 주말에 부산으로 가족여행을 가려고 예매했던 KTX 표를 취소하고 고속버스 표를 끊었다. 그는 “KTX로 가면 2시간 반이면 도착하는데 버스로 가면 2배 정도 걸린다”며 “여행 마치고 올 때 피곤할 텐데 오랜 시간 버스를 타면 불편할 것 같다”고 했다.
철도노조가 이날부터 17일까지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하면서 열차 지연 등으로 시민 불편이 커졌다. 철도노조는 KTX의 수서행 운행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는 협상 대상이 아닌 만큼 파업 명분이 못 된다는 입장이다. 철도노조는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2, 3차 파업도 고려한다는 계획이어서 추석을 앞두고 ‘교통 대란’ 우려가 나온다.
● 철도노조 “수서행 KTX 운행, 4조 2교대 시행”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따르면 이날 수도권 전철과 KTX 열차 운행률은 평시 대비 각각 83%와 76.4%까지 떨어졌다. 화물열차는 평시 대비 26.3%로 운행해 시멘트 출하에 일부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수서행 KTX 운행이 이번 총파업의 핵심 쟁점이다. 국토교통부는 SRT(수서고속철도) 노선을 이달 1일부터 경전·전라·동해선으로 확대하면서 SRT의 수서∼부산 노선을 11.2%(4920석) 감축했다. 그 대신 서울∼부산 노선 KTX를 왕복 3회 증편했다. 철도노조는 증편된 KTX 열차의 종착지를 서울이 아닌 수서로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철도노조는 수서역 기반 SRT와 서울역 기반 KTX의 분리 운영 자체를 ‘철도 민영화’를 위한 포석으로 본다. 분리 운영으로 코레일 수익성이 악화할 경우 SR을 민간에 매각할 수 있다는 것. 철도 사고가 이어지며 철도 유지·보수 기능을 코레일에서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민영화 시도로 해석한다.
또 철도노조는 연속 이틀 야간 근무를 없애기 위한 4조 2교대 근무체계 전면 시행도 요구하고 있다. 기본급 월 29만2000원 인상 역시 교섭 내용에 포함돼 있다.
● 국토부 “수서행 KTX 비현실적, 철도 민영화 검토한 바 없어”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수서행 KTX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뿐더러 이는 철도노조와의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수서행 KTX 운행은 철도 경쟁 체제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코레일과 SR의 선로 사용료와 운임체계가 달라 동일 노선에서도 운행 비용이 달라져 이용객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4조 2교대 전면 시행은 한국교통안전공단 연구용역을 통해 검토한 뒤 결정할 예정이다.
기본급 인상 요구는 코레일이 적자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이날 코레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코레일은 2025년까지 3년간 1조2089억 원이 넘는 당기순적자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한문희 코레일 사장은 이날 “이번 파업은 정부 정책 사항을 핵심 목적으로 해서 정당성이 없다”며 “불법 행위에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철도노조가 지켜야 할 자리는 정치 투쟁의 싸움터가 아니라 국민의 일상을 지키는 일터인 철도 현장”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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