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보다 많은 14억명의 세계 1위 인구 대국이자, GDP 기준 세계 5위의 경제 대국. 요즘 인도가 가장 유망한 신흥국 중 하나로 주목받습니다. 특히 인구가 젊기 때문에(중위 연령 28세) 소비시장이 빠르게 성장한다는 점이 큰 기회요인이죠.
이런 성장의 중심엔 모디 정부의 ‘디지털 인디아’ 정책이 있습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혁명’을 속도감 있게 이끌고 있는데요. 디지털에 진심인 인도 정부는 최근엔 직접 나서서 ‘수수료 제로’의 온라인 쇼핑 판을 깔아버렸습니다. 아마존·월마트 같은 외국 플랫폼이 장악한 전자상거래 시장에 정부가 도전장을 내밀었죠. 인도의 국가 주도 모바일 혁명을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조마토에서 주문하지 마세요! ONDC와 조마토의 음식 가격 차이는 충격적입니다. 최대 50%까지 차이 납니다!”
지난 5월 구독자 수 300만명이 넘는 인도의 유명 유튜버가 이런 트윗을 올렸습니다. 인도의 대표 배달앱 조마토(Zomato)나 스위기(Swiggy)와 비교할 때 ONDC에선 훨씬 싸게 주문할 수 있다는 ‘재테크 꿀팁’이었죠. 바로 ‘ONDC는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댓글이 줄을 이었는데요. 비슷한 트윗이 이어지고 관련 기사까지 쏟아져 나오면서 ONDC가 인도 소비자들의 큰 관심거리로 떠올랐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ONDC가 인도의 새로운 배달앱인가 하실 텐데요. ONDC는 앱이 아닙니다. 그 어떤 플랫폼도 아니죠. 그럼 뭐냐. ‘Open Network for Digital Commerce’, 즉 디지털 상거래를 위한 개방형 네트워크입니다.
인도 정부 주도로 만든 ONDC는 지난해 9월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했는데요. 온라인 쇼핑 세계를 통합하는 거대한 연결망이라고 보면 됩니다. 수십 개의 쇼핑 앱을 하나로 묶어서, 구매자·판매자가 어떤 앱을 이용하든 상관없이 물건을 사고팔 수 있게 판을 깔아준 겁니다. 예컨대 소비자가 페이티엠(Paytm)이든 마이스토어(Mystore)이든 어떤 앱이나 접속해도 ‘ONDC’ 카테고리만 선택하면 여기 연결된 판매자들 제품을 주문할 수 있습니다. 한국으로 비유하자면 무신사와 쓱닷컴에서 판매 중인 제품을 토스 앱에서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것과 비슷하죠.
ONDC로 온라인 주문할 수 있는 품목은 엄청나게 다양합니다. 옷이나 생활용품은 물론 음식 배달과 택시(삼륜차) 서비스까지 가능하죠(도시마다 이용 항목이 다름). 특히 음식 주문과 택시 분야에서 ONDC가 상당히 주목받고 있는데요. 배달앱 조마토와 스위기는 물론, 인도 차량공유 서비스의 지배적 사업자인 우버(Uber)와 올라(Ola)의 지위까지 조금씩 흔들리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ONDC는 현재 수수료가 공짜이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쇼핑몰이 판매자에게서 떼는 수수료 비율은 상당하죠. 인도에서 배달앱의 경우엔 수수료율이 25~30%라는데요. 이걸 공짜로 했으니 엄청난 메리트인 겁니다. 다만 수수료가 앞으로도 쭉 제로인 건 아닐 겁니다. 비영리조직인 ONDC는 지금 주주(주로 은행들) 자금으로 운영되는데요. ONDC 측은 언젠가는 운영 자금 마련을 위해 수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밝혔습니다. 물론 그래도 일반 쇼핑몰보다는 훨씬 낮을 겁니다.
탈아마존=전자상거래의 민주화?
인도 정부는 왜 이렇게까지 전자상거래에 진심일까요. ONDC를 출시하면서 정부가 내건 슬로건은 ‘전자상거래의 민주화’였습니다.
인도의 전자상거래 시장은 빠르게 성장 중입니다. 이미 세계 7위 규모이죠. 온라인 쇼핑 이용자는 2억2000만명으로 추산됩니다. 스마트폰 확산에 힘입어 2019년 이후 7배로 늘어났죠.
급성장 중인 이 시장에서 가장 큰 업체는 플립카트(Flipkart)와 아마존(Amazon)입니다. 지난해 시장점유율이 각각 48%와 26%로 합치면 74%나 되죠. 플립카트는 지난 2018년 월마트가 인수했습니다. 사실상 월마트와 아마존이란 미국 기업이 인도 전자상거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겁니다.
외국 기업이 온라인쇼핑 시장을 장악하면 민주화에 저해될까요? 인도 정부 판단으론 그렇습니다. 현재 시장은 약탈적 가격 책정과 편향된 알고리즘 때문에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 불리하다고 보는 건데요. ONDC라는 ‘공정한 경쟁’의 판을 만들어서 인도의 1억 개 중소기업을 전자상거래 세상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입니다. 상당히 이상주의적 발상인데요. 힌두스탄타임스는 기사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소규모 가내수공업 민속 의류 제조업체가 ONDC 네트워크에 들어오면 기존 온라인쇼핑 플랫폼이 부과하던 막대한 수수료 없이 전 세계 고객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이죠. 주문량이 하루 평균 1만3000건, 등록된 판매자 수는 3만9000명 정도로 아직은 규모가 크진 않습니다. 과연 ‘네트워크 효과’를 일으킬 정도로 사용자 수가 증가할 수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하죠.
플립카트나 아마존과 비교할 때 약점도 뚜렷합니다. 사실 온라인 쇼핑 앱을 선택할 땐 싸고 좋은 물건이 많으냐도 중요하지만 앱이 쓰기 편한지, 할인 혜택 등 이벤트가 많은지도 중요하거든요. ONDC는 이 부분에서 민간 유통사에 비해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거 혹시 한국의 공공배달앱처럼 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사실 드는데요. 정부가 만든 서비스가 민간 영역, 그것도 온라인 유통이라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시장에서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요. 하지만 의외로 인도에서는 ONDC가 어쩌면 전자상거래 시장의 판을 바꿀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꽤 있습니다. 이미 인도 정부가 디지털 시장에 뛰어들어서 대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바로 인도인의 결제 생활을 혁명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킨 UPI(Unified Payments Interface)입니다.
모바일 결제는 단연 세계 1위
인도에서는 거리 곳곳에서 OR코드를 만날 수 있습니다. 길거리 이발소 옆 나무에도, 과일 노점상 카트나 담배 가판대 위에도 OR코드가 붙어있죠. 현금 대신 스마트폰으로 OR코드를 찍어 결제하라는 겁니다.
이 QR코드를 이용한 모바일 결제를 가능하게 한 시스템이 UPI입니다. 인도 중앙은행 산하의 국립결제공사가 2016년 출시했죠. 은행 계좌만 있으면 누구나 실시간으로 돈을 주고 받을 수 있게 했는데요. 한국의 토스나 카카오페이 결제와 비슷합니다.
UPI를 이용한 결제 건수는 지난 8월 100억 건을 돌파했습니다. 올 1월에만 해도 80억 건이었는데 불과 몇 달 새 25%나 급증했죠. 인도에선 이미 3억명의 개인과 5000만 개의 가맹점이 UPI 시스템을 사용 중입니다. 참고로 UPI를 포함한 실시간 디지털 결제 건수에서 인도는 단연 세계 1위(중국의 약 3배)이죠.
인도 상인들이 UPI 결제를 선호하는 건 간편하기 때문입니다. UPI 결제를 위해 상인들이 필요한 건 QR코드를 인쇄한 종이뿐입니다. 비싼 POS 단말기 같은 건 필요 없죠. 게다가 결제가 완료되면 스마트폰 음성 서비스로 얼마가 입금됐는지 바로 알려주기 때문에 현금 세는 것보다 편리합니다.
게다가 무엇보다 UPI는 수수료가 공짜입니다.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수수료를 내지 않죠. 대신 정부가 은행에 UPI 서비스 관련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운영합니다. UPI가 신용카드를 제치고 인도의 디지털 결제 시장을 평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죠(디지털 결제 시장의 69% 차지). UPI는 인도를 단번에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하게 한 결제 혁명이었습니다.
닐레카니는 다 계획이 있다
인도 정부는 어떻게 UPI와 ONDC 같은 대담한 디지털 공공 인프라 구축을 구상하고 실행에 나섰을까요. 그 뒤에는 인도의 IT 거물, 난단 닐레카니 인포시스 회장(공동 창업자, 2002~2007년 CEO 재임)이 있습니다.
인도 정부는 2009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생체인식 ID 시스템 ‘아드하르(Aadhaar)’를 도입했는데요. 아드하르 개발을 위한 정부 기관의 수장을 맡아 이를 진두지휘한 주역이 바로 닐레카니 회장이었습니다. 아드하르는 한국의 주민등록증에 홍채 스캔을 추가한 건데요. 당연히 도입 당시 개인 사생활 침해라는 엄청난 반대 여론이 들고 일어났죠. 하지만 이를 뚫고 지금은 인도의 성인 99%가 아드하르 식별번호를 보유 중입니다.
아드하르는 인도 디지털 혁명의 시작이었습니다. 이게 있었기 때문에 인도의 은행 계좌 보유율이 9년 만에 20%에서 80%로 뛰었고요. 덕분에 QR 결제 같은 모바일 결제가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겁니다.
이후에도 닐레카니 회장은 모디 정부의 굳건한 신임을 얻으며 기술적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UPI 도입과 ONDC 설립 역시 그의 작품입니다.
인도의 미래 비전을 기술로 구현해 낸 닐레카니 회장은 인도에서 큰 존경 받는 인물입니다. “세계가 인도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변화시킨 인물”이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인데요. 세계를 놀라게 했던 그의 이전 대형 프로젝트처럼 ONDC 역시 새 역사를 쓰게 될까요.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닐레카니가 하는 일이니까 이번에도 왠지 잘 될 것만 같다’는 기대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닐레카니 회장은 지난 6일 한 연설에서 ‘디지털 인디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인도는 모바일 솔루션과 디지털 자본을 통해 ‘오프라인 비공식 저생산성 경제’에서 ‘온라인 공식 고생산성 경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20년 동안 인도 경제는 엄청난 ‘공식화’를 이룰 겁니다.” 인도엔 20년 앞을 내다보고 움직이는 기술 리더십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인도의 강점이 아닐까 싶군요. By. 딥다이브
인도의 모바일 혁명 이야기는 지난해 10월에도 전해드린 적 있죠(딥다이브 인도경제편). 오늘은 좀더 자세히 들여다봤는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인도 정부가 수십개의 쇼핑몰을 하나로 연결하는 ‘ONDC’라는 이름의 거대 온라인 쇼핑 네트워크를 깔았습니다. 아마존과 월마트가 장악한 인도 전자상거래 시장을 민주화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참여시키겠다는 구상입니다.
-‘수수료 제로’의 온라인 쇼핑에 소비자들은 환호합니다. 아직 규모는 작지만 과거 정부 주도의 디지털 혁신처럼 이번에도 판을 바꿀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이미 인도 정부는 생체인식 인증 시스템인 ‘아다하르’와 OR코드 결제 시스템 ‘UPI’를 성공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를 진두지휘했던 난단 닐레카니 인포시스 회장이 ONDC도 밀고 있는데요. 강력한 기술 리더십을 가진 인도의 ‘디지털 인디아’ 스토리는 계속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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