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유관기관 간 불공정거래 대응체계 개편
자산동결로 추가범죄·재산은닉 막고, 10년간 금융거래도 제한
금융당국이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대책에 초강수를 뒀다. 정부와 유관기관 간 상시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증권범죄자에 대한 자산을 신속하게 동결하는 등 구속력 있는 제재 방안을 내놓았다. 라덕연 사태 등 대규모 주가조작 사건이 불거지고 금융당국이 이를 사전에 막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오자, 통렬한 반성의 일환으로 전방위적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라덕연 사태 쇼크에…금융당국, 대응 체계 개편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서울남부지검·한국거래소와 함께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대응체계’를 발표했다. 대규모 불법 행위로 장기간 조사·수사 필요한 사건이 점차 많아지면서, 분산돼있던 정부-유관기관 간의 대응 체계를 개선하자는 취지다.
실제로 국내 불공정거래 수법은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기존 방식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불법행위가 많아짐에 따라 금융당국의 사전 적발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라덕연 사태가 대표적이다. 라덕연 일당은 다수 명의의 계좌를 활용해 장기간에 걸쳐 시세조종을 해오는 방식으로 금융당국의 감시망을 피해왔다. 이들은 단기간 주가 부양이 쉬운 종목을 선정해 차액결제거래(CFD) 상품과 신용투자로 장기간에 걸쳐 주식을 사들이며 주가를 띄웠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의 개인투자자 피해가 발생했다. 주가 부양 세력들이 금융당국 조사에 급하게 매물을 팔아치우면서 일부 종목을 중심으로 대량의 매도 물량이 쏟아졌다. 결국 주가가 폭락하면서 시가총액 13조원이 증발하고 개인투자자 7만여명이 7700억원대의 손해를 입게 됐다. 이를 사전에 막지 못한 금융당국 수장들도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당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주가조작 세력들이 장기간 대범하게 우리 자본시장을 교란했다는 데에 금융당국 수장으로서 매우 뼈아픈 일이라 생각한다”며 “금융당국부터 통렬한 반성이 필요한 시기”라고 밝혔다.
◆자산동결해 추가 범죄·재산은닉 막는다
금융당국은 이런 사태가 두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과 유관기관과 함께 수개월에 걸쳐 전방위적 대책을 마련했다.
이미 미국·일본·호주 등 주요국 대부분은 형사처벌과 병행하며 행정 제재 수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검찰 간 긴밀한 공조체계를 구축하며 불공정거래 적발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이를 고려해 우리 금융당국도 기관 간 상시 사건 관리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증선위원회 중심으로 금융위·금감원·거래소·검찰 간 상시 협업체계를 마련해 기관별 시장감시·심리·조사 등 주요 상황을 수시로 공유할 계획이다. 이전에는 각 기관들이 단계별 역할을 수행하면서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만 협조하는 등 상시적인 협업 체계가 미흡했다.
금융당국은 불공정 거래 신고도 활성화할 방침이다. 포상금을 기존 20억원에서 30억원으로 한도를 상향하고 지급 기준도 개선한다. 자진신고자에 대해서는 과징금도 감면한다. 금융위 조사 관련 기능·인력을 보강하고, 금감원도 조사 인력을 기존 70명에서 95명 수준으로 증원한다.
무엇보다 이번 불공정거래 대책의 핵심은 제재 강도를 높이고 다양화했다는 점이다.
미국·일본·영국·호주 등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제재 수단은 매우 미흡한 실정이다. 선진국들은 통신기록 확보, 자산동결 등 증권범죄자에 대한 구속력 있는 수단을 여럿 보유하고 있으나, 국내 금융당국은 이런 조치 수단이 전무한 상태다.
이에 금융당국은 자산동결제도를 본격 도입할 방침이다.
그간 금융당국은 증권범죄자의 추가 불법행위를 방지하고 불법이익을 제대로 환수할 수 있는 임시 조치 수단이 필요했다. 불공정거래 혐의자의 위법 행위가 계속되고 있는데도 이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금융당국 조치 수단이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자산동결제를 본격 도입함에 따라 향후 증권범죄자의 추가 불법 행위는 선제적으로 차단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증권범죄자가 보유한 계좌의 신규 금융거래를 막고 금융상품·예탁금 처분을 금지해 자산 은닉을 효과적으로 방지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불공정거래 규율 위반자는 주식 신규 거래, 계좌개설등 자본시장 거래가 10년간 금지되며 상장사 임원 선임도 제한된다. 불공정거래 과징금 제재도 추진된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등을 개정하고, 관계기관 간 세부 운영프로세스 협의를 통해 최종 마련할 계획이다.
금융당국은 바로 실행 가능한 제도를 먼저 도입하고, 법령·규정 개정 등이 필요한 것은 부처 간 협의를 거쳐 신속히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제재 확정자 정보 공개, 조사공무원 통신사실 확인자료 제공요청권 등도 각계 의견 청취와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거쳐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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