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관계자는 20일 취임한 김동철 한국전력 신임 사장의 취임사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김 사장은 취임사에서 “전기요금 정상화는 더더욱 반드시 필요하다”며 수식어를 두 번이나 반복적으로 표현하며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취임사에서 일종의 ‘결기’까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역대 한전 사장 중에 전기요금 인상을 이렇게 강도 높게 강조한 인물은 없었습니다. 김중겸 전 한전 사장도 한전이 적자였던 2011년에 취임했습니다. 김 전 사장도 취임사에서 재무구조 개선을 취임 일성으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꼽은 첫 번째 해결 방안은 전기요금 인상이 아닌 ‘원가절감’이었습니다. 김 전 사장은 취임사에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원가절감 등 경영효율화 노력으로 요금인상 요인을 자체 흡수하고 전기요금을 단계적으로 현실화할 것”이라며 전기요금 인상은 한전 재무구조의 ‘차선책’임을 밝혔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처음 한전 사장에 오른 김종갑 전 사장도 취임사에서 전기요금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사장 역임 중엔 전기요금 인상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한전 사장을 지낸 정승일 전 사장도 전기요금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전기요금은 물가에 영향을 주는 핵심 변수이기 때문에 서민 경제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전기요금이 ‘정치요금’이라고 불리는 이유죠. 이 때문에 현행법상 전기요금 인상 여부는 전기위원회를 거쳐 산업부 장관이 결정하지만, 사실상 여당과 대통령실, 기획재정부가 방향타를 쥐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임명권자인 대통령, 정부·여당과 국정 철학을 공유해야 하는 한전 사장이 전기요금을 올려야 한다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김 사장의 ‘전기요금 인상’ 발언이 ‘한전 내부가 아닌 외부로 향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 건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김 사장은 전기요금 외에도 한전 임직원의 ‘무사안일’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김 사장은 취임사 첫 문장을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표현하며 “그동안 한전이 공기업이라는 보호막, 정부보증이라는 안전판, 독점사업자라는 우월적 지위에 안주해왔다”고 했습니다. 한전 직원들 입장에선 요즘 표현으로 ‘뼈를 때리는’ 지적을 한 셈입니다. 김 사장은 “우리의 뼈를 깎는 경영혁신과 내부개혁 없이는 전기요금 정상화를 위한 국민적 동의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전 창설 이후 첫 정치인 출신 사장인 김 사장의 취임을 두고 한전에선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김 사장은 대통령 임명 전날 나주로 내려가 본사 인근 모처에서 업무보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한전의 한 관계자는 “통상 임명한 날 내려와 업무보고를 받는데 전날 내려온 경우는 이례적”이라며 “그만큼 직원들도 긴장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전은 이제 더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로 위기 상황”이라며 “차라리 김 사장 같은 무게감 있는 정치인이 와서 쇄신하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김 사장을 둘러싼 안팎의 기대와 우려의 크기만큼 그를 둘러싼 숙제는 만만치 않습니다. 당장 김 사장이 강조한 전기요금 인상을 위해 정부·여당, 대통령실을 설득해야 합니다. 유가 급등과 고환율로 요금 인상에 대한 명분이 생겼지만, 추석 이후 본격적인 총선 국면에 접어들면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반대에 요금 인상은 물 건너갈 공산이 큽니다.
올 4분기(10~12월) 전기요금이 다음 달 중 결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기성 정치인처럼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변가에 그칠지, 국내 최대 공기업 한전의 위기를 극복하는 진정성 있는 최고경영자(CEO)임을 확인시켜줄지, 김 사장을 향한 첫 평가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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