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관리 의무
시설물 노후-불량은 집주인 수리
거주 중 부주의-과실 세입자 책임
본격적인 가을 이사 철이 다가왔습니다. 월세나 전세 계약이 1년 중 가장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계약 만기나 연장을 앞둔 세입자나 집주인도 그만큼 많습니다. 이때 세놓은 집을 누가 수리하느냐를 놓고 갈등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번 주 부동산 빨간펜에서는 엄정숙 부동산 전문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 자문을 통해 집주인과 세입자 간 생기는 여러 수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은지 다뤄 보겠습니다.
Q. 다음 달이면 전세 기간이 종료돼 재계약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보일러를 가동해 봤다가 고장이 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집주인은 2년 전에는 멀쩡하던 보일러를 제가 사용하다가 망가뜨렸다며 수리를 못 해주겠다고 합니다. 보일러 수리비는 누가 부담해야 하나요?
“민법 제623조에는 ‘임대인은 목적물을 임차인에게 인도하고 계약 존속 중 그 사용, 수익에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월세나 전세 주택의 수리 의무는 집주인에게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집주인만 수리의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닙니다. 민법 제374조에 따르면 특정물의 인도가 채권의 목적인 때에는 채무자는 그 물건을 인도하기까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보존해야 합니다. 세입자 역시 계약 기간 동안 주택을 잘 보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일러 수리 비용은 개별 사례에 따라 청구 대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일러 노후나 불량으로 수리가 필요하다면 집주인이 비용을 대야 합니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구하거나, 우선 먼저 고친 뒤 수리된 보일러의 사진과 영수증 등을 챙겨 집주인에게 비용을 청구해도 됩니다.
하지만, 세입자의 부주의 혹은 과실로 보일러가 고장 난 것이라면 세입자가 수리 비용을 내야 합니다. 겨울철 창문을 닫아둔다거나 헌 옷 등 보온재를 덮어두는 등 보일러나 수도 계량기 동파 등을 막기 위한 관리를 소홀히 했다면 세입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겁니다.”
Q. 집에 물이 샙니다. 월세 계약이 아직 1년 반이나 남았는데, 집주인은 “직접 수리하든 알아서 해라”라는 태도입니다. 당장 생활하는 데 피해가 큰 탓에 집주인이 수리비를 주기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집주인은 세입자가 사는 동안 건물을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물이 새는 등의 문제는 세입자의 과실이 아닌 주택 자체의 문제인 경우가 많은 만큼 집주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때 집주인이 수리를 해주지 않으면 세입자가 직접 고치고 비용을 청구하면 됩니다. 수리 비용을 월세에서 빼는 것도 가능합니다. 전세의 경우에는 계약이 만료된 이후 전세보증금 반환소송을 통해 추가로 수리 비용까지 청구하면 됩니다. 2016년 대법원은 집주인의 수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세입자가 먼저 집을 수리한 뒤 월세를 2번 이상 내지 않은 사례를 두고 ‘집주인으로부터 수리 비용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판결하기도 했습니다.
집주인과의 연락 자체가 원활하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때 세입자는 수리가 필요한 상황을 기록하고, 사진이나 영상 등의 증거를 확보해야 합니다. 이후 집주인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수리 요청을 서면으로 남기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집주인이 응답하지 않거나 수리를 거부할 경우 세입자는 전문가의 견적을 받아 수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후 수리 비용을 청구하거나 월세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정산하면 됩니다.”
Q. 곧 세입자와의 전세 계약 종료를 앞두고 집 상태를 확인하러 방문했다가 세입자가 제 허락 없이 집 구조를 변경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분명 도배를 새로 해도 되냐는 요청에 응한 기억밖에 없는데, 필름 시공이며 조명까지 모두 달라져 있었습니다. 세입자에게 원상 복구를 요구할 수 있을까요?
“민법 제615조에는 ‘차주가 차용물을 반환하는 때에는 이를 원상에 회복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즉, 세입자가 전월세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주택을 원 상태대로 집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사례의 경우 세입자는 집주인의 허락 없이 집의 내부 구조를 변경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설물에 변화를 줬기 때문에 계약 종료 시점에 세입자에게 원상회복의 의무가 있습니다.”
Q. 세입자가 형광등 불이 켜지지 않는다며 연락을 해왔습니다. 일반 형광등처럼 교체 주기가 짧은 소모품도 집주인이 매번 교체 비용을 부담해야 하나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수리 없이는 세입자가 주택을 정해진 목적에 따라 사용할 수 없는 정도의 큰 하자라면 집주인에게 수선 의무가 있습니다. 반대로 별 비용 없이 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문제라면 세입자에게 수선 의무가 넘어갑니다.
이런 판례로 볼 때 형광등 같은 비용이 적거나 교체 주기가 짧은 소모품은 세입자가 수선해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별 비용 없이 쉽게 고칠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어느 정도인지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만약 분쟁이 해결되지 않으면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참고하고, 최악의 경우 소송에 돌입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소송을 준비할 때는 증거 자료를 철저히 관리해야 합니다. 수리 요청에 대한 서면 교환 내역, 수리 전후의 사진이나 영상, 전문가의 견적서 등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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