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에 사채 186억 빌리게 하고
라덕연 컨설팅업체에 맡기게 해
100억대 거래사고도 뒤늦게 밝혀져
“솜방망이 제재… 처벌 강화를” 지적
한 증권사 직원이 고객을 SG증권발(發) 주가 폭락 사태의 몸통인 라덕연 H투자컨설팅업체 대표(수감 중)에게 소개해 주면서 고금리 불법 사채까지 알선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말 다른 증권사에서는 100억 원이 넘는 거래 사고가 발생한 사실도 뒤늦게 밝혀졌다. 최근 대규모 횡령·사기 등 금융권에서 대형 금융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증권업권의 부실한 내부통제가 도마에 올랐다.
2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H증권 지점 직원 A 씨는 올 초 개인 고객에게 186억6000만 원 규모의 고금리 불법 사채를 알선해 줬다. 이 고객은 사채로 마련한 자금을 A 씨가 소개해준 H투자컨설팅업체에 맡겼다. 제도권에서 일하는 증권사 직원이 고객에게 유사 투자자문, 불법 사금융을 함께 주선하는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수억 원대의 알선 수수료를 챙겼다.
서울남부지검은 21일 A 씨를 자본시장법, 특정경제범죄법,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해당 직원의 경우 사금융 알선 금지를 위반해 신고가 접수된 것이고 기소 사유와 별개의 건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작년 12월에는 S증권에서 126억 원의 주문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미국에서 거래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주식을 병합(여러 주식을 하나로 합쳐 주식 수를 줄이는 것)했는데, 이것이 S증권 주식거래시스템(HTS)에 반영되지 않아 고객이 주식을 매도하는 과정에서 실제 보유한 주식보다 많은 양의 주식이 팔리게 됐다. 회사 내부 직원이 사고를 인지해 신고했고 회사는 그만큼(126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결제 불이행이 되면 안 되니 나머지 금액에 대해선 증권사가 보전하는 식으로 마무리된 사건”이라며 “고객에게 손해가 전가된 것은 아니지만 회사는 손실을 입었고 내부통제 시스템상의 문제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증권사에서 터진 금융사고 규모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2억9000만 원에 불과했던 증권사의 사고 금액은 2021년 225억 원, 2022년 228억7000만 원으로 급증했다. 올 들어서도 H증권사의 불법 사금융 알선(186억6000만 원)으로 사고액이 이미 200억 원에 육박한 만큼 이 같은 증가세는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 임직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불법 행위가 만연해 있지만 이들에 대한 제재는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내 10대 증권사(미래·한국·NH·삼성·메리츠·KB·하나·신한·대신·키움)에서 최근 5년간(2018년∼2023년 3월) 총 107명의 임직원이 차명거래 등 자기매매 위반으로 적발됐다. 하지만 형사 고발된 임직원은 단 한 명에 불과했고 견책(37명), 감봉(33명), 주의경고(30명) 등의 경징계를 받은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증권사들이 임직원에게 내부통제를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렇다 보니 증권사들이 자본 규모를 늘려 투자 저변 확대, 신사업 진출 등을 도모하고 있지만 정작 덩치에 부합하는 내부통제 체계를 갖추진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의원은 “수년 동안 증권사들의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고 감사도 적절치 않았다는 것”이라며 “다른 업권에 비해 증권업계의 도덕적 해이가 두드러지는 만큼 금융당국 차원에서 각별히 챙길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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