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1대 수출이 국산 중형자동차 1000대 수출과 맞먹는다는 얘기 들어보셨나요. 그만큼 무기체계 중에서도 전투기의 부가가치가 크다는 뜻인데요. 마침 최초의 국산 전투기 KF-21의 양산단계 진입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어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집니다.
그런데 KF-21 전투기의 심장인 엔진은 누구 것일까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F414’ 엔진 설계도를 받아 한국에서 라이선스 생산합니다. 사실상 심장은 미국산이나 마찬가지이죠. 항공엔진 개발 기술을 가진 나라가 전 세계에 6개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우크라이나·중국)뿐이기 때문인데요. 모든 나라가 탐내는, 하지만 좀처럼 닿을 수 없는 항공엔진의 세계를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
지난 7월 노란색 ‘J(젠·殲)-20’ 전투기의 시험비행 영상이 온라인에 유포되자 중국 국방 전문가들은 이렇게 환호했습니다. 전투기에 장착된 엔진이 중국이 독자개발한 ‘WS-15’ 터보팬 엔진이었기 때문이죠.
J-20은 중국이 개발한 5세대 스텔스 전투기. 하지만 그동안 엔진은 러시아산 AL-31을 써야 했습니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개발을 시작해 2001년 ‘WS-10’ 엔진을 완성했는데요. WS-10은 엔진출력 미달로 신뢰성이 크게 떨어지다 보니, 자국 최신 전투기에도 쓰이지 못한 겁니다. 이 때문에 J-20 전투기는 외신에서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조롱을 받아왔죠.
그런데 중국의 신형 항공엔진 WS-15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중국 측 주장으로는 미국 프랫 앤 휘트니(Pratt&Whitney)사의 ‘F119’ 엔진(F-22에 들어감)과 유사한 성능이라고 하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은 2000년 전후로 신형 엔진 개발에 나섰습니다. 그동안 최소 9000억 위안(약 164조원)을 투입했다는 보도 내용이 눈에 띄는데요. 20년 넘는 긴 세월과 천문학적 비용을 들인 끝에, 이제야 개발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겁니다. 물론 그럼에도 아직 양산 단계까진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요.
엔진 독자개발은 왜 어려울까
항공엔진 개발은 왜 이리 어려운 일일까요. 기본적으로 개발 난이도가 모든 엔진 중 가장 높습니다. 자동차 엔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죠. 항공엔진은 수 톤에 달하는 항공기 기체를 하늘로 띄우고 음속을 넘어서는 속도로 비행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요. 엔진이 내뿜는 1500도 이상 고온을 견디는 소재기술 개발부터 난관입니다. 또 수천~수만 시간(전투기 엔진은 6000시간, 여객기는 3만 시간 이상)을 작동할 수 있는 내구성도 갖춰야 하고요.
무엇보다 까다로운 180개 항목의 감항인증(비행에 적합한지를 검증)을 거쳐야 합니다. 자동차 엔진이야 도중에 멈추면 자동차가 도로에 서게 되지만, 항공엔진은 멈추면 바로 추락이니까요. 로켓엔진은 한번 쏘면 끝이지만 항공엔진은 몇십년을 날 수 있어야 합니다. 항공 분야에서 엔진기술은 가장 가치 있는 기술이지만, 감히 아무나 도전할 수 없는 기술이죠. 심지어 미국 P&W조차 F119 엔진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하는 데 12년, F-22 장착 이후 테스트에 14년이 걸렸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기술을 보유한 선진국들이 당연히 절대 기술을 내놓지 않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8년이 됐지만, 여전히 중국을 제외하곤 2차 대전 승전국(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우크라이나)만 기술을 보유한 이유입니다. 특히 시장성이 크고 난이도가 높은 민항기용 엔진 시장은 미국과 영국의 톱3 기업(GE·P&W·롤스로이스)이 다 잡고 있고요.
그런데 이런 구도에 약간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난 6월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 인도 모디 총리의 정상회담 직후, 미국 GE가 F414 전투기 엔진을 인도에서 공동생산하고 핵심 기술도 이전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인도는 1989년부터 항공엔진을 자체 개발하려 도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2013년 개발을 중단했는데요. 그런 인도가 한방에 세계 최고의 미국 기술을 이전 받게 되다니. 전 세계 방산업계가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과 인도가 파격적으로 손을 잡은 겁니다. 2020년 중국·인도 국경 지역 라다크에서 양국 군이 충돌했을 때, 중국 공군은 서북부에 J-20 전투기를 배치하며 위협했죠. 인도 언론은 이번 미국과의 엔진 협력을 두고 “GE의 F414 엔진 공동생산으로 중국 제트엔진(WS-10) 성능을 단숨에 능가하게 됐다”며 기뻐했습니다. 중국에 이어 인도까지 가세하면서 항공엔진 시장을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집니다.
우리도 전투기 엔진을 국산화하자고?
여기까지 보시고 ‘중국 놀랍네, 인도 좋겠다’라고 생각하셨나요? 이게 단순히 남의 나라 얘기만이 아닙니다. 한국도 이제 국산 전투기를 수출해야 하는 나라이니까요.
앞서 언급한 대로 국산 전투기 KF-21이나 경공격기 FA-50 엔진은 모두 미국 GE 겁니다. 따라서 KF-21과 FA-50을 다른 나라로 수출하려면 미국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만약 미국이 ‘No’ 하면 엔진을 구할 수 없으니 수출이 불가능하죠. 2020년 아랍에미리트와 K9 자주포 수출 계약을 맺고도 독일의 엔진 수출 금지 때문에 결국 수출을 못 했던 것과 비슷한 일-일종의 심장마비-이 생길 수도 있는 겁니다. 즉, 항공엔진 개발은 자주국방의 문제만이 아니라 K방산의 미래가 달린 문제입니다.
우리한테도 미국이 항공엔진 기술을 이전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행운을 바라고 있을 수만은 없죠. 정부도 ‘항공엔진 국산화’를 위해 이미 나섰습니다. 무인항공기(드론)에 쓰일 터보팬 엔진(5500파운드급) 개발을 진행 중이죠.
하지만 전투기급 엔진은 이것과는 또 다른 레벨의 얘기입니다. 전투기에 들어가는 엔진은 추력이 1만5000파운드 이상이어야 하는데요. 방위사업청이 지난 2월 ‘드론 쇼 코리아 2023년 컨퍼런스’에서 “1만5000파운드급 신형 터보팬 엔진을 2037년까지 개발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 엔진이면 연소기까지 장착할 경우 KF-21에 탑재된 F414 엔진(최대 추력 2만2000파운드)과 맞먹을 수 있기 때문이죠. 단, 아직은 구체적 계획이라기보다는 선언적인 수준입니다.
만약 정말 항공엔진을 국산화할 수 있다면? 아직 먼 얘기이지만 국방기술진흥연구소의 지난해 보고서(‘첨단 항공엔진 국내개발을 위한 제언’)에 따르면 개발 후 20년 동안(2037~2057년) 올릴 부가가치가 최소 9조4000억원이란 추정치가 나와 있습니다(터보팬 항공엔진 시장 점유율 1%를 가정). 일단 전투기급 엔진이 개발되면 더 나아가 민항기용 엔진으로 확장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죠.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웅장한 기운마저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정말 할 수 있나
하지만 좀 냉정히 따져볼 필요는 있겠습니다. 개발의 필요성 알겠고 파급효과 큰 것도 이해하는데요. 그런데 정말 개발할 수 있나요? 달에 탐사선을 착륙시킨 인도도 실패했고, 중국은 100조원 넘게 쏟아붓고도 아직 미완성이라는데?
우선 현재 전투기 엔진을 면허생산 중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김원욱 항공엔진연구센터장에게 질문했습니다. 서면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김 센터장은 이렇게 답했죠.
“대한민국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40여년간 1만대에 육박하는 다양한 항공엔진을 생산했고, 항공엔진 라인업의 개발·관리는 역량을 지속적으로 키워왔습니다. 항공엔진의 설계·해석뿐 아니라 소재, 제조, 시험평가,감항인증 기술을 종합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첨단항공엔진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끌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예상대로 당연히 역량이 충분하다는 답이 돌아왔는데요. 추가로 이 분야 전문가인 조형희 연세대 항공우주전략연구원장(기계공학부 교수)과도 25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산 전투기급 엔진 개발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이야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하지만 그걸 ‘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로 보이는데요?
“저도 ‘정말 가능할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가능성을 본 게 이미 우리 기업이 항공엔진 면허생산을 상당히 했다는 점입니다. 설계도면을 받아오긴 했지만, 부품을 만들어 조립하는 기술은 이미 갖고 있죠. 원래 자동차엔진도, 로켓엔진도 처음 개발할 땐 기존 것을 뜯어보고 ‘역설계’를 해야 하는데요. 우리는 조립을 해봤으니 그보다는 높은 단계에서 시작하는 겁니다.
중국의 실패 사례도 찾아봤는데요. 자료에 따르면 중국도 월남전에서 추락한 미국 전투기 엔진을 가져가서 역설계로 시작했더라고요.”
-중국은 설계도면도 없이 기존 엔진을 뜯어보면서 배운 거군요.
“네. 그러니까 실패를 거듭했고, 어려운 길을 가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면허생산을 해왔다는 점에서 그보다 운이 좋고요.
또 항공엔진은 공급망의 협력업체가 1000개 가까이 구축돼야 국산화가 가능한데요. 면허생산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그게 어느 정도 구축돼 있습니다. 이 역시 상당히 큰 자산이죠.
물론 감항인증과 소재기술 면에서 우리나라가 아직 부족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KF-21 전투기 동체를 우리가 만들었으니, 당연히 엔진 수요가 생겼거든요. 또 2030년 중후반이 되면 전 세계가 유·무인 복합 전투기 체계로 갈 텐데, 무인기 엔진은 수출 규제 때문에 우리가 사 오기 힘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이 (개발을 시작)할 수 있는 가장 적기라고 봅니다.”
-방위사업청이 2037년 개발 완료를 얘기한 적 있습니다. 만약 전투기 엔진 개발을 시작한다면 실제로는 얼마나 걸릴까요?
“해외 사례를 보면 플랫폼, 즉 기존 엔진 모델이 있으면 8년이 걸리고요. 플랫폼 없이 처음부터 하면 13~14년 걸리더라고요. 우리는 플랫폼이 없으니까, 그 정도 걸린다면 2037년쯤이 되는 거고요. 만약 해외 협력사를 구한다면 그보다 4~5년 단축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직은 첨단 항공엔진을 개발하겠다는 선언만 있지 예산이 편성되거나 하는 단계는 아닌데요.
“과기부와 국방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방위사업청에 이를 담당하는 파트도 생겼고요. 선행연구를 거쳐 내년에 ‘사업타당성조사’ 작업을 통과한다면 그땐 예산이 편성돼 정말 사업이 시작될 겁니다.”
-개발하는 데 돈은 얼마나 들까요?
“해외 협력사의 플랫폼이 있다면 한 3조원, 부품을 다 국산화한다면 5조원을 전망합니다. 상당히 커 보이지만 10년으로 나누면 연 3000억원 정도이죠.”
-사실 KF-21 사업도 그게 되겠냐는 회의론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되지 않았습니까. 전투기 엔진개발도 쉬운 길은 아닐 것 같은데요.
“KF-21은 하기로 결정하고서도 엔진을 쌍발로 하느냐 단발로 하느냐를 가지고 2~3년 싸웠다 더라고요. 그게 다 컨센서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긴 한데요. 사실 옛날 우리나라가 자동차 엔진 개발할 때 비교하면 지금은 여건도, 인력도 훨씬 좋아지지 않았습니까. 저는 우리나라의 역량은 크게 걱정 안 합니다. 역량을 잘 모아서 가느냐가 더 중요하죠. 거꾸로 우리나라가 이것도 개발 못 할 정도라며 의심하는 게 저는 더 이상하다고 봅니다.” By.딥다이브
전투기 엔진 국산화라니. 밀덕이라면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는 주제일 텐데요. ‘우리나라가 우주 발사체도 만들었는데!’라는 희망에 부풀다가도 ‘정말 13년, 3조원으로 그게 될까’라며 주춤해지기도 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전투기의 심장인 엔진. 하지만 항공엔진 기술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만 보유할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후발 주자인 중국이 수십년의 투자 끝에 업그레이드된 신형 엔진을 선보이며 추격해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자체 개발을 포기했던 인도는 미국으로부터 항공엔진 기술이전을 받기로 했습니다. 글로벌 지정학 위기의 덕을 보게 된 겁니다.
-한국은 국산 전투기 KF-21 양산을 앞두고 있지만 엔진 기술은 미국에 의존하는 상태. 자주 국방뿐 아니라 K방산의 미래를 위해서도 전투기 엔진 국산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금은 막연하게 ‘2037년 개발 완료’라는 선언 정도가 나온 단계인데요. 과연 전투기급 엔진을 우리 손으로 개발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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