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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가 불가능한 상태는 없어요, 심하게 산산조각 난 기물이어도 작업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뿐 충분히 수리할 수 있죠."
김수미 공예가는 '도자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금손'이라고 불린다. 접시와 찻잔 등 여러 파편으로 깨진 도자를 이어 붙이고, 그 이음새를 장식해 새로운 작품을 완성한다는 점에서다. 이런 그의 기술을 일본에서는 '킨츠기'라고 부른다. 일본어로 '금'을 뜻하는 킨과 '이어붙이다'라는 츠기의 합성어로 깨진 조각들을 생옻 성분의 천연 접착제로 결합한 뒤 이음면에 금·은분을 덧씌우는 기법이다. 그릇, 접시, 찻잔 등 여러 도자들을 수리하는 기술로 옻칠 공예에 속한다.
킨츠기는 모모야마 시대(1573~1615년)에 일본의 '와비사비'라는 문화에서 기원했다. 와비사비란 오래된 것을 고쳐 쓰고 아끼는 자세에서 비롯된 사상으로 불완전한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미적 관념이기도 하다. 부서진 도자를 버리지 않고 다시 쓴다는 킨츠기의 철학 또한 와비사비와 닮았다. 일본에서는 귀한 손님이 왔을 때 정성을 표현하기 위해 킨츠기로 수리한 그릇에 음식을 내어주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린 약 2년 전부터 킨츠기 입문자가 늘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다도를 시작하는 이들이 생겨남에 따라 찻잔이 깨졌을 때 해결책이 되는 킨츠기 공예에도 관심이 쏠린 것. 요즘에는 국내 쇼핑몰에서도 킨츠기용 붓과 옻가루 등이 담긴 키트를 쉽게 구매할 수 있다.
한국에서 킨츠기가 차츰 알려진 데는 김수미 공예가의 활약이 컸다. 일본에서 기술을 전수받은 그는 2019년부터 국내에서 킨츠기를 알려왔다. 꾸준히 인스타그램에 작업물을 올리며 1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확보했고,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마련한 작업실에서 킨츠기 클래스도 운영 중이다. 지난 4년간 수강생뿐 아니라 그에게 킨츠기를 의뢰하는 고객 수도 늘었다. 김 공예가에게 접수되는 기물들에는 300~400만 원대는 물론, 5000만 원대 작품들도 있다.
작업물을 향한 애정만 있으면 이 세상에 수리 못할 기물이 없다는 김수미 공예가. 그는 어떻게 킨츠기 불모지였던 국내에서 킨츠기 전문가로 덕업일치했을까?
정직해야 터득할 수 있는 예술
가보로 물려받은 도자기, 어머니의 유품인 접시 등 김수미 공예가의 작업실엔 의뢰인들의 애틋한 사연이 담긴 기물 조각이 가득하다. 킨츠기 비용은 6만 원부터 시작, 수리 난이도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각기 다른 모양으로 해체된 이들을 수리하려면 도자 1개당 작업 기간이 두 달 넘게 소요될 때도 허다하다. 고가의 예술품을 수리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도 많다. 최근엔 교토 도자기의 창시자 닌세이 장인이 빚은 5000만 원대 술잔을 작업했다.
킨츠기는 크게 5가지 과정으로 이뤄진다. 붙이고, 메우고, 살 만들고, 칠하고, 장식용 금·은분을 뿌리면 끝! 옻에 밀가루나 찹쌀가루 등을 섞어 천연 접착제를 만든 후 깨진 파편들의 면에 발라 이어 붙이는 것이 첫 번째다. 꼼꼼하게 틈을 메우고 완전히 굳혀 이음새의 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다음엔 사포질로 이음새를 다듬어야 하는데 이때 팔을 부지런히 움직일수록 조각 간의 접착면이 매끄러워진다. 후반 작업에서는 옻 접착제로 메워진 이음새에 붉은 천연 안료를 칠한 후 금·은분을 뿌려 장식한다. 해당 과정을 '마키애'라고 하는데 여기서 마키는 '뿌리다', 애는 '그림'이란 뜻이다.
이처럼 생옻 등 천연재료만을 사용해 진행하는 방식을 '혼킨츠기'라고 한다. 전통적인 킨츠기 방식이지만 생옻 성분을 말리고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최소 한 달의 작업 기간이 소요된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옻에 잘 마르는 합성 재료를 섞어 작업일을 단축시킨 기법이 ‘칸이킨츠기’다. 혼킨츠기와 달리 평균 1~3일 만에 완성할 수 있고 작업하기 쉬운 편이다.
킨츠기가 단순히 이어 붙이는 기술처럼 보일 수 있지만, 공정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매우 깐깐하다. 옻이 고르게 발라졌는지, 금분이 매끄럽게 안착됐는지, 이음새에 미세한 틈은 없는지 등 여러 요소를 기반으로 공예가의 전문성을 판단한다. 이런 조건들을 충족시키려면 집중해서 작업을 이어가야 하므로 한번 시작하면 2~3시간은 기본, 10시간이 훌쩍 지날 때도 있다.
“킨츠기는 정직함 없이는 할 수 없는 공예입니다. 작업 중에 조금이라도 꾀를 부리면 완성도가 현저히 낮아지거든요. 같은 동작으로 접착제를 여러 차례 바르고, 사포질을 꼼꼼히 하는 등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죠.”
파편들을 잘 붙였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전문적인 킨츠기 공예가라면 도자마다 어울리는 장식을 더할 줄 알아야 한다. 꼭 금·은분이 아니더라도 도자 소재에 어울리는 가루를 고르고, 과하지 않게 장식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도자의 소재와 깨진 양상에 따라 장식이 본연의 아름다움을 저해시킨다고 판단될 때는 옻칠로만 작업을 마감하기도 한다.
킨츠기의 본고장으로 떠나다
본래 김 공예가는 대학생 때부터 도자 공예를 취미로 즐겼다. 광고 대행사에서 험난한 신입사원 시절을 보낼 때도 주말마다 물레에서 도자기를 돌릴 때만큼은 평온해졌다. 그렇게 대학시절부터 6년 차 직장인이 될 때까지 도합 10년 가까이 도자기를 만들었다.
어느날 폐기된 작업물들을 보며 안타까워하던 그는 일본인 유학생 친구로부터 킨츠기를 추천받았다. 깨진 도자기에 새로운 쓰임새를 부여하는 기술이라니 눈이 번쩍였다. 한편 같은 시기에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로 건강이 악화되자 결국 퇴사를 단행했다. 좋아하는 일을 새로운 업으로 삼자고 다짐한 김 공예가는 킨츠기를 배우기 위해 일본 교토로 떠났다. 자신의 킨츠기 스승인 코이시하라 선생을 소개해주겠다는 친구의 제안이 그를 교토로 이끌었다. 이후 2년간 옻칠 공예의 장인으로 소문났던 코이시하라 선생의 일손을 도우며 킨츠기를 연마했다. 도자기의 지저분한 면을 문질러서 정리하는 샌딩 작업만 두 달간 반복하는 등 킨츠기의 각 단계를 깊이 있게 섭럽해 갔다. 코이시하라 선생을 찾는 의뢰인이 많아 다양한 케이스의 기물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최적의 교육 환경이었다.
실수를 장려하는 수업
2019년 한국에 돌아온 김 공예가는 주변에서 소개받은 킨츠기 의뢰 건들을 작업했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선 킨츠기의 개념조차 생소했던 터라 의뢰마저도 간간히 들어오는 정도였다. 그러던 중 친구들로부터 킨츠기를 알려달라는 제안을 받았고, 일본에서 성행하던 킨츠기 클래스를 떠올려 본격적으로 교육을 구상했다. 실제 일본에서는 가정집에서 삼삼오오 모여 킨츠기 실습을 받는 경우도 많았다.
“친구들의 제안을 듣고 손으로 해보는 것만큼 킨츠기의 매력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킨츠기를 가장 빠르게 입소문내는 방법이기도 했죠. 가르치는 재능이 없어서 계속 고민했지만 일단 도전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킨츠기 클래스 안내문을 올린 결과 총 6명 정원을 모두 확보했다. 수강료는 4만 원으로 평균 10만 원대를 웃도는 일본의 킨츠기 클래스보다 저렴하게 책정했다. 1시간 넘게 진행한 첫 교육은 김 공예가에게 새로운 활력이 됐다. 킨츠기를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몇 년간 익혀온 팁을 공유하고 다같이 기물 수리에 집중하는 과정이 실로 즐거웠다. 혼자서 수리에 성공했을 때 느끼던 뿌듯함과는 다른 결이었다.
더 유익하고 즐거운 클래스를 기획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교육 진행자로서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월 1주일씩 교토로 떠나 현지 킨츠기 클래스들을 수강했다. 함께 듣는 수강생들의 반응을 살피며 어떤 과정을 집중적으로 알려줘야 쉽게 이해할 수 있는지, 어느 과정을 생략해야 덜 지루한지 등을 분석했다.
이를 통해 킨츠기 입문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잘못된 방식까지 직접 손으로 경험해보는 것임을 깨달았다. 대부분의 킨츠기 교육이 가장 효율적인 작업 방식을 전수하는 데 집중하지만 실수를 방지하려면 정확히 어떤 방식이 잘못된 것이며, 그 결과 완성도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는지 몸소 체험하는 과정도 필요했다. 예컨대 각자의 기물로 작업하기 전, 샘플용 도자를 활용해 옻칠을 대충했을 때 마감면이 울퉁불퉁해지는 현상을 살펴보는 식이다. 교육 시간이 길어지는 데다 수고로운 과정임에도 김 공예가는 수강생들과 최대한 여러가지 실수를 경험하려 한다.
클래스 유형을 칸이킨츠기와 혼킨츠기 2가지로 구분한 것도 주효했다. 하루만에 모든 공정을 마무리할 수 있는 칸이킨츠기는 원데이 클래스로 제공했고, 동시에 여러 차례 진행되는 혼킨츠기 정기 교육도 선보였다. 두 과정의 난이도 차이가 있다보니 연계해서 듣는 신청자도 늘었다. 칸이킨츠기 클래스로 기본기를 쌓은 후 심화 과정인 혼킨츠기로 넘어오거나, 혼킨츠기를 듣다가 부족한 기본기를 쌓기 위해 칸이킨츠기를 신청하기도 한다.
김 공예가의 킨츠기 클래스는 이제 매 회차 정원이 빠르게 마감된다. 운영 초반엔 주로 도자 업계의 종사자들이 신청했지만 최근들어 다도에 빠진 바리스타, 빈티지 그릇을 수집하는 셰프 등 여러 직업군이 참여하는 추세다. 공통점은 모두 기물을 진심으로 애정한다는 것. 한편 오프라인 클래스의 정원은 여전히 6명이다.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적은 인원과 긴밀하게 소통해야 킨츠기의 재미를 온전히 전할 수 있다는 김 공예가의 고집이 엿보인다.
작업실 밖에선 더 실험적으로
김수미 공예가는 작업실에서 벗어나 개인 전시회를 통해서도 킨츠기를 알려왔다. 개인전에서는 새로운 소재 및 공법으로 만든 이색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투박해 보이도록 일부러 이음새를 굵게 칠하거나 금분에 다양한 원재료를 섞어 이질적인 색감을 구현하는 식이다. 평소 의뢰받은 수리 및 클래스에서 만드는 작품들과는 상이한 매력의 도자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예컨대 지난해 3월 '버려진 기물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탐색하며 각자의 취향까지 찾자'는 메시지를 담은 ‘Find My Hidden Taste: 숨은그림찾기’ 개인 전시회에선 파편들에 각기 다른 색을 칠해 퍼즐처럼 재조립한 접시와 미세하게 이가 나간 부분을 금분으로 메꾼 유리잔 등을 공개했다.
“킨츠기가 수리 작업으로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기법에 따라 다양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예술 분야입니다. 저 역시 실험적인 킨츠기 공예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킨츠기 전문가로 이름이 알려지자 여러 협업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 공예가는 킨츠기에 관심을 보일만한 대중들과의 접점을 파고들었다. 가령 티(tea) 전문 카페들과 협업한 이유도 국내에서 다도 입문자들을 중심으로 킨츠기가 알려진 만큼, 티 카페의 단골들 역시 킨츠기를 흥미로워 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서다. 지난해 3월 차 세트 메뉴로 유명한 망원동의 카페 ‘티노마드’에선 찻잔과 다기 받침대 등 다도와 관련된 킨츠기 작품들을 전시했다. 다도를 즐긴 손님들이 이음새가 그대로 드러난 이색 찻잔을 보며 킨츠기에 주목하길 꾀한 것. 2021년 7월 성수동의 티 오마카세 매장 ‘맛차차’에서는 킨츠기 클래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참가자 7명이 각자 파손된 찻잔 3~4점을 챙겨온 후 2시간에 걸쳐 킨츠기 작업을 이어갔다.
“협업 제안을 받으면 그 브랜드와 킨츠기의 연결성이 있는지부터 살펴봐요. 킨츠기가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문화이기 때문에 대중이 공감 가능한 협업을 해야 재밌게 몰입시킬 수 있거든요.”
밤샘 작업 후에도 온전히 결합된 도자들을 볼 때면 '킨츠기 배우길 잘했다'고 생각한다는 김수미 공예가. 실험적인 작업에 서슴없이 도전하고, 자신만의 클래스를 기획하며 킨츠기를 알려온 그는 오늘도 여러 기물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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