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국채금리 4.8% 16년만에 최고… 공포지수, 5개월만에 최고 치솟아
환율 14.2원 올라 1363원 연중최고
코스피 2.4%↓, 亞증시 일제 하락
韓경제, 금리-환율-유가 新3고 위기
고금리 장기화 우려로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4.8%를 넘으며 16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에 4일 원화 가치와 주가가 일제히 급락하는 등 국내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최근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국제유가와 맞물려 고금리, 고환율, 고유가의 3고(高)가 작년에 이어 한국 경제에 또다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현지 시간) 세계 채권 금리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날보다 0.12%포인트 급등한 4.81%로 2007년 8월 이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3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도 4.95%까지 오르며 5%대에 육박했다. 이 여파로 4일 한국 국고채 금리도 올랐다. 3년 만기는 전 거래일보다 0.22%포인트, 10년 만기는 0.32%포인트 상승했다.
고금리 우려가 확산되면서 ‘공포 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 변동성지수(VIX)는 전날보다 2.17포인트(12.32%) 오른 19.78로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긴 추석 연휴를 마치고 4일 열린 국내 금융시장은 미국발 고금리 공포 충격을 한꺼번에 흡수하며 크게 출렁였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4.2원 급등(원화 가치는 급락)한 1363.5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27일(1356원) 이후 재차 연고점을 경신했다. 코스피는 59.38포인트(2.41%) 급락한 2,405.69에 장을 마감했다. 코스피가 2,410 선을 내준 건 올 3월 27일 이후 6개월여 만이다. 코스닥지수도 33.62포인트(4.00%) 급락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하락했다. 이날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2.28% 급락해 5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홍콩H지수(―1.12%), 대만 자취안지수(―1.10%)도 모두 하락세였다. 전날 미국과 유럽 증시가 급락한 여파를 고스란히 받았다.
전문가들은 3고에 따른 기업 실적 악화와 소비 위축이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근 JP모건 등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에 이어 1%대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고금리는 기업들의 금융 비용을 높여 실적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금리-환율-유가 ‘3高’ 한국, 빚 부담에 통화-재정 정책 발묶여
[‘新3고’ 덮친 한국경제] 월가 채권왕 “美국채금리 5% 갈것” 한국 국고채도 작년 11월이후 최고 물가-성장-금리 ‘세 토끼’ 딜레마
미국발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3고(고금리·고환율·고유가) 현상이 국내 경제를 옥죄고 있다. 기업 실적 악화와 소비 위축을 초래해 경제 성장을 떨어뜨릴 수 있어서다. 정부는 물가, 성장, 금융 안정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국면을 맞아 진퇴양난에 빠졌다.
● 고금리 장기화 우려에 시장 불안 가중
3일(현지 시간)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4.81%로 급등한 것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고금리를 오래 유지할 것으로 시장이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준의 대표적인 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분류되는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다음 달 기준금리 인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인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마저 “현 금리를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월가 거물들도 고금리에 베팅하고 있다. 미국 월가에서 ‘채권왕’으로 불리는 유명 투자자 빌 그로스는 방송에 출연해 “10년물 미국 국채 수익률이 5%까지 갈 것 같다”고 전망했다. ‘헤지펀드의 대부’로 불리는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설립자 레이 달리오도 “높은 인플레이션이 더 오래 지속될 것”이라며 비슷한 전망을 내놨다.
미국발 고금리 장기화는 국내 금융시장 불안을 키우고 있다. 미국 국채 금리 인상 여파로 4일 한국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연 4.35%로 상승해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높았다. 은행 대출금리 산정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 금리도 4.517%로 올 들어 최고치였다. 글로벌 안전자산 선호로 강(强)달러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4.2원 급등한 1363.5원에 거래를 마쳤다. 여기에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경기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3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날보다 0.41달러 오른 89.2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 3고 위기에도 정부의 통화·재정정책은 발목
전문가들은 3고 현상이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높이고,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저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빚 부담이 커지면서 올 2분기(4∼6월) 가계 소비지출은 전년 대비 2.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는 2021년 1분기(1∼3월) 이후 가장 낮은 증가 폭이다. 지난달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99.7로 전달보다 3.4포인트 하락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부채가 지속적으로 늘면서 금융 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다. 정부가 나서 가계부채가 느는 속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금리는 기업들의 경쟁력 약화도 초래할 수 있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 빚을 못 갚는 한계기업이 늘 수 있어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3년간 번 돈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 비중이 전체 외부감사 대상 비금융법인의 15.5%를 차지했다. 1년 전(14.9%)에 비해 0.6%포인트 늘어난 규모다.
문제는 막대한 가계부채와 경기 침체 등 위기 상황에도 당국의 통화, 재정정책의 발목이 묶여 있다는 점이다.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사상 최대인 2%포인트에 달하는 게 부담이다. 반대로 환율 상승과 고물가에 대처하려면 금리를 올려야 하지만 가계부채와 경기 침체 우려가 걸린다. 최근 고금리 상황에서도 지난달 말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682조3294억 원으로 전달보다 1조5174억 원 늘었다.
경기 부양을 위한 정부 재정 확대도 세수 감소로 인해 여의치 않다. 국가채무가 올 7월 기준 1097조 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올해 약 59조 원의 세수 결손이 예상된다. 실질적인 나라살림을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올 들어 7월까지 68조 원 적자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3고 위기가 대외 요인에서 비롯돼 정부 대응이 쉽지 않지만 적절한 외환시장 개입 등을 통해 시장 안정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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