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정책, 가계빚 늘려” vs “한은, 서민 고민 안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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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 놓고
한국은행-금융위 ‘미묘한 신경전’
지난달에도 가계부채 2.4조 늘어
“두 당국 정책기조 같이 가야” 지적

올 들어 치솟고 있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놓고 금융·통화당국이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기준금리 조정 등 거시적인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관리의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금융당국은 이에 대해 불편한 반응을 숨기지 않고 있다. 한국 경제의 최대 뇌관인 가계부채 위기를 놓고 당국 간 정책 엇박자가 불거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통화당국이 불협화음을 내는 사이 금융권 가계부채는 지난달에도 2조 원 이상 늘었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과 통화당국의 정책기조 일치가 가계부채 감소의 첫 단추”라고 지적하고 있다.

● “한은은 서민 고민 안 해” vs “당국이 통화정책 무력화”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융위 국정감사장에서 “한은은 물가와 환율, 시장 안정을 통해 일관적으로 금리 정책을 가져가는 곳”이라며 “한은은 서민의 어려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야당 의원들이 금융위의 가계부채 대응 미흡을 계속 질타하며 최근 가계빚 누증에 대한 한은의 경고를 근거로 거론하자 이에 대한 답변으로 나온 발언이었다. 한은은 거시경제를 관리하는 곳이지 미시적인 정책을 담당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취지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당시 현장에서는 이러한 금융당국 수장의 말에 묘한 파장이 일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한은의 잇단 가계부채 지적에 대한 금융위의 불쾌감이 표면화됐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한은은 5월 금융통화위원회와 지난달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서 금융위가 정책금융상품으로 올해 1월 내놓은 특례보금자리론과 정부의 대출 규제 완화 등을 가계부채 상승 요인으로 지목했다. 실수요자를 위해 소득 제한 없이 최대 5억 원 한도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 특례보금자리론은 그간 가계대출을 늘리는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고금리 부담으로부터 취약계층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상품이지만 소득 제한을 두지 않음으로써 대출 증가에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금융당국이 그동안 꾸준히 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시중은행에 금리를 내리도록 압박한 것 역시 한은의 통화정책 효과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은 물가 상승과 가계부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고금리 기조를 유지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당국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금리가 내려가고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가계빚 증가를 억제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자 부담이 높아진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미시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은은 김 위원장의 발언과 관련해 맥락 파악에 나섰다. 한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당황한 분위기”라며 “발언의 맥락 등을 파악하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이에 금융위 측은 “이창용 한은 총재와 김 위원장이 매일 전화를 주고받고 있다”며 소통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 전문가 “금융·통화당국 모두 가계부채 급증 책임”
금융·통화당국이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가계부채는 계속 늘고 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가계부채 잔액은 한 달 새 2조4000억 원 늘었다. 증가 폭이 8월(6조1000억 원)보다 축소됐지만 증가세가 꺾인 것으로 보긴 어렵다. 금융당국은 “9월 중 가계대출 증가 폭이 축소됐지만 가계대출 규모가 여전히 높고, 10월에는 가을철 이사 수요와 신용대출 감소에 따른 기저효과 등으로 다시 증가 폭이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금융·통화당국 모두 최근 가계부채 급증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융당국이 대출 규제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며 “한은도 금리 인상 요인이 상당히 있음에도 금리 인상을 계속 미루면서 시장에 잘못된 기대를 심어줬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이든 금융위든 오래전부터 가계대출을 줄이는 것에 대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했어야 하는데 역할 수행을 잘 못했다”고 꼬집었다.

#가계부채#관리 방안#미묘한 신경전#한국은행#금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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