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율 0.31%… 1년새 0.13%P↑
코로나 금융지원 끝나 더 오를듯
기촉법 일몰, 한계기업 줄도산 우려
“부채조정 통한 기업구제 방안 필요”
고금리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은행 빚을 제때 갚지 못한 가계와 기업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올해 국내 은행이 장부에서 털어낸 부실 채권 규모가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배 이상으로 불었다. 은행이 강도 높은 건전성 관리에 나섰지만 연체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달 말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출에 대한 상환유예 조치가 종료된 가운데 15일 부실기업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의 법적 근거가 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마저 일몰되면서 한계기업의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민간부채(가계부채+기업부채)가 4900조 원을 돌파한 상황에서 부채 재조정을 통한 질서 있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 은행 부실 채권 규모 작년의 두 배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은 올해 1∼9월 3조2201억 원어치 부실 채권을 상각·매각했다. 이는 전년 동기(1조5406억 원)는 물론이고 연간 규모(2조2711억 원)를 훌쩍 넘어선 수치다.
은행들은 3개월 이상 연체된 고정이하여신(부실 채권)을 별도 관리하다가 회수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되면 아예 장부에서 지워버리거나(상각) 자산유동화 전문회사 등에 헐값에 파는(매각) 식으로 처리한다. 상각 대상에는 주로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 채권이 많고, 매각은 주택담보대출 채권 중심으로 이뤄진다.
5대 은행은 올해 3분기(7∼9월)에만 1조73억 원어치 부실 채권을 털어냈다. 직전 분기(1조3560억 원)보다 다소 줄었지만 전년 동기(5501억 원)의 1.83배에 달한다.
올해 3조 원이 넘는 ‘부실 채권 털어내기’로 5대 은행의 9월 말 기준 연체율은 0.31%로 한 달 새 0.03%포인트 떨어졌다. 하지만 1년 전(0.18%)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새로운 부실 채권 증감 추이가 드러나는 신규 연체율은 평균 0.09%로 변동이 없었다. 특히 고금리 환경이 지속되는 데다 지난달 말 대출 만기 연장, 상환 유예 등 코로나19 관련 금융 지원책이 종료되면서 은행권은 연체율이 당분간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 기촉법 일몰에 한계기업 줄도산 우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날 5년 한시법인 기촉법이 일몰로 효력을 상실하면서 한계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옛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코스피·코스닥 상장사의 한계기업 비중을 분석한 결과 작년 말 기준 국내 상장사 중 17.5%가 한계기업으로 조사됐다. 5곳 중 1곳이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기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파산을 신청하는 기업도 급증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 건수는 1034건으로 지난해 전체 파산 신청 건수(1004건)를 벌써 넘어섰다. 올해 8월까지 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공적 공제 제도인 ‘노란우산’의 폐업 공제금 지급 규모도 894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2% 늘었다. 노란우산 공제는 소상공인이 매달 일정 금액을 납부하다가 폐업이나 고령 등으로 사업을 접을 때 돌려받는 제도다. 그만큼 한계 상황에 몰린 자영업자가 많다는 의미다.
앞으로 부실기업의 대한 구조조정은 사실상 최후의 수단인 법정관리(회생절차)만 남게 됐다. 자칫 생산성이 높지만 유동성 위기에 몰린 일부 기업이 흑자도산하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촉법 일몰로 회생 가능한 기업까지 도산할 경우 실업률이 증가하고 경기 침체 위험도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도 “고금리에 코로나19 후유증이 남은 상태에서 일몰 상태가 지속되면 금융 부실까지 연결될 수 있다”며 “산에서 내려올 때도 질서 있는 기업구제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기촉법 재입법을 추진하면서 채권금융기관들의 자율협약을 통해 입법 공백기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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