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고위직인 은행감독국장을 지낸 A 씨는 2020년 2월 금감원 퇴직 직후 신용협동조합중앙회의 검사·감독이사로 재취업했다가, 3년 뒤인 올해 3월 하나은행 상임감사위원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금감원 임직원은 퇴직 후 3년간 업무와 유관한 곳에 취업하는 것을 제한’하는 공직자윤리법을 피하기 위해 직접 담당했던 업계 밖 다른 직장을 잠시 거친 뒤 은행으로 들어가는 ‘꼼수 우회 재취업’을 시도한 것. A 씨만의 얘기는 아니다.
16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금감원 퇴직자의 금융권 재직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5대 은행 상임감사위원이 모두 A씨처럼 금감원의 은행 담당 부서장 및 임원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은행·보험·증권 등 금융권 업체 127곳에 총 93명의 금감원 퇴직자가 근무하고 있다. 가장 많은 금감원 퇴직자가 근무 중인 업계는 은행업권으로, 퇴직자 24명이 재직 중이었다. 특히 시중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감사위원 자리를 모두 금감원 퇴직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저축은행 업계에선 금감원 퇴직자 21명이 근무 중이었고, 보험업권엔 20명, 증권업엔 13명, 금융지주엔 7명, 캐피탈엔 5명, 신용카드사엔 3명이 재직 중이다.
이들 대다수는 금감원 퇴직 당시 직급이 부원장보나 국장 등 고위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 금감원 직원은 퇴직일로부터 3년간 금융사에 취업할 수 없지만, 퇴직자들은 다른 직장에 우선 재취업하고 3년 후 금융사로 옮기는 방식으로 법을 피해갔다.
이 때문에 2018년 1월부터 올해 9월까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심사를 받은 금감원 퇴직자 170명 중 5명만이 취업제한 또는 불승인 결정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금감원 퇴직자가 재취업을 하기 위해선 공직자윤리위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퇴직자들의 ‘우회 재취업’으로 인해 사실상 심사의 실효성이 떨어진 것.
금감원장 출신들도 올해 상반기 말 기준 금융사의 사외이사로 재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진웅섭, 김용덕, 윤증현 전 원장은 각각 카카오뱅크, 신한라이프생명보험, KB국민카드에서 사외이사로 근무 중이다.
오 의원은 “금감원 출신들이 금융회사를 대변할 경우,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보다는 금융회사 입장에서 정책을 추진한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며 이해충돌 소지의 가능성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금융감독원 퇴직자들이 금융감독원 담당자를 접촉할 때에는 반드시 기록을 남기고, 그 기록이 국회 등에 보고되도록 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