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과학자 양성, 공과대학 활용하자[기고/유욱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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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올해도 ‘의대 쏠림’ 양상이 심화하는 추세다. 성적 우수자들의 이공계 진학을 유도하려는 여러 노력이 있었으나 의대 경쟁률은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지만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꿈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지금은 의학계에도 최우수 인재들이 꼭 필요한 시대다. 거의 모든 과학기술 분야가 건강 증진과 질병 극복에 크고 작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융합연구에서 의학 연구자들의 역할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는 생명과학과 의학의 결합에서 나아가 공학과도 융합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최근’이라고 하기도 늦은 것이 이스라엘 테크니온공대는 50여 년 전 의대를 설립해 융합형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 있다. 미국은 하버드대 의대가 1970년부터 매사추세츠공대(MIT)와 공동으로 의학교육 과정을 운영한 데 이어 5년 전 일리노이공대에 의대를 설립했다. 우리도 의대 쏠림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이 진료뿐 아니라 연구에서도 활약할 방안을 적극 찾아야 할 때다.

국내에는 KAIST와 포스텍이라는 걸출한 공과대학이 있다. 이들은 국제적 수준의 고급 인재를 양성해 왔으며, 국내 학술 및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두 대학이 기초과학 및 공학 분야에서 쌓은 연구·교육 인프라는 한국의 큰 자산이다.

두 대학을 의사과학자 양성에 활용하지 않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초일류 이공계 대학으로서의 경험과 인프라, 국제적 명성이 있어 의학전문대학원 설립 시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종합병원의 부재는 원자력병원 등을 중심으로 전국 모든 병원과 연계해 해결하는 방안이 좋을 것이다.

물론 기존 의대에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하나의 전략보다는 여러 시도를 하는 것이 성공 확률을 높인다. KAIST와 포스텍이 여러 병원과 협업하며 얻은 노하우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정책적 대안을 만들어간다면 전체 의·생명 연구생태계 조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미 KAIST 의과학대학원은 지난 20여 년간 세계적인 선도 연구그룹을 다수 만들어내 국내 의·생명 분야의 비약적 발전을 견인했다. KAIST가 탁월한 의사과학자 양성에 기여한 바는 의료계에서도 인정하는 성과다.

과거 경부고속도로 설립 시에도 반대가 많았다. 자동차 수도 적고, 이미 만들어진 철도가 있으며, 특히 한국은 ‘개도국’이기에 당장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국토의 대동맥’으로서 교통과 물류 활성화를 이끌며 지금도 산업과 경제 발전의 주요 인프라로 쓰이고 있다.

현 시점에서 지역과 해당 분야의 현황만 우선한다면 미래의 영역 확장과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두 대학이 가진 우수한 교육·연구 인프라는 탁월한 의사과학자 양성 시스템의 기초공사를 마친 것과 같다. 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은 미래 유망산업인 바이오헬스 분야의 발전을 이끌 고속도로가 돼 전국의 의료기관, 의학연구기관, 민간 기업 등을 잇는 촘촘한 연결망으로 기능할 것임을 확신한다.

#의사과학자 양성#공과대학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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