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경제 시대가 다가온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보셨죠. 수소는 화석연료나 태양광·풍력과 달리 특정 지역에 편중돼있지 않는 게 특징입니다. 그만큼 수소경제 주도권을 쥐기 위한 각국의 경쟁도 치열한데요. 얼마 전 미국이 이를 위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총 70억 달러 예산을 투입할 7개 ‘수소허브’ 프로젝트를 선정한 겁니다.
중국·유럽보다 한발 늦었다는 평가를 받던 미국이 본격적으로 수소산업 키우기에 뛰어들었는데요. 하지만 미국에서 수소는 여전히 논란의 청정에너지원입니다. ‘기후 기술의 성배’라는 찬사와 ‘돈 낭비’라는 비판이 동시에 나오죠. 오늘은 청정수소와 수소허브 이야기를 들여다보겠습니다.
13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7개의 수소허브 선정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지난 1월 받은 79개 제안서 중 심사를 거쳐 최종 7곳이 낙점받은 건데요. 7개 프로젝트에 총 70억 달러(약 9조5000억원)의 연방정부 예산을 투입할 계획입니다.
수소허브에 대한 민간 투자는 약 400억 달러에 달할 거라고 하죠(미국 에너지부 추정). 최종적으로 수소허브에서 300만t의 청정수소를 생산하는 게 목표인데요. 미국이 세운 2030년 수소 생산 목표량(1000만t)의 30%에 해당합니다. 한마디로 미국 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들여서 수소 생산 인프라 건설에 나서는 건데요. 이미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수소에 생산보조금(㎏당 최대 3달러)을 준다는 계획도 세웠거든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엄청난 투자를 할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수소 없인 탄소중립 달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탄소배출 없는 친환경 에너지로는 풍력과 태양광이 있죠. 하지만 이런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분야가 있습니다. 주로 아주 높은 열을 필요로 하는 산업이죠. 철강이나 비철금속, 유리나 세라믹 제조처럼요. 탄소중립으로 가려면 이런 제조업에서 석탄(코크스)이나 천연가스를 대신할 연료가 필요한데, 그 대안이 바로 수소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13일 기자회견에서 수소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강철이나 알루미늄을 제조하려면 화씨 1000도 이상 온도에서 가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연료를 태워야 하죠. 풍력이나 태양광으로는 그렇게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수소가 들어오는 곳입니다.”
또 다른 분야는 항공입니다. 비행기에 커다란 리튬이온배터리를 달면 되지 않냐고요? 하지만 배터리로는 소형 기체(최대 50명)의 단거리 운항(최대 1000마일)만 가능할 거라고 합니다. 100% 전기화는 불가능하죠. 따라서 장거리 운항을 위해서는 지금의 항공유를 대신할 연료가 필요한데요. 이 역시 수소가 대안입니다. 지난해 롤스로이스와 이지젯이 이미 수소 구동 항공기엔진 가동 시험에 성공한 적 있죠.
문제는 이런 여러 분야에서 수소 에너지가 필수인 건 맞는데, 그리로 가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물론 돈입니다.
‘수소샷’의 원대한 포부
‘문샷(Moonshot)’이란 말 들어보셨죠. 1962년 9월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발표한 달 탐사선 계획을 뜻하는데요. 불가능해 보이는 혁신적인 발상의 대명사로 쓰이죠. 이 문샷을 본떠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수소샷(Hydrogen shot)’이란 걸 주창했습니다. 2021년 미국 에너지부가 밝힌 계획인데요. 10년 안에 청정수소 생산비용을 지금보다 80% 낮은 1㎏당 1달러로 낮추겠다는 내용입니다.
이게 왜 혁신적 발상인지를 살펴보기 전에. 수소의 종류부터 살펴볼까요. 수소는 지구 어디에나 풍부하게 존재하는 원소이지만, 그냥 얻을 순 없고 만들어 내야 하죠. 그 생산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요. 아마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레이수소, 블루수소, 그린수소. 그레이수소는 지금 대부분 수소가 만들어지는 방식이죠. 천연가스의 개질(reforming) 반응을 이용해 수소를 만드는데요. 천연가스 역시 화석연료이기 때문에 수소를 만들 때 이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탄소포집장치’를 이용해 이 이산화탄소를 따로 모아 땅에 묻는 경우는 ‘블루수소’로 분류되죠. 탄소배출이 제로까진 아니지만,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탄소는 그레이수소보다 훨씬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그린수소는 그레이수소나 블루수소와는 달리 생산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아예 없습니다. 전해조(전기로 물에서 수소와 산소를 분해하는 장비)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데요. 이때 전기는 풍력·태양광 발전으로 공급합니다. 참고로 전해조를 이용하되, 풍력·태양광이 아니라 원자력 발전을 쓰면 ‘핑크수소’라고 별도로 분류합니다.
생산비용은 그레이수소<블루수소<그린수소입니다. 블룸버그NEF의 분석에 따르면 그레이수소는 ㎏당 0.98~2.93달러, 블루수소는 1.8~4.7달러, 그린수소는 4.5~12달러이죠. 미국의 ‘수소샷’ 구상은 이렇게 비싼 청정수소의 생산단가를 그레이수소 수준으로 드라마틱하게 낮추겠다는 겁니다. 수소허브 프로젝트도, 수소생산 보조금 지급도 모두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투자인 겁니다.
청정수소는 얼마나 깨끗한가
이쯤에서 아마 눈치채셨을 텐데요. 왜 미국 정부는 ‘그린수소’가 아니라 ‘청정(Clean) 수소’ 허브를 건설한다고 밝혔을까요. 그린수소가 아닌 수소산업까지 키우겠다는 뜻입니다. 블루수소와 핑크수소까지 청정수소라고 보고 지원하는 거죠.
이번에 선정된 7개 수소허브 프로젝트 중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그린수소에 집중하는 건 2곳뿐입니다(캘리포니아, 퍼시픽 노스웨스트). 나머지는 천연가스와 탄소포집기술을 이용한 블루수소, 또는 원자력 발전을 통한 핑크수소를 생산하죠.
바로 이 점 때문에 수소허브를 둘러싼 논쟁이 거셉니다. ‘과연 청정수소는 정말 깨끗한가’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건데요.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건 야당(공화당) 쪽이 아닙니다(오히려 공화당 일부 의원은 수소허브 대환영). 주로 환경단체이죠. 미국 최대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의 회장 벤 질루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화석연료 산업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화석연료 의존도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수소는 거대 석유·가스 회사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오염을 유발할 수 있는 진출로를 제공합니다.” 한마디로 정부에 ‘속지 말라’고 경고한 거죠.
실제 엑슨모빌과 셰브론이 참여하는 걸프만 연안 수소허브, 천연가스 업체 EQT와 제휴한 애팔래치아 수소허브가 지원대상으로 선정됐습니다. 이들 기업은 천연가스를 이용한 수소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모아서 땅에 묻는 ‘탄소포집기술’을 쓸 텐데요. 문제는 이 탄소포집기술이 실제로는 별 효과가 없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겁니다. 지난달 미국의 비영리단체 에너지경제금융분석 연구소는 이런 제목의 보고서를 냈죠. ‘블루수소:깨끗하지 않고, 저탄소도 아니며, 솔루션도 아니다’. 흔히 블루수소 생산과정에 쓰이는 메탄 중 단 1%만 대기 중으로 방출된다(99%는 땅에 묻음)고 주장하지만, 과학적 분석에서 확인되는 양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블루수소는 더러운 대안”이란 주장입니다. 이 보고서 작성자인 데이비드 슈리셀 연구원은 “정부의 블루수소 지원이 돈 낭비, 시간 낭비가 될 것이 걱정”이라고 말합니다.
원자력을 쓰는 핑크수소도 환경단체의 환영을 받진 못합니다. 중부대서양 수소허브는 델라웨어주의 원자력 발전소에 의존하게 될 텐데요. 델라웨어 환경단체에서 일하는 마야 반로스는 지역 언론 인터뷰에서 “(수소허브 프로젝트는) 앞으로 몇 년 내 폐쇄될 예정의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는 걸 뜻한다”고 우려했죠.
청정수소냐, 그린워싱이냐…논쟁은 진행형
결국 ‘어디까지를 깨끗한 수소로 보고 정부가 지원해야 하느냐’라는 문제입니다. 앞으로 미국에서 이 논쟁은 더 거세질 겁니다. 수소허브 프로젝트 선정은 일단 끝났지만, 아직 큰 게 남았기 때문인데요. 바로 ‘수소 생산세’를 어디에 얼마나 공제해주느냐는 겁니다.
아까 미국 정부가 IRA법에 따라 청정수소를 생산하는 기업에 보조금(㎏당 최대 3달러)을 줄 거라고 설명드렸는데요. 당연히 청정수소를 어떤 방식으로 생산하느냐에 따라 보조금 액수는 달라지겠죠. 지금 미국 재무부가 그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는 중입니다. 아마 올해 말쯤에 기준이 나올 텐데요. 여러 기업들이 화석연료를 쓴 전기를 이용해 만든 수소도 세금공제를 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엄청난 로비를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너무 엄격한 기준을 부과하면 태동 단계인 수소산업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게 이들 기업의 논리이죠.
반면 환경단체들은 규정을 느슨하게 하면 되레 반환경적 결과를 초래할 거라 우려합니다. 지난 2월 환경단체들은 공동으로 재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탄소의) 순배출량 증가를 초래하는 수소프로젝트에 1000억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게 될 수 있다”고 경고했죠. 수소허브보다 훨씬 더 큰 예산이 걸린 이슈입니다.
‘수소경제로 가자’는 큰 틀엔 대체로 이견이 없지만 ‘어떻게 갈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우지 않으면 전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니 중요한 논의가 아닐 수 없는데요. 한국도 2024년부터 ‘청정수소 인증제’를 시행한다고 하죠. 청정수소이냐,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이냐를 둘러싼 논쟁은 한국에서도 커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By.딥다이브
1960년대에 사람을 달에 보낸다던 ‘문샷’ 구상이 성공했듯이(1969년 아폴로 11호 달착륙), 미국의 ‘수소샷’ 구상도 보란 듯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신재생에너지 발전원가가 꾸준히 하락하는 추세여서 아마도 달성 가능할 거란 긍정적 전망이 힘을 얻습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수소경제가 현실이 될 것만 같은데요. 그리로 나아가는 길에 있을 수많은 논쟁이 미래를 위한 건설적인 합의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미국이 13일 7개의 수소허브 건설 지역과 규모를 확정했습니다. 연방 예산 70억 달러를 투입하는 야심찬 프로젝트입니다.
-10년 뒤 청정수소 1㎏의 생산비용을 1달러로 낮춘다는 ‘수소샷’ 구상의 일환입니다. 탄소배출 없는 그린수소 원가를 80% 낮춰 천연가스로 만드는 그레이수소만큼 경쟁력 있게 하겠다는 겁니다.
-수소경제로 가기 위한 큰 진전이지만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환경단체들이 회의적입니다. 무탄소가 아닌 블루수소, 원자력을 이용한 핑크수소까지 청정수소로 보고 지원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얼마나 깨끗해야 청정수소로 볼 수 있을까요. 미국 정부의 ‘수소생산세’ 공제 기준을 놓고도 논란이 거셉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논의가 앞으로 활발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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