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NOW]
밀가루 대체할 쌀에 관심 커져… 글루텐 프리 식품에 서구권 호평
분쇄 쉬운 가루쌀 신품종 개발… 제분 비용 일반 쌀의 절반 수준
과자, 빵 등 사용처 확산될 듯
지난주 독일 쾰른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 식품 전시회 ‘아누가(Anuga)’가 개최됐다. 올해는 118개국 7800여 개의 식품 회사가 참여해 축구장 44개 넓이의 전시장이 마련됐고, 이마저도 부족해 복도까지 줄일 만큼 규모가 상당했다.
아누가의 메인 프로그램 중 하나는 글로벌 식품 트렌드를 이끌어 갈 제품을 발굴하는 이노베이션 쇼. 세계적인 식품 저널리스트, 시장 리서치 분석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7890개 제품을 놓고 아이디어, 혁신성, 지속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 한국 제품 중에서는 SPC그룹의 ‘케어스 약과’, 그리고 샘표의 ‘완두 간장’ 2개가 상위권 입상을 뜻하는 68개의 ‘파이널리스트’에 포함됐다.
특히 약과에 대한 관심이 뜨거웠다. 케어스는 케어(Care)와 지구(Earth)의 합성어로, 쌀가루와 콩비지 가루를 원료로 했고 쌀 조청으로 단맛을 냈다. 사실 궁중에서 만들어 온 전통 약과는 밀가루로 만들지만 최근 ‘글루텐 프리’(밀, 보리 등에 함유된 단백질을 제거한 것) 트렌드에 맞춰 밀가루 대신 쌀가루를 사용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빵, 파스타, 피자 등을 주식으로 먹는 서양에서 글루텐 프리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신체가 소화할 수 있는 글루텐의 양에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선천적으로 밀, 보리, 호밀 등을 먹으면 알레르기가 생기는 셀리악병이 있는 사람들에게 쌀은 필수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5년 전 이탈리아에서 열린 글루텐 프리 박람회에서 한국 음식을 소개하고 온 경험이 있다. 그때 갓난아기를 안고 ‘내 아이는 글루텐이 있는 음식을 먹으면 거품을 물고 쓰러져요’라며 쌀이 주재료인 떡볶이, 비빔밥 등을 관심 있게 바라보던 아기 엄마가 생각난다.
반면 쌀이 주식이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최근 쌀은 말 그대로 찬밥 신세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한 사람이 하루에 먹는 쌀의 양은 고작 약 한 공기 반. 1인당 쌀 소비량은 매년 최저치를 갈아 치운다고 한다. 쌀의 날이 지정됐고, 1000원의 아침밥 같은 행사도 있지만 쌀 소비량을 늘리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쌀이 싫어서 먹지 않는다기보다는 밀가루가 주재료인 서양 식품과 식문화가 우리 생활에 들어와 소비자들의 선택권이 더 넓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렌드세터들이 많이 찾는 서울 성수동이나 압구정동, 청담동만 가 봐도 대부분 피자, 파스타, 케이크 맛집이지, 흔히 말하는 밥집이나 백반집은 찾기 힘들 정도다. 쉽게 말해 쌀밥은 요즘 젊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쌀 품종이 개발되면서 식품 외식업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국립식량과학원에서 개발한 신품종 가루쌀 바로미2 덕분이다. 사실 가루쌀 개발은 2012년에 됐는데, 그동안 식품업계에서 외면하다가 글루텐 프리가 푸드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가루쌀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가루쌀은 쌀밥용이 아닌 떡볶이나 쌀빵, 쌀국수, 쌀과자 등 쌀 가공 식품을 만드는 데 최적인 쌀로 쉽게 분쇄되는 게 특징이다. 그동안 우리가 먹어왔던 쌀가루와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쌀가루는 멥쌀을 물에 불려 말린 뒤 분쇄를 해서 만들어 왔었는데, 신품종 가루쌀은 일반 멥쌀보다 단단함(경도)이 3분의 1밖에 되지 않아 물에 불리는 과정 없이 바로 분쇄해서 사용할 수 있고,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는 전분 구조를 가지고 있어 빵, 과자 등을 만들 때 즉시 활용할 수 있다. 발효 속도도 빠르고, 제조 공정이 줄어들었으니 가루쌀의 제분 비용은 일반 쌀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기존에 밀가루 상품을 만들어 오던 식품 기업도 발 빠르게 가루쌀을 활용한 상품을 내놓고 있다. 해태제과는 국민 과자 중 하나인 오예스를 ‘바로미2’로 만든 한정판 제품 ‘오예스 위드미’를 내놨다. 대전 유명 빵집 성심당은 가루쌀을 활용한 쉬폰, 마들렌에 이어 마라맛을 더한 쌀고로케, 김치볶음쌀빵, 시나몬돌돌쌀빵 등을 출시해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동안 빵, 면, 과자 등이 쌀과 반목하는 관계였다면, 이제는 글루텐 프리라는 푸드 트렌드를 만나 공생을 시도하고 있다. 주식인 쌀 소비량이 반등할지, 쌀이 앞으로 어디까지 변신할 수 있을지, 행보가 기대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