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엔 없는 고용량 보조배터리가 마음에 듭니다.” “한국산 스킨케어는 다양하고 좋네요.”
23일 롯데면세점이 서울 중구 명동에 문을 연 면세점 쇼룸(홍보관) ‘LDF 하우스’. 인도네시아 관광객 디키(34)와 메이 라미(30) 부부는 매장 곳곳을 살펴보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새빨간 외관이 눈에 띄는 3층짜리 건물은 외국인 관광객을 모으기 위해 거리에 세운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길을 걷던 20, 30대 외국인들은 인기 있는 K팝 스타의 포토 부스를 발견하곤 줄까지 서 가며 사진을 찍었다. 면세점이지만 관광지에 가깝다. 실제 이곳은 말 그대로 ‘쇼룸’이어서 여기에 놀러와 물건을 보고 면세품 구매는 QR코드 등으로 온라인에서 하게 된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游客·유커)의 귀환을 계기로 본격 성장을 기대했던 면세점들이 더딘 회복세에 속앓이를 하면서 ‘공항 밖 면세점’에 힘을 주고 있다. 외국인들의 면세 소비 패턴이 바뀌며 명품이나 고가 화장품 구매가 줄어든 점을 감안해 MZ 관광객을 공략하기 위해 시내 면세점을 강화하고 팝업스토어(임시매장)까지 운영하고 있다.
23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8월 중국인 방한 관광객은 25만9659명으로 1년 전(3만248명)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국내 면세점 외국인 이용객 수도 같은 기간 14만5863명에서 59만4385명으로 4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8월 면세점 외국인 매출은 8990억 원으로 1년 전(1조4309억 원)에 비해 오히려 37% 줄었다.
이는 중국 등 주요국 관광객 소비패턴 변화 때문이다. 지난달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40세 미만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중국인 관광객은 맛집 투어 등 체험 중심으로 여행 선호도가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면세점업계 관계자는 “과거 중년 중국인 관광객들이 고가 화장품 등 명품을 싹쓸이해갔다면, 젊은층은 면세 쇼핑에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중국 경기 침체 여파도 있다. 세계 1위 면세점업체인 중국국영면세품그룹(CDFG)이 운영하는 하이난(海南) 내국인 면세점의 올해 2분기(4∼6월) 구매자 수는 150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줄었다. 박주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중국에서도 면세점 방문객은 많아도 소비로는 이어지지 않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관광업계 관계자는 “10월부터 유커 관광이 본격화할 걸로 예상하지만 위안화 약세로 인한 구매력 감소와 부족한 한중 간 항공편 탓에 면세점 매출은 기대에 못 미칠 것”이라고 했다.
국내 면세점업계는 외국인 관광객을 매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올해 6월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에서 22년 만에 철수한 뒤로 시내 면세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 명동의 LDF가 대표적으로, 공항은 물론이고 기존 면세점 건물에서도 나온 신개념 면세점인 셈이다. 롯데면세점은 ‘공항보다 더 큰 롯데 면세권에서 산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롯데월드에서 밤새 놀이기구를 타고 K팝 공연을 보는 ‘올나잇 파티’와 면세 쇼핑을 결합한 여행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인천공항 운영 면적을 줄인 신세계면세점은 시내에 위치한 명동점에 BTS 공식 상품 스토어 ‘스페이스 오브 BTS’를 내세우고 있다. 신라면세점과 현대백화점면세점 등은 국내 뷰티, 패션 브랜드 팝업스토어를 공항과 시내에 수시로 마련하며 관광객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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