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거는 여름 맥주? 가을에 어울리는 라거 3가지 [브랜더쿠]

  • 인터비즈
  • 입력 2023년 10월 25일 10시 00분


‘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출처 : Heller·Ayinger·Schneider
출처 : Heller·Ayinger·Schneider

브랜더쿠에서 수제맥주 덕후들을 위한 시리즈 <수제맥주의 비하인드 씬>을 준비했어요. 필자는 국내 최초 논알콜 수제맥주 전문 양조장 '부족한녀석들'을 설립한 황지혜 대표입니다. 수제맥주 한 캔에 얽힌 이면의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이번 편에서는 개성 넘치는 3가지 라거 맥주를 추천합니다.
지난 여름 동안 차갑고 탄산 가득한 맥주가 버팀목이 됐지만 밤 공기가 부쩍 쌀쌀해진 요즘엔 생각만 해도 으스스하다. 가을에는 향이 깊으면서도 무게감이 있고 도수가 높은 맥주 한 잔이 어울린다. 이처럼 풍미가 짙은 맥주라면 당연히 에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톡 쏘는 청량감에 마시는 가벼운 맥주’, ‘밍밍해서 소맥으로 마셔야 하는 맥주’ 등 라거에 대한 선입견들 때문이다. 하지만 가을 밤을 포근하게 감싸줄 진한 라거들도 존재한다. 메르첸과 도펠복 등 가을에 즐기기 좋은 라거들은 국내에 비정기적으로 수입되고, 국내 양조장들도 대부분 상시 생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보틀숍이나 펍에서 이런 맥주들을 만나면 지체 없이 선택해야 하는 이유다.

이번 편에서는 가을에 어울리는 라거 중에서도 개성 넘치는 3가지 종류를 준비했다. 라거가 밍밍하고 무난하다는 생각은 그만! 맥아의 무게감, 맥주에서 보기 드문 고도수, 은은한 훈연 향을 맛볼 수 있는 라거들을 만나보자.

라거 제대로 이해하기
동굴에서 탄생한 맥주
3편에서 다뤘듯 맥주의 대분류는 라거와 에일이다. 라거는 독일 바이에른의 양조사들이 자연 동굴이나 석회암에 판 저장고에 맥주를 발효시키던 방식에서 기원했다. 라거라는 명칭도 독일어로 ‘저장하다’라는 뜻의 ‘lagern’에서 비롯됐다.

전 세계 라거 맥주는 약 50종이며 발상지인 독일에는 지역마다 개성 있는 라거 스타일이 존재한다. 독일 동부의 가볍고 깔끔한 흑맥주 슈바르츠비어, 밤베르크에서 개발된 훈연 맥주 라우흐비어, 캐러멜 풍미가 매력적인 뮌헨의 메르첸 등이 한 예다.

라거는 왜 과일 향이 덜할까?
라거는 에일에 비해 비교적 저온(10℃ 안팎)에서 발효되며 오랜 시간 숙성된다. 이런 특징은 알코올 발효를 일으키는 라거 효모와 관련 있다. 라거 효모는 저온에서 생화학적인 활동을 천천히 시작하는데, 이때 과일향과 향신료 맛을 내는 발효 부산물을 에일보다 적게 생산한다. 그나마 생성된 부산물도 이후 저온 숙성 과정에서 라거 효모에 재흡수되거나 소멸될 때가 많다. 그래서 라거는 에일에 비해 깔끔한 맛이 나며 재료 본연의 풍미가 더 잘 드러난다.

대기업은 라거, 수제맥주 양조장은 에일?
라거는 전 세계 맥주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국의 카스, 미국 버드와이저, 일본 아사히, 네덜란드 하이네켄 등 각국의 대표 맥주는 모두 라거 스타일이다.

기본적으로 대기업의 생산시설 규모, 수익구조 등을 고려할 때 독특한 풍미가 적어 호불호가 낮은 라거 맥주를 대량생산해 판매하는 게 알맞다. 대기업의 대규모 장비로는 갑자기 제품을 다각화기가 용이하지 않고, 홉이 많이 투입되는 미국식 에일을 만들기에도 무리가 있다.

반면에 수제맥주 양조장 입장에서는 라거의 장기 숙성 과정이 부담이다. 특히 페일라거 계열의 경우, 깔끔한 맛이 핵심이기 때문에 길게는 한 달 이상 숙성하면서 불필요한 풍미를 없애야 한다. 장비 규모가 크지 않은 수제맥주 양조장 입장에선 제조 기간이 길수록 재정적 부담이 커지고 탱크가 한 가지 맥주로 오랜 시간 채워져 있으면 여러 제품을 생산하기도 어렵다.

맥주 덕후가 추천하는 라거
■앰버 라거: 맥아의 진한 무게감을 맛보고 싶다면?

맥아에서 나오는 묵직한 곡물의 향과 달콤함 등을 느낄 수 있는 계열로는 비엔나라거, 페스트비어, 메르첸 등을 포괄하는 ‘앰버라거’가 있다. 곡물을 구운 듯한 풍미와 수정과 같은 달달함을 선호한다면 이들을 추천한다. 앰버라거 계열은 ‘진정한 가을의 맥주’라고도 불린다.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 봄에 양조한 후 여름 동안 서늘하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숙성시켜 마시던 맥주였다. 메르첸은 9~10월 열리는 세계 최대 가을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맥주 덕후's PICK
'옥토버페스트 비어'는 옥토버페스트 축제에 참가하는 6개 브루어리 중 하나인 파울라너의 시그니처 맥주다. 메르첸 스타일의 라거지만 과일향이 맴돌며 구름 같은 풍성한 거품이 특징이다. 파울라너 브루어리는 옥토버페스트 비어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권위 있는 6개 양조장에 속한다는 점에서 맥주 덕후들에게 유명하다.

아트몬스터 브루어리의 '청담동 며느리'는 무겁지 않으면서도 캐러맬과 홉의 향이 조화롭다. 비엔나 라거 스타일로 국제대회에서 22관왕을 차지하며 그 맛을 인정 받았다. 아트몬스터는 단독 사워비어(새콤한 맥주) 양조장을 설립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맛이 예술인 맥주를 만들겠다'는 뜻의 브랜드명처럼 블루베리, 피넛버터, 백포도 향을 지닌 맥주 등 그동안 실험적인 맛을 개발해왔다.
출처 : Paulaner·아트몬스터 브루어리
출처 : Paulaner·아트몬스터 브루어리

■복: 10도가 넘는 고도수 라거가 궁금하다면?
복은 최고 12~13도에 이르는 고도수 맥주로 가볍고 청량하다는 라거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주기에 적합하다. 독일 남부의 아인벡 지역에서 유래한 이 맥주는 앰버라거에 비해 더 짙은 맥아의 풍미와 묵직한 바디감도 자랑한다.

복 맥주는 도수에 따라 마이복, 도펠복, 아이스복으로 나뉜다. 마이복은 알코올 도수 6~8도의 맥주로 청량한 맛이 나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만나보기 어렵다. 도펠복은 9~12도짜리 맥주이며 1629년 뮌헨의 파울라너 수도원 양조장에서 ‘살바토르’라는 이름으로 첫 출시됐다. 색이 어둡고 초콜릿과 감초를 닮은 풍미를 지닌다. 아이스복의 알코올 도수는 무려 13도까지 올라간다. 복 맥주를 얼린 후에 얼음 부분을 제거해 알코올 함량이 높은 액체만 남기는 식으로 아이스복을 만들기도 한다. 과거에는 이런 방식으로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경쟁이 벌어져 40도에 달하는 아이스복이 개발된 적도 있다.

맥주 덕후's PICK
아잉거의 '셀러브레이터'는 도펠복 계열에서 잘 알려진 상품이다. 약간 붉은 기가 도는 짙은 초콜릿색, 잔에서 거품이 얇게 깔리는 비주얼이 특징! 잘 구운 빵 내음을 풍기며 다크 초콜릿과 유사한 약간의 쌉싸름한 맛도 난다. 참고로 패키지에 그려진 염소 2마리는 복 맥주임을 드러내는 장치로 보인다. 과거 독일에서는 고도수 맥주를 마시고 취해서 쓰러진 이들을 염소(Bock)에 부딪혀 넘어진 사람에 비유했다는 설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복 맥주의 특징이 압축된 슈나이더 바이세의 아벤티누스는 12도짜리 맥주다. 마실 때 고도수의 맛과 달콤한 맥아향이 느껴지는 것이 특징이다.
출처 : Ayinger·Schneider
출처 : Ayinger·Schneider

■라우흐비어: 훈제 요리 안주가 땡긴다면?
맥주 산업 초창기에는 장작불로 보리를 건조시켜 맥아를 추출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맥아는 훈연 향을 머금게 됐다. 독일 밤베르크에서는 이런 방식이 하나의 맥주 스타일인 '라우흐비어'로 정착됐다. 여기서 라우흐비어는 독일어로 ‘연기’를 뜻한다. 훈제 바비큐, 훈제 소시지, 훈제 치즈 등과 함께 먹으면 맥주와 음식의 서로 다른 훈연 향을 조화롭게 경험할 수 있다.

맥주 덕후's PICK
라우흐비어 스타일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제품은 슈렝케를라의 라우흐비어 시리즈다. 그중 '라우흐비어 메르첸'은 훈제 베이컨의 향과 은은한 단 맛을 지닌 맥주다. 일반적인 메르첸에 비해 더 어두운 색을 띠며, 처음 맡을 땐 살짝 꼬릿한 향에 당황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모금 마셔보면 꼬릿한 향 뒤에 풍기는 훈연 향의 진가를 알게 된다.

이 브루어리는 라벨 속 빨간 안장에 그려진 지팡이를 든 인물로도 유명하다. 1877년 당시 해당 양조장을 인수한 안드레아스 그레이저는 지팡이를 짚고 다녔는데, 그를 보고 사람들이 '슈렝케른(절뚝거리는 사람)'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했다.
출처 : Heller
출처 : Heller


#브랜더쿠#수제맥주#라거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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