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도 청정수소 생산에 10조원 투입… 中-유럽과 주도권 다툼 [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26일 03시 00분


“수소없인 탄소중립으로 못간다”
바이든, 청정수소 허브 7곳 선정
유럽-중국도 앞다퉈 인프라 투자
한국 내년부터 ‘청정수소 인증제’

수소경제 시대 주도권을 잡기 위한 각국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중국, 유럽에 이어 미국도 ‘청정수소 허브’라는 이름으로 수소 인프라 투자를 본격화했다. 탄소 중립으로 가기 위해 청정수소는 선택이 아닌 필수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 글로벌 수소산업 성장이 시작된다

13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7개 청정수소 허브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올해 초 제안서를 냈던 79개 프로젝트 중 심사를 거쳐 선정했다. 미국 전역에 자리잡은 7개 수소허브엔 각각 7억5000만∼12억 달러, 총 70억 달러(약 9조5000억 원)의 연방 예산을 투입한다. 민간투자 규모는 400억 달러로 추산된다. 이들 수소허브에선 총 300만 t의 청정수소를 생산할 계획이다. 미국 정부가 잡은 2030년 목표치(1000만 t)의 30%에 해당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수소허브는 청정 제조·일자리 창출에 대한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보다 앞서 유럽과 중국은 이미 수소 인프라 투자가 한창 진행 중이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수소 저장 터미널 건설을 시작했다. 여러 국가를 잇는 수소 전용 배관망 건설도 추진 중이다. 지난해 3월 수소 로드맵을 발표한 중국 역시 기업과 지방정부가 앞다퉈 투자에 나섰다.

● 그레이수소·블루수소·그린수소

주요국이 청정수소 생산 및 유통망 건설에 앞다퉈 뛰어드는 건 수소 없이는 탄소 중립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 있다. 주로 매우 높은 열이 필요한 산업이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유리·세라믹 제조업이 대표적이다. 탄소 중립으로 가려면 석탄(코크스)이나 천연가스를 대체할 연료가 필요한데, 수소가 그 대안이다.

항공기도 탄소 배출 없는 장거리 운항을 위해선 수소가 필요하다.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 항공기는 단거리 운항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배터리와 수소연료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가야 한다.

문제는 생산단가다. 현재 생산되는 수소 대부분은 화석연료로 만들어지는 ‘그레이수소’이다. 생산 비용이 kg당 1달러 안팎으로 저렴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이 많아 청정수소라 할 수 없다. 천연가스를 원료로 쓰되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모아 땅에 묻는 ‘블루수소’는 탄소 배출이 적은 대신 kg당 1.8∼4.7달러로 좀 더 비싸다.

태양광·풍력발전으로 만든 전기로 물을 분해해서 만드는 ‘그린수소’는 탄소 발생이 아예 없다. 궁극의 친환경 에너지원이지만 생산비는 가장 많이 든다. kg당 4.5∼12달러 수준이다. 물을 전기 분해하는 설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청정수소 산업을 키우려면 정부 보조는 필수다. 미국의 수소허브 프로젝트 역시 ‘10년 안에 청정수소 생산 비용을 80% 떨어뜨려 kg당 1달러로 낮춘다’는 바이든 행정부 수소샷(Hydrogen shot) 구상의 일환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수소허브가 완성되면 수소 생산단가 kg당 1달러 목표가 달성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내다봤다.

● 얼마나 깨끗해야 청정수소인가

이번에 선정된 수소허브 7곳 중 그린수소만 생산하는 건 2곳뿐이다. 3곳은 블루수소, 나머지 2곳은 원자력발전을 이용한 ‘핑크수소’를 생산한다. 수소허브 프로젝트 참여기업에 엑손모빌이나 셰브론 같은 대형 석유회사가 포함된 이유다. 이들 기업은 탄소 포집 기술을 미래 먹거리로 보고 적극 투자해 왔다.

환경단체는 미국 정부의 블루수소 지원을 비판한다. 블루수소는 탄소를 포집하는 과정에서 천연가스를 추가로 써서, 온실가스 배출을 크게 줄이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북미 최대 환경단체 시에라클럽의 벤 질루스 회장은 “블루수소는 거대 석유·가스회사가 수십 년 동안 오염을 유발하는 진출로를 제공할 수 있다”며 “기후 변화를 해결하려면 정부는 그린수소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얼마나 깨끗해야 청정수소로 볼 것인가는 중요한 이슈이다. 이제 막 첫 단추를 끼우는 수소산업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미국 재무부는 연말까지 청정수소 생산기업에 줄 세액공제(kg당 최대 3달러)의 세부 가이드라인을 정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기업은 ‘수소산업 육성을 위해 화석연료 기반 전기로 만든 수소에도 혜택을 달라’고 로비 중이다. 반면 환경단체는 ‘느슨한 지침은 탄소 배출을 늘릴 수 있다’면서 지원 대상을 더 좁히라고 요구한다.

한국에서도 어디까지를 청정수소에 포함할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정부는 내년에 ‘청정수소 인증제’를 도입한다.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청정수소의 등급을 나눠 정하고, 향후 보조금 지급에 활용할 계획이다.

4월 설명회에서 발표된 초안에 따르면 청정수소엔 그린수소뿐 아니라 블루수소·핑크수소가 모두 포함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인증제는) 국제적인 호환성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 동향도 살펴왔다”면서 “11월 중순쯤 청정수소 인증제 등급 기준의 확정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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