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인이 부동산 계약과 관련해 문의를 해왔다. 원룸 월세를 계약한 후 입주할 방을 둘러보니 전등들이 좀 오래돼 집주인에게 전등들을 갈아달라고 요청했는데 오히려 우는소리를 하면서 곤란하다고 했단다. 그래도 계속 전등을 갈아달라고 했더니 집주인이 나중에는 화를 내더라는 것이다.
“있는 놈이 더하다”
지인은 임대인이 전등 교체 건으로 이렇게 나오자 불편해했다. 그 임대인은 월세 80만 원이 나오는 원룸 3채를 운영하고 있어 월세 수입만 240만 원이 된다. 그런데도 전등 교체비용 10만 원 정도를 부담하기 싫어하고, 오히려 “나도 어렵다”면서 “원룸에 대출이 1억4000만 원 있어 이자 내기도 힘들다”며 불쌍한 표정을 짓기까지 한다고 했다.
지인이 문의해온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이 경우 전등을 세입자가 직접 사야 하는지, 임대인이 해줘야 하는지다. 다른 하나는 어떻게 원룸이 3채나 있는 부자가 10만 원 정도 되는 돈에 하소연하고 화를 내느냐다. 그야말로 “있는 놈이 더하다”는 불평이었다. 지인은 그 임대인을 자기 욕심만 채우는 부자로 봤다.
내가 사는 동네는 임대인이 보통 전등을 교체해준다. 임대인에게 전등을 교체해달라고 하는 것은 부당한 사항이 아니고,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전등 교체 건보다 더 중요하게 강조한 부분은 임대인이 “나도 어렵다”고 한 말이 사실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임대인은 아마 지금 사정이 굉장히 어려울 것이다. 전등 교체비용 10만 원을 부담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원룸 임대가 이익인지 손실인지가 달라질 수 있다. 우는소리를 하는 것은 연기가 아니라 본심일 수 있고, 전등을 교체해달라는 말에 화까지 내는 것은 실질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한 몸부림일 수 있다.
그 임대인은 나이가 좀 많다고 한다. 그가 가진 원룸 3채에는 각각 대출이 1억4000만 원씩 있다고 했다. 대강 임대인의 사정이 짐작이 간다. 한 10년 전 그가 원룸을 구입했을 때를 돌이켜보자. 그는 정년 정도까지 일하면서 퇴직금과 저축 등으로 3억 원가량을 모았을 것이다. 현업에서 은퇴했으니 이 3억 원으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3억 원으로는 노후를 계획하기가 쉽지 않다. 예금금리가 3%에 못 미치기에 한 달에 받는 돈이 70만 원도 채 안 된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나이 들어 편의점 등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도 어렵다.
이때 괜찮은 대안이 부동산을 구입해 월세를 받는 것이다. 서울에 3억 원짜리 오피스텔이나 원룸 하나를 구입하면 월세 80만~100만 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생활비 충당이 어렵다. 대출을 받아 원룸 여러 채를 사면 어떨까. 1억4000만 원을 대출받아 월세 80만 원이 나오는 원룸을 산다면 3억 원으로 원룸 3채는 구입할 수 있다. 대출을 1억4000만 원 받으면 이자비용이 30만 원 정도다. 80만 원 월세 수입을 받아 대출이자 30만 원을 내면 원룸 하나당 50만 원이 남는다. 원룸 3채면 150만 원이다. 이 정도면 노후 생활을 할 수 있다. 국민연금까지 받으면 월 200만 원이 넘으니 죽을 때까지 충분히 노후 대책이 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금리가 올랐다. 1억4000만 원을 대출받으면 몇 년 전에는 이자를 30만 원대만 내면 됐다. 지금은 60만 원 이상이다. 신용도가 좋지 않으면 70만 원까지 간다. 월세 80만 원을 받아 이자 60만 원을 내면 20만 원만 남는다. 원룸 3채면 수입이 60만 원이다. 이 정도면 먹고살기 힘들다. 한국에서 최저소득을 받는 빈곤층이다. 국민연금을 받더라도 수입은 100만 원이 좀 넘는 정도다. 서울에서 생활하기 만만치 않은 돈이다.
부자 기준은 주택 수 아닌 순자산
금리가 오른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부동산 세금이다. 전 정권에서 부동산 세금이 급등했다. 특히 다주택자는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커졌다. 그 임대인은 자기가 사는 집도 있을 테니 원룸 3채를 포함하면 집이 4채다. 서울에만 집이 4채 있으니 집값을 올리는 부동산 투기꾼의 전형이다. 최근 몇 년간 종합부동산세로 엄청난 세금을 냈을 것이다. 임대주택등록 등으로 미리 조치를 해 종합부동산세를 피했다고 해도 재산세는 피하지 못했을 테다. 그는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로 대부분의 월세 수입을 내야 했을 것이다.
혹자는 100만 원 이하 세금은 종합부동산세를 내는 사람에게는 큰 부담이 아니고, 세금 폭탄도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월세 100만 원 정도를 받아서 사는 사람한테 세금 몇십만 원은 폭탄이 맞다. 그달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
그 임대인은 금리인상으로 한 달 수입이 60만 원대로 줄었을 것이다. 1년이면 720만 원이다. 여기에 부동산세를 더하면 1년 수입을 다 토해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적자일 개연성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전등 교체비 10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다. 세입자 앞에서 우는소리가 나올 수 있고, 화를 낼 수도 있다.
지인은 원룸을 포함해 집이 4채인 이 임대인을 굉장한 부자로 생각한다. 하지만 다주택자는 집이 많을 뿐, 부자가 아니다. 아파트가 3채 있으면 부자라 할 수 있지만, 원룸·오피스텔 등이 많은 사람은 부자가 아니다. 대부분 은퇴 후 월세 수입을 받아 살아가려고 구입한 이들이다. 일단 그 임대인도 원룸이 3채지만 원룸의 순자산액은 3억 원밖에 안 된다. 한국의 어떤 기준에서도 이 정도 자산을 가진 사람을 부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전 정권의 종합부동산세 정책에 찬성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에서는 주택이 몇 채 있는지 여부로 부자인지 아닌지를 따진다. 집이 많으면 부자고 집이 없으면 가난한 자다. 그런데 부자인지 아닌지에 대한 제대로 된 기준은 순자산 수준이지, 집이 많은가가 아니다.
싸게 살 수 있는 원룸, 오피스텔, 빌라는 널려 있다. 집값이 3억 원인데 전셋값이 2억9000만 원이라 1000만 원만 있으면 살 수 있는 집도 많다. 1억 원만 있으면 10채를 살 수 있다. 이 경우 집이 엄청 많은 다주택자지만 부자는 아니다. 종합부동산세는 집이 여러 채인 부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집이 여러 채라서 부자인 경우는 아파트를 여러 채 가진 경우만이다. 원룸·빌라를 여러 채 가진 사람 중에서는 부자라 할 수 있는 이가 많지 않다. 진짜 부동산 부자는 땅이나 건물, 빌딩을 사지 원룸·오피스텔·빌라를 사지 않는다.
지인에게 “그 임대인은 전등 교체비용을 내기 싫어서 표정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금전적으로 사정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원룸이 3채 있다지만 실제 부자는 아닐 개연성이 큰 것이다. 각 원룸마다 1억4000만 원씩 대출이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열심히 모은 3억 원 정도 돈을 기반으로 월세 생활비를 벌려는 평범한 노인일 수 있다. 최소한 그 임대인을 욕심을 부리는 나쁜 부자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임대인이 우는소리 하는 이유
상대를 부자로 생각하고 대하는 것과 보통 사람으로 생각하고 대하는 것에는 차이가 난다. 상대방이 자기 욕심만 채운다고 생각하는 것과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행동에 차이를 부른다. 지인이 그 임대인을 비난하고 욕할 필요는 없다. 지인이 임대인을 비판하는 것은 그가 큰 부자라고 생각해서다. 부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지인에게 한 가지는 분명히 설명했다. 보통 사람은 다주택자가 부자인 줄 안다. 하지만 다주택자는 부자가 아니다. 물론 부자인 다주택자도 있겠지만 빌라·원룸·오피스텔을 많이 가진 다주택자는 실제 부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 그리고 종합부동산세 등 다주택자 관련 정책은 이런 부자가 아닌 다주택자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이것을 알면 우는소리를 하는 임대인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최소한 우는소리를 하는 임대인을 거짓 연기를 한다고 비난하지는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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