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배당에 박한 국가다. 2015년만 해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배당성향이 낮은 국가에 속했다. 주주환원 정책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배당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도 나오면서 상황은 좀 나아졌다. 2023년 현재 OECD 꼴찌라는 오명은 벗었지만 여전히 선진국이나 자본시장 부문에서 급성장하는 이머징 마켓(emerging market) 평균과 비교하면 배당성향은 한참 낮은 상태다.
한국의 배당이 낮은 원인을 찾으려면 1997년 외환위기 이야기부터 해야 한다. 당시 한국 기업들의 높은 부채비율은 기업 도산으로 이어졌고, 이후 정부는 기업들이 부채를 축소하고 자본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이어갔다. 자본을 늘리기 위해 유보금을 쌓고 배당을 축소하는 기업의 선택도 막지 않았다. 물론 2017년에 사내유보금 과세로 알려진 기업소득환류세제 등의 정책이 나오기는 했지만 외환위기의 트라우마는 기업들의 자본 확충에 대한 집착을 쉽게 바꾸어 놓지 못했다.
올 초 정부는 한국 증시가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배당 정책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배당을 받는 투자자가 먼저 결정되고(배당기준일) 배당금이 결정되는 일명 ‘깜깜이 배당’ 구조를 변경한다는 내용이다. 글로벌 기준에 맞게 배당금이 결정되고 배당을 받는 투자자가 결정되도록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이야기할 때 한국과 자주 비교되는 국가가 대만이다. 대만은 한국과 동일한 동아시아 지역에 위치해 있고 정보기술(IT) 업종 비중이 높으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 규모 역시 한국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러 유사성에도 대만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최근 10년 동안 한국보다 낮아진 적이 없다.
차이점은 바로 배당이다. 대만은 한국에 비해 배당성향이 두 배 가까이 높다. 심지어 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되었던 금융위기 때도 배당을 삭감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주주들의 권리인 배당에 대한 기업의 태도가 다르다면 밸류에이션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책 측면에서도 차이가 있다. 배당소득이 발생했을 때 대만의 세법은 한국에 비해 좀 더 유리하다. 대만의 소득세율이 한국의 소득세율보다 낮기도 하지만, 금융소득 분리과세 역시 한국에 비해 대만이 좀 더 유리한 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세법의 차이는 한국과 대만의 가계자산 비중 차이로도 나타난다. 예금과 현금 등 안전자산 비중이 높은 한국에 비해 대만은 주식과 펀드 비중이 높다.
한국의 낮은 배당에 대한 개선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가계자산 구조 선진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이슈다. 글로벌 기준에 맞는 배당 정책 변화를 시작으로 향후 주주들이 배당요구권을 강화하고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에서 배당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고, 배당소득에 좀 더 완화된 세법을 적용하는 등의 방법들이 대안이 될 수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며 한국 기업들은 선진화되고 체질도 많이 개선됐다. 이제는 주주환원 정책도 선진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가계 자산 구조의 선진화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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