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건전재정 DNA를 가지고 있다. 알뜰살뜰 DNA로 나라살림을 해왔고 국제기구와 신용평가사는 이를 한국 경제의 강점으로 꼽아왔다. 실제로 건전재정은 우리가 경제위기를 빨리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지원받은 195억 달러를 예정보다 3년 빨리 상환하는 데 기여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재정 여력을 활용한 대규모 경기부양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가장 먼저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재정건전성은 빠른 속도로 악화됐다. 2004년 200조 원이던 국가채무는 12년 후인 2016년에 600조 원을 넘었는데 그 후 불과 6년 만에 다시 400조 원이 증가해 지난해 1000조 원을 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급격히 커지고 있다. 2011년에 30%이던 것이 9년 후에 40%가 됐는데 이후 불과 3년 만에 50%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말 국민 1인당 나랏빚은 2200만 원에 달할 것으로 집계됐다. 나랏빚 급증을 제어하고 자녀 세대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재정운용의 안전벨트가 필요한 이유다.
선진국들은 대표적인 재정운용의 안전벨트로 재정준칙을 도입해 운영 중이다. 재정당국이 재정적자 폭을 마음대로 늘리지 못하도록 제약해 미래에 필요한 지출 여력을 확보하는 것이 결국은 민생과 나라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재정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국가들이 신용등급 하락, 국채금리 상승, 물가 급등 등으로 고통받는 사례가 그 방증이다.
우리 정부도 법에서 정한 한도 내에서 재정적자를 관리하겠다는 법안을 국회와 마련하여 국회의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몇 가지 우려가 있는 듯하다. 혹시 정부가 나랏빚 축소에만 급급해서 복지 지출이나 사회적 약자 예산을 줄이는 게 아닐까. 혹시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재정이 과감하게 빚을 더 내서라도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것을 제약하는 게 아닌가.
핀란드와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가 누구나 인정하는 복지 선진국이지만 그 나라들이 엄격한 재정준칙을 시행하고 있다는 것은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 북유럽 국가 사례를 보더라도 재정준칙 시행을 민생예산 축소와 연결시키는 것은 기우다. 또한 위기 시에는 아예 재정준칙 적용을 면제해 재정의 건전성과 적극적인 역할이 조화되도록 했다.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 통합과 균형 발전, 일자리와 미래 먹거리 투자 등 정부가 써야 할 돈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무작정 지출을 늘려서 미래 세대들에게 수천만 원씩 나랏빚을 갚게 할 수는 없다. 그리고 큰 폭풍우가 우리 앞에 닥쳤을 때 우리 민생을 보호할 방파제로서 재정 여력을 비축해 놓아야 한다. OECD 38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를 포함해 2개 국가만 재정준칙을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재정준칙을 통해 재정 운용에 대한 국회와 국민의 통제를 받을 준비를 마쳤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건전재정을 위한 안전벨트인 재정준칙이 꼭 법제화되어 우리의 건전재정 DNA가 지속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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