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kWh(킬로와트시)당 평균 10원 넘게 오른다. 가정과 자영업자가 쓰는 주택용과 일반용은 동결됐다. 올겨울 가스요금도 올리지 않기로 했다. 산업용 요금 인상으로 한국전력이 추가로 얻는 수익은 연간 3조 원도 안 돼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를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전기요금을 9일부터 kWh당 평균 10.6원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일반 가구, 자영업자 등에 대해선 인상 속도 조절을 위해 이번은 요금을 동결하고 앞으로 국제 연료 가격, 환율 추이 등을 살펴가며 요금 조정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소기업이 주로 쓰는 전기요금은 현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
겨울철에 소비가 집중되는 가스요금 역시 올리지 않기로 했다. 가스요금이 다섯 차례에 걸쳐 인상되며 지난해 초보다 45.8% 올라 부담이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한국가스공사의 미수금 등을 보면서 추후 요금 인상을 검토할 방침이다.
이번 요금 인상으로 한전이 추가로 거두게 되는 전기 판매 수익은 연간 2조8000억 원 수준이다. 한전의 누적 적자 규모는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1∼6월)까지 약 47조 원이다.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연 수익이 한전 누적 적자의 6%에 불과한 것이다. 이번 전기요금 조정이 한전의 근본적인 기업 정상화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한전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추가 자구책도 내놨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 인재개발원 부지를 매각하고 자회사인 한전KDN 지분 20%를 팔기로 했다. 본사 조직을 20% 축소하고 인력 2000여 명도 감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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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전력을 상대적으로 많이 쓰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전기요금만 인상에 나선 건 한국전력의 적자를 일부 해소하면서도 내년 4월 총선에서 표를 잃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3개월 연속 물가 상승 폭이 확대된 상황에서 전기요금까지 올리면 서민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전기요금이 결정되면서 유가가 뛰면 전기요금도 오르는 ‘연료비 연동제’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 사항인 ‘전기요금 원가주의’는 사실상 폐기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 대기업 전기요금 한 달에 3억 원 상승
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이 kWh(킬로와트시)당 평균 10.6원 인상하기로 한 전기요금은 산업용 중에서도 ‘을’ 요금이다. 광업, 제조업 분야의 대기업과 중견기업들이 주로 사용하는 요금이다. 하지만 해당 요금 중에서도 송전 전압에 따라 인상 폭이 다르다. 중견기업이 주로 사용하는 ‘고압A’는 kWh당 6.7원, 대기업이 쓰는 ‘고압B’와 ‘고압C’는 kWh당 13.5원 오른다. 대기업 전기요금이 중견기업 대비 더 큰 폭으로 오른 셈이다.
한전은 이번 요금 인상으로 중견기업은 매월 200만 원, 대기업은 2억5000만∼3억 원의 전기요금이 추가될 것으로 추산했다.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커서 (전기요금 인상분을) 부담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며 “기업들이 그동안 값싼 전기를 대량으로 사용한 혜택을 누려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전기를 많이 쓰는 철강, 반도체 업계 등은 원가 부담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 철강업계에선 전기요금이 kWh당 1원 오르면 원가 부담이 연간 200억 원 추가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이날 “기업의 고통 분담도 필요하지만 고물가·고환율·고금리로 이미 한계 상황에 놓인 우리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크게 위축될까 우려된다”며 “중장기적으로 사회 전반의 에너지 효율이 개선될 수 있도록 원가주의에 입각한 가격체계를 정착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요금 인상으로 연료비 연동제와 전기요금의 원가주의가 유명무실해졌다고 지적했다. 박종배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산업계에서 전기를 많이 쓰기 때문에 올린 건 이해가 되지만 가정과 자영업자가 쓰는 전기요금도 일부 인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가정용과 산업용의 전기 원가는 같기 때문에 이번 결정으로 전력 시장의 왜곡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커졌다”고 말했다.
● “추가 전기요금 인상은 힘들 것”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과 함께 적자 해소를 위한 추가 자구책도 함께 내놨다. 특히 서울 노원구에 있는 64만 ㎡ 넓이의 인재개발원 부지를 매각하기로 했다. 해당 부지는 자산 가치 등을 고려해 그간 매각 대상에선 제외돼 왔다. 자회사인 한전KDN은 매각 가치를 높이기 위해 국내 증시에 상장한 뒤 지분 20%를 팔 방침이다. 필리핀 칼라타간 태양광 사업 보유 지분 38%도 전량 매각한다.
한전은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약 1조 원의 현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얻게 될 추가 수익(연간 약 2조8000억 원)까지 합하면 약 3조8000억 원이다. 올 상반기(1∼6월) 한전의 부채가 약 201조 원이기 때문에 부채의 1.8%에 불과한 수준이다. 전기요금 인상과 추가 자구책이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 밖에 한전은 본사의 본부장 직위 5개 중 2개를 없애는 등 본사 조직을 20% 줄이기로 했다. 창사 이래 두 번째로 희망퇴직도 실시한다. 공공기관 혁신계획에 따라 올 1월 감축한 정원보다 더 많은 488명은 올해 말까지 내보내고, 2026년까지 운영인력 약 700명을 추가로 감축한다.
내년 1분기(1∼3월) 전기요금은 현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요금 인상에 회의적인 상황에서 한전이 더 내놓을 자구책이 없으면 추가 요금 인상은 힘들 것”이라며 “조만간 1분기 요금 인상 논의에 들어가야 하지만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 정치적 고려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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