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는 맥주 싫다”… ‘헬시플레저’ 열풍에 비알코올 맥주 ‘주류 진입’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11일 01시 40분


[위클리 리포트] 비알코올 맥주에 취한 MZ세대
도수 1% 미만 ‘비알코올 맥주’ 인기… 쉽게 안 취하고 주류세 없어 저렴
코로나19 때 급성장해 편의점 매출 증가
맥주 소비 감소에 따른 대체재로 부상… 2032년까지 연평균 5.5% 성장할 것

《‘알코올 0.0%’ 맥주가 뜬다는데…


취하지 않는 비알코올 맥주가 주류 시장의 ‘신(新)주류’로 떠오르고 있다. 즐길 건 즐기면서 건강관리를 하고 싶다는 수요에, 굳이 취할 때까지 과음하지 않는 음주 문화가 확산하며 비알코올 맥주 시장을 키우고 있다.》





# 직장인 김모 씨(39)는 연말 술자리에 반드시 ‘비(非)알코올 맥주’를 챙겨 나간다. 영업직이라 음주가 잦지만 태생적으로 술에 약해서 스트레스를 받던 그에게 알코올 도수가 1% 미만인 비알코올 맥주는 ‘비장의 무기’가 됐다. 그는 “비알코올 맥주는 쉽게 취하지 않으면서도 회식 자리에 잘 어울릴 수 있게 해준다”며 “맛도 색깔도 일반 맥주와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 최근 건강검진을 통해 ‘알코올 섭취를 줄이라’는 의사 권고를 받은 전문직 강모 씨(35·여)는 퇴근 후 집에서 습관처럼 마시던 캔맥주 대신 ‘무(無)알코올 맥주’를 마신다. 비록 일반 맥주는 끊기로 했지만, 맥주를 마실 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맛과 청량감은 포기할 수 없어 무알코올 맥주를 대안으로 찾아낸 것이다.

6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시민들이 논알코올 맥주를 고르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헬시플레저’(헬시와 플레저의 합성어로 즐겁게 건강을 관리한다는 뜻) 열풍을 타고 무알코올 맥주를 포함한 비알코올 맥주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신종 주종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기를 거치며 회식이 줄어든 데다 혼자서 집에서 편하게 술을 즐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굳이 취해가며 술을 마실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돼서다. 음주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술을 잘 마시지 못해도 괜찮다”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과거 ‘아웃사이더’ 취급을 받던 비알코올 맥주가 조만간 관련 시장의 주류로 합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알코올 도수 1% 미만… ‘헬시플레저’ 타고 인기

한국 주세법은 알코올 도수 1% 이상인 음료를 주류로 정의하고 있다. 비알코올 맥주는 맥주의 맛을 지녔으면서도 알코올 도수 1% 미만인 성인용 음료를 가리킨다. 현행법상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성인 인증을 받은 소비자라면 온라인으로도 주문할 수 있다. 맥주에 매겨지는 주세도 없기 때문에 비알코올 맥주는 일반 맥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싸다. 올해 기준으로 맥주에는 L당 885.7원의 주세와 함께 교육세 등이 붙고 있다.

비알코올(non-alcohol) 맥주 중 ‘무알코올’이라는 이름이 붙는 제품도 있다. 무알코올 맥주는 문자 그대로 알코올 함량 0.00% 미만으로, 사실상 알코올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 음료다. 반면 비알코올은 미량의 알코올을 함유하고 있다. 이는 제조 과정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무알코올 맥주는 통상 효모를 첨가해 발효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알코올이 생성되지 않는다. 따라서 무알코올 맥주에는 0.00%나 알코올 프리(free)라는 표현을 담을 수 있다.

반면 비알코올 맥주는 일반 맥주와 동일하게 발효 과정을 거치지만, 알코올이 대량 생성되지 않도록 온도를 유지하거나 제조 후 알코올만 제거하는 등의 공법을 적용해 미량의 알코올이 남게 된다.

비알코올 맥주는 1919년 금주법이 시행된 미국에서 태동했다. 이후 한동안 명맥이 끊겼으나 20세기 후반 들어 미국, 유럽 등의 맥주 제조사들이 새로운 양조 기술을 개발하면서 일반 맥주의 맛과 풍미를 가진 비알코올 맥주를 내놓게 됐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건강을 중시하는 트렌드가 확산되자 비알코올 맥주를 개발한 회사들도 늘어나게 됐다. 글로벌 시장 조사업체인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비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는 2022년 220억 달러에서 2032년 400억 달러로 연평균 5.5%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 8년 만에 4배로… 코로나19 확산 타고 급성장

비알코올 맥주가 코로나19 때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국산 비알코올 맥주의 시초로는 동양맥주(현 오비맥주)가 1993년부터 2007년까지 판매된 알코올 함량 0.7%의 ‘OB사운드’가 꼽힌다. 다만 비알코올 맥주가 시장에 안착하게 된 건 하이트진로가 2012년 내놓은 ‘하이트제로 0.00’부터라는 평가가 많다. 출시 이후 꾸준히 인기를 얻으면서 지난해 누적 판매량 1억 캔을 넘었다. 이후 롯데칠성음료는 ‘클라우드 클리어 제로’를, 오비맥주는 알코올이 소량 함유된 비알코올 맥주 ‘카스 0.0’을 각각 개발해 팔고 있다.

하지만 비알코올 맥주는 여전히 비주류다. 지난해 국내 맥주 시장 규모는 출고액 기준으로 약 4조15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주류업계는 비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가 300억 원 정도일 것으로 본다. 다만 성장세는 가파르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비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는 2014년 81억 원 수준이었던 데서 8년 만에 약 4배로 커진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는 한국의 비알코올 맥주 시장 규모가 2025년 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코로나19 대유행기를 지나며 비알코올 맥주의 성장세가 뚜렷해졌다고 본다. 실제로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는 물론이고 하이네켄, 칭다오, 호가든, 버드와이저 등 유명 맥주 제조사들도 비알코올 맥주 수요 확대에 맞춰 국내에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편의점 GS25가 최근 3년간 편의점 비알코올 맥주의 연간 매출 증가율을 분석한 결과 2021년 766.5%, 2022년 5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의 경우 1∼10월 매출 증가율이 전년 동기 대비 25.3%로 집계됐다. 판매 제품 수도 2020년 5개에서 올해 17개로 늘었다. GS25 관계자는 “일반 맥주와 탄산음료를 모두 대체할 수 있고, 주세로부터도 자유로워 가격이 비교적 싸다 보니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도 비알코올 맥주 판매가 늘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장조사기관 닐슨IQ를 인용해 코로나19가 유행하던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비알코올 맥주 판매가 4년 동안 연평균 31% 늘었다고 전했다.

● 맥주 소비 감소에 나온 ‘고육지책’

비알코올 맥주 소비 증가를 바라보는 주류업계 속내는 복잡하다. 비알코올 맥주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보다 맥주를 포함한 주류 소비량 감소세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위기감이 더 크게 다가오고 있어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1인당 연간 알코올 섭취량은 9.1L였으나 2021년에는 7.7L까지 줄었다. ‘순수 알코올’을 기준으로 500mL 맥주 캔으로 환산할 경우 364캔에서 308캔으로 감소한 것이다. 이 같은 추세는 사람들이 저도수 주류를 선호하는 수준을 넘어, 아예 맥주를 포함한 알코올 소비 자체를 줄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맥주업체 기린이 분석한 ‘세계 주요국 맥주 소비량’에 따르면 한국인 1인당 평균 맥주 소비량은 2019년 39.4L에서 2021년 36.5L로 줄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시기인 2022년에는 맥주 소비가 반등했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평가”라며 “장기적으로는 인구 감소로 맥주의 주 소비층도 얇아질 수밖에 없어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맥주 소비 감소는 한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연간 맥주 출하량이 1994년 700만 kL(킬로리터)를 넘으며 정점을 찍은 뒤 매년 감소해 지난해에는 200만 kL를 밑돌았다. 일본 역시 젊은층을 중심으로 술을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인터넷 업체 빅로브의 설문에 따르면 일본 20∼24세 성인의 80%는 “일상에서 술을 마시고 싶지 않다”고 답할 정도였다.

맥주 종주국으로 꼽히는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양조협회에 따르면 독일인 1인당 맥주 소비량이 1970년대 145.9L에서 2022년 91.8L까지 줄었다. 세계 최대 맥주 소비국인 중국에서도 맥주 소비 감소가 예상되고 있다. 경기 침체로 맥주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가 맥주를 외면해서다. 실제로 홍콩 증시에 상장된 중국 내수 1위 화룬맥주의 주가가 연초 대비 24% 내렸고, 버드와이저와 칭다오 맥주 주가도 같은 기간 각각 37%, 24% 떨어졌다.

● 맥주 소비자 이탈 막고, 새 시장도 만들 것

결국 비알코올 맥주 시장의 성장 이면에는 일반 맥주 소비 감소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맥주 제조사들은 비알코올 맥주 라인업을 강화해 맥주 소비자들의 이탈을 막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일본 최대 맥주회사인 아사히맥주는 “2050년에는 매출 절반이 저알코올 혹은 무알코올 음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맥주업계 1위 오비맥주도 현재는 비알코올 맥주 매출 비중이 미미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20% 수준까지 올라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비알코올 맥주가 일반 맥주 수요를 잠식하기보다는, 별도의 시장을 만들어 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WSJ는 “비알코올 맥주 구매자는 일반 맥주도 구입하고 있다. 결국 점심시간, 운전하기 전과 같은 시간이 새롭게 (비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시간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하이네켄은 미국 내 영상 광고를 통해 운전하기 전이나 근무 중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할 때 비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그려내며 새로운 수요 창출에 힘을 쏟고 있다. KOTRA에 따르면 세계 3위의 맥주 소비국인 브라질에서도 2021년 일반 맥주 판매량이 전년 대비 약 8%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비알코올 맥주 판매도 44% 늘었다. 아울러 종교적인 이유로 술을 먹지 않는 이슬람 문화권에서 무알코올 맥주 판매가 확대되면서 새로운 소비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도 나온다.

도수 낮은 비알코올 맥주… 아무때나 마셔도 괜찮을까?


비알코올 맥주는 알코올 도수 1도 미만이어서 공식적으로 주류로 분류되지 않는다. 하지만 명칭에 여전히 맥주가 붙고, 맥주 대용으로 마시는 만큼 여러 상황에서 애매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한 궁금증을 일문일답으로 풀어봤다 .

Q. 비알코올 맥주는 주류가 아니니 운전해도 문제 없을 것 같은데….

칭다오 맥주가 생산하는 ‘칭다오 논알코올릭’(알코올 도수 0.3도)의 경우 330mL짜리 126캔을 마셔야 알코올 도수 4.5%인 일반 맥주 500mL를 마신 것과 같다는 안내문이 있다. 순수 알코올을 기준으로 환산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보면 비알코올 맥주 1, 2캔을 음용한다고 해서 음주운전 단속 기준(혈중 알코올 농도 0.03% 이상)을 넘을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하지만 음주 운전을 연상시킬 수 있고, 알코올 분해능력 역시 개인에 따라 달라 미량의 알코올에도 취약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경찰이나 제조사는 “비알코올 맥주라고 해도 이를 마시고 운전하는 것은 굳이 권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Q. 업무 중 비알코올 맥주를 마셔도 될까.

올해 6월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근무 중 무알코올 맥주를 마신 신입사원’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주류가 아니니 상관없다”는 의견과 “외관상 맥주와 비슷하고 정서적으로 봤을 때 옳지 않다”는 반론이 치열하게 맞붙었다. 기업 인사담당 A 씨는 “징계는 어렵겠지만, 사내 평판에는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Q. 비알코올 맥주는 주세가 안 붙어 싸다는데, 소매점에서 일반 맥주와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

현재 비알코올 맥주의 경우 생산량이 상대적으로 적어 시중에 소량만 풀리다 보니 할인 행사 등이 적어서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면 가격이 더 하락할 여지도 있다. 가격은 통상 일반 맥주의 3분의 2 수준이다.

Q. 임신부가 무알코올 맥주 마셔도 되나.

비알코올 맥주의 경우 미량의 알코올이 함유돼 있어 태아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마시지 않는 게 좋다”는 게 전문가와 제조사의 입장이다. 무알코올 맥주에 대해서는 알코올을 만드는 발효 공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알코올이 없는 만큼 마셔도 무방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다만 무알코올 맥주에 들어가는 첨가물, 당류가 걱정된다면 피하는 게 낫다는 조언도 있다.

#헬시플레저 열풍#비알코올 맥주#주류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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