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월급이 270만 원밖에 안 되는 이유

  • 주간동아
  • 입력 2023년 11월 19일 10시 32분


[돈의 심리] 퇴사하면 경제적으로 곤란하도록 보수 책정… 돈 많아지면 일 덜 해

회사는 직원들에게 먹고살 수 있는 만큼만 월급을 준다. [GettyImages]
회사는 직원들에게 먹고살 수 있는 만큼만 월급을 준다. [GettyImages]
사람은 평소보다 돈을 많이 벌면 일을 더 하려 할까, 아니면 더는 일하지 않고 쉬려 할까. 직원들이 돈을 많이 받았을 때 일을 더 하려 한다면 회사는 직원들에게 월급을 많이 주고 보너스도 덤으로 줄 수 있다. 하지만 돈을 많이 받았을 때 더는 일하려 하지 않는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직원들에게 월급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만 지급해야지 많이 줘선 오히려 곤란해진다.

업무 대가 적당해야
도올 김용옥 선생이 강의에서 소개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중국 관광지를 둘러보는데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관광객으로부터 돈을 받는 이들이었다. 음악이 굉장히 좋았던지 도올 선생 일행이 악사들에게 100위안을 줬다. 100위안은 현 시세로 1만8000원 정도 되지만, 이 에피소드는 10년도 더 된 일이고 당시 100위안은 중국에서 굉장히 큰돈이었다. 악사들이 하루 종일 거리에서 연주해도 벌 수 없는 금액이었다. 도올 선생 일행이 관광을 끝내고 그 자리에 다시 와보니 악사들이 없었다. 큰돈을 받은 후 그날 연주를 끝내고 술을 마시러 간 것이었다. 도올 선생 일행은 연주가 좋아서 돈을 줬는데, 돈을 받은 악사들은 더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 도울 선생은 업무 대가로 적당한 돈을 줘야지 큰돈을 줘서는 곤란하다는 취지로 이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 석좌교수는 뉴욕 택시기사들의 소득과 근무 방식에 관한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뉴욕 택시기사의 수입은 비가 오는지 여부, 시내에 행사가 있는지 여부 등에 따라 좋은 날도 있고 그렇지 못한 날도 있다. 그럼 수입이 좋은 날 택시기사들은 더 오래 일할까, 아니면 그날 벌어야 할 돈을 일찌감치 벌었으니 빨리 퇴근하려 할까.

수입이 좋은 날에는 평소보다 더 오래 일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서 수입이 좋은 날 더 오래 일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택시기사 중에는 그날 목표한 금액을 벌면 바로 일을 끝내는 사람들도 있다. 수입이 좋은 날은 하루 벌어야 할 돈이 일찍 채워지기에 다른 때보다 일찍 퇴근해 쉬거나 논다. 앞에서 본 중국 악사들처럼 일을 일찍 끝내는 것이다. 이처럼 수입이 많아지면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세일러 교수 연구팀은 이 패턴이 노련한 택시기사인가 아닌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노련한 택시기사는 수입이 좋은 날에 더 오래 근무했고, 많은 돈을 벌었다. 이에 비해 일반 택시기사는 수입이 좋은 날 더 일찍 근무를 끝냈다. 그래서 수입이 좋은 날에 버는 돈이나 다른 날에 버는 돈이 별 차이가 없었다.

노련한 택시기사들이 더 많은 돈을 벌기는 했지만 근무 시간은 길었다. 일반 택시기사들은 돈을 적게 벌기는 했어도 근무 시간이 짧았으니 결과적으로 비슷한 것 아닐까.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일반 택시기사는 수입이 좋은 날에는 일찍 근무를 끝내지만, 수입이 안 좋은 날에는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근무한다. 그날 수입 할당량을 채워야 하기에 수입이 안 좋은 날에는 더 오랜 시간 일하는 것이다. 반면 노련한 택시기사는 수입이 좋은 날에는 평소보다 더 오래 근무하지만, 수입이 안 좋은 날에는 일찍 일을 끝낸다. 하루 할당량을 채우려고 억지로 일하지 않는다. 노련한 택시기사는 수입이 좋은 날에는 더 오래 일해서 많이 벌고, 수입이 적은 날에는 집에 일찍 들어간다.

하루를 단위로 하면 누가 더 유리한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근무시간과 수입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나은지 알 수 있다. 한 달을 기준으로 보면 노련한 택시기사는 일반 택시기사보다 5% 더 벌었다. 노련한 택시기사는 더 오래 일해서 많이 번 것일까. 그렇지 않았다. 동일한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는 노련한 택시기사의 수입이 10% 많았다. 근무시간 기준으로 10%를 더 벌었는데 최종적으로 5%만 더 벌었다는 것은 그만큼 노련한 택시기사의 근무시간이 적었다는 뜻이다. 노련한 택시기사는 일반 택시기사보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즉 수입이 좋을 때 열심히 일한 택시기사가 일정 수입을 채우면 더는 일하지 않는 택시기사보다 수입은 많고 근무시간은 오히려 적었다.

대부분 돈 벌려고 직장 다녀
보통 사람들은 돈을 더 많이 번다고 더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반대로 돈이 많아지면 일을 덜 하는 경향이 있다. 소수의 사람만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고 할 때 더 열심히, 많이 일한다. 욕심이 많아서일 수도 있고, 돈을 좋아해서일 수도 있으며, 더 전략적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사람은 소수다.

내가 직장에 다닐 때 훌륭한 직원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성실하긴 했다.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지는 않았으나 시키는 일은 군말 없이 다 했다. 안 한다고 빼지도 않았고 불평불만을 내뱉지도 않았다. 그러다 직장 생활을 하지 않아도 정년까지 먹고살 수 있는 큰돈이 생겼다. 그 후 직장에서 근무 태도에 심각한 변화가 생겼다.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근무 성적이 나빠져 성과급을 못 받는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성과급을 받으나 안 받으나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일을 안 해도 경제 상태에 전혀 영향이 없다. 시키는 일을 안 했다가는 잘릴 수도 있다. 하지만 잘리면 또 어떤가. 현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데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일하기가 싫다. 일하더라도 이전보다 강도가 낮아지고, 세밀한 사항에 대해 대강대강 넘어가려 한다. 위에서 뭐라고 하면 불평불만이 생긴다.

이때 알게 된다. 직장에 다녀야 먹고살 수 있을 때 직장에 충실해진다는 것을. 직장을 다니거나 말거나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 업무에 충실하기 어렵다. 회사 측에서 볼 때 이건 큰 문제다. 회사는 시합에서 꼭 이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선수로 뽑아서 업무를 맡겨야 한다. 시합에서 이기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하는 사람이 팀에 끼어 있으면 팀 전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사람은 경제적으로 월급이 필요해야 업무에 신경 쓴다. 월급이 전혀 필요 없는 사람은 회사 일을 제대로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회사에서 나가주는 게 회사 입장에서는 더 좋다. 직장에 다니면 안 되는 사람들이다. 물론 돈과 상관없이 일하는 이들도 있다. 업무 자체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 거기에서 자아실현의 길을 찾으려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은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 다닌다. 월급이 전혀 없어도 자아실현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해도 큰돈을 벌 수 없는 이유도 알게 된다. 회사가 이익이 많다고 일반 직원들에게 연봉 5억 원, 10억 원씩 주면 어떻게 될까. 직원들은 몇 년 일하다 돈이 모이면 퇴직할 것이다. 그럼 회사에 일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회사는 직원들에게 먹고살 수 있는 만큼만 돈을 줘야 한다. 사회 평균 수준보다 월급이 많더라도 몇 년 저축하면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이 모일 정도로 줘서는 안 된다. 회사는 직원들이 중산층 수준만 유지하도록,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곤란해지도록 보수를 책정해야 한다. 직원들이 모두 큰 부자가 돼 회사를 떠나면 회사는 망한다.

월급으로는 부자 되기 힘들어
연봉 5억 원, 10억 원을 주는 직장도 있지 않나. 대기업 이사, 고소득 전문직은 그 정도 받지 않나. 이런 사람들은 노련한 택시기사처럼 돈을 더 주면 일을 많이 한다. 즉 돈을 많이 벌었다고 놀려 하지 않고, 돈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회사는 돈을 많이 줘도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열심히 일할 직원이라는 확신이 섰을 때 높은 연봉을 준다. 즉 일 중독자에게 많은 월급을 주는 것이다. 반면 워라벨을 외치는 사람에게 높은 연봉을 주면 일을 안 한다. 이런 검증을 통과하는 사람은 소수일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높은 연봉을 받는 사람은 소수일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직장 생활만으로 큰 부자가 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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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15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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