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계에서 현재 시점 가장 핫한 뉴스는 이게 아닐까 싶습니다.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 축출 소식. ‘챗GPT의 아버지’로 불리던 샘 올트먼이 17일 갑자기 오픈AI 이사회에 의해 해고됐는데요. 19일엔 올트먼이 MS에 합류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놀라운 소식의 연속입니다.
자기가 만든 회사를 이끌어오던 창업자가 이사회에 의해 쫓겨난다? 한국에선 익숙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미국에선 종종 일어나는 일이죠. 오늘은 해고된 유명 창업자들과 그들의 반격 스토리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이 기사는 21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
원조 ‘Mr. 테슬라’ 마틴 에버하드
기업의 이사회는 투표를 통해 CEO를 해임할 수 있습니다. ‘회사와 주주 이익의 보호’라는 명분에서 말이죠. 때로는 창업자라 해도 이사회에 의해 잘릴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은 아주 큰 뉴스거리가 되곤 하죠. 해고된 유명 창업자들은 많지만 그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마틴 에버하드(Martin Eberhard), 테슬라 공동 창업자
테슬라 창업자가 일론 머스크가 아니란 사실, 알고 계시나요. 테슬라는 마틴 에버하드가 2003년 친구인 마크 타페닝과 함께 공동 설립한 회사입니다. 그때 당시엔 새로운 기술이었던 리튬이온배터리를 이용한 고성능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비전으로 설립한 스타트업이었죠. 이듬해 4월 머스크는 750만 달러를 투자했고 최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이 됐습니다. 에버하드는 CEO를 맡아 테슬라의 첫 번째 자동차 로드스터(Roadster) 개발을 진두지휘했고요. 2006년 7월 테슬라가 할리우드 스타 초청행사를 열고 대당 10만 달러짜리 로드스터 100대를 사전주문 받을 때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자신감 있고 똑똑하고 열정 넘치는 괴짜인 에버하드는 ‘미스터(Mr.) 테슬라’로 불렸습니다. 언론은 ‘최초의 전기 스포츠카를 만든 인물’이라며 그를 찬양했죠. 그럼 일론 머스크는? 놀랍게도 그 행사를 다룬 뉴욕타임스 기사에서 머스크 이름은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아서, 그가 분통을 터뜨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해 말부터 에버하드의 로드스터 생산 계획은 삐걱거렸습니다. 수백개에 달하는 부품 공급을 관리할 역량이 없었기 때문이죠. 당시 테슬라는 최고재무책임자도, ERP 프로그램도 없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에버하드는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넘치지만 큰 조직을 이끌 경영 능력은 미숙한 전형적인 스타트업 창업자였습니다.
결국 2007년 여름, 에버하드는 로드스터 생산지연으로 인해 CEO직에서 해고됩니다. 에버하드는 회사에서 쫓겨나면서 ‘비방 금지 계약’을 맺었는데요. 그럼에도 그는 “나는 내가 대우받은 방식에 전혀 만족하지 않는다. 이것이 테슬라와 고객, 투자자를 위한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다”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합니다.
2008년 테슬라 CEO로 취임한 일론 머스크는 에버하드를 “함께 일한 최악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에 발끈한 에버하드는 2009년 5월 머스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죠. 머스크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퇴출을 주도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는데요. 넉 달 뒤 두 사람은 합의했고 에버하드는 소송을 철회합니다.
에버하드는 테슬라를 떠날 때 5% 미만의 지분율 소유하고 있었다는데요. 올해 초 인터뷰에서 여전히 작은 지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힙니다. 그는 한동안 전기차 관련 기업에서 일한 적 있지만 지금은 스스로를 ‘은퇴한 기업가’로 소개합니다. 지금은 테슬라 공동창업자였던 타페닝과 함께 소규모 투자회사에서 일하고 있죠. 두 사람은 아직도 1988년부터 해온 대로 매주 수요일에 만나 커피를 마신다고 합니다.
‘포털의 황제’ 제리 양
제리 양(Jerry Yang), 야후 공동 창업자
한때 그는 ‘포털의 황제’로 불렸습니다. 미국 인터넷 포털사이트 야후의 창업자 제리 양. 스탠퍼드대 대학원 조교 시절, 인터넷 사이트를 주제별로 정리한 무료 사이트 ‘제리 양의 월드와이드웹 가이드(Jerry‘s Guide to the World Wide Web)’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시장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1995년 야후를 설립하고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나가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성공 신화를 씁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야후는 승승장구했죠. 하지만 검색 기능에서 한발 앞선 구글이 치고 나오면서 내리막길을 걷습니다. 특히 2008년 2월 446억 달러(주당 31달러)에 야후를 인수하겠다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제안을 뿌리친 것이 결정적 패착이었습니다. 업계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랄 만한 가격이었지만, 제리 양은 야후를 팔 생각이 없었습니다. 불과 몇 달 만에 주가는 10달러 수준으로 곤두박질쳤고, 제리 양은 여러 건의 주주 소송에 직면합니다. 결국 2009년 그는 CEO 자리를 내려놔야 했죠.
훗날 인터뷰에서 제리 양은 야후가 투자한 알리바바 지분 가치가 엄청나게 커질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MS의 인수 제안을 거절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야후는 2012년 불과 주당 13달러라는 헐값에 알리바바 주식 5억2300만주를 알리바바에 다시 매각했죠. (참고로 2014년 알리바바 나스닥 상장 직후 주가는 약 90달러)
제리 양은 야후를 떠난 뒤 투자회사 AME 클라우드 벤처스를 설립해 스타트업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알리바바의 이사회 멤버이자, 스탠퍼드대학 이사회 의장이기도 하죠. 포브스에 따르면 아직 55세(1968년생)인 그의 순자산은 26억 달러로 여전히 상당한 부자(세계 순위 1272위)입니다.
애슬레저 트렌드 창시자, 칩 윌슨
칩 윌슨(Chip Wilson), 룰루레몬 창업자
사업 실패나 경영 판단의 오류가 아닌 이유로 축출당하는 창업자도 있습니다. 부적절한 언행으로 말이죠. ‘요가복 계의 샤넬’ 룰루레몬을 창업한 칩 윌슨이 그런 경우이죠.
룰루레몬은 1999년 캐나다 밴쿠버에 첫 번째 매장을 열었습니다. 기능성 운동복 사업을 했던 칩 윌슨은 요가 수업에 참석했다가 사업 아이디어를 얻어 창업했죠.
룰루레몬은 처음부터 단순한 운동용이 아닌 일상복을 위한 애슬레저 의류 회사를 표방합니다. 타깃 고객은 연봉 10만 달러를 받는 여행과 운동을 좋아하는 32세 전문직 싱글 여성. 윌슨은 “자기 소유 콘도를 갖고 있고, 트렌드에 민감하고 하루 1시간 30분씩 운동할 수 있는” 고객이라면 기꺼이 100달러짜리 요가 바지에 지갑을 열 거라고 내다봤죠.
그의 직감은 맞아떨어졌습니다. 신축성 있으면서도 탄탄한 소재로 몸매를 잡아주는 룰루레몬 요가복은 대히트를 칩니다. 레깅스 열풍을 일으키며 이후 회사는 엄청나게 성장해 나갑니다.
칩 윌슨의 경영철학은 좀 독특했습니다. 집요하게 자신이 원하는 조직문화를 추구했는데요. 직원들이 리테일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1년, 5년, 10년 뒤 목표를 적어서 매장에 걸어두게 하거나, 동기 부여 수업을 참석하게 했죠. 이에 세뇌당하는 것 같다는 직원 불평이 이어졌고요.
2011년엔 쇼핑백에 자신이 좋아하는 책 ‘Atlas Shrugged’의 첫 문장(‘Who is John Galt’)을 넣었는데요. 이게 엄청난 논란을 일으킵니다. 이타주의를 배척하고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것을 장려하는, 자유시장주의의 상징적인 책이었기 때문이죠. 이 소란으로 윌슨은 최고 혁신·브랜딩 책임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이후 윌슨은 비상임 회장직만 유지했는데요. 그마저 잃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2013년 룰루레몬 검정색 요가 팬츠가 너무 속이 훤히 비쳐 보인다는 이유로 반품이 이어집니다. 이때 윌슨이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망발했습니다. “솔직히 일부 여성의 신체는 (요가)바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요. 여성들이 분노했고, 룰루레몬 주가까지 급락합니다. 이사회와 긴장관계에 있던 윌슨은 회장직 사임을 발표합니다.
그는 여전히 룰루레몬 지분 8%를 보유한 개인 최대 주주입니다. 그의 순자산은 62억 달러(세계 431위)에 달하죠. 그는 지난해 낸 회고록 ‘룰루레몬 스토리’에서 자신을 ‘실적주의에 사로잡힌 이사회의 희생양’으로 묘사했는데요. 실패를 두려워하는 ‘합리적인 사고’가 지배하면 창의성이 사라져 위대한 기업이 될 수 없다(즉, 자신은 창의성 넘치는 혁신의 리더였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Steve Jobs), 애플 공동 창업자
쫓겨난 창업자 스토리엔 이 사람이 빠질 수 없죠. 궁지에 몰린 모든 창업자에게 희망이 되는 사례, 스티브 잡스입니다.
1976년 스티브 잡스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업하고 세계 첫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어냅니다. 애플이 급성장하자 1983년 잡스는 펩시콜라 출신 전문 경영인 존 스컬리를 영입하고 본인은 매킨토시 프로젝트에 매진하죠.
잡스는 ‘미친 듯이 위대한’ 제품을 추구하는 인물이죠. 그의 끝없는 완벽주의와 막대한 마케팅에 대한 고집으로 인해 첫 번째 맥 컴퓨터 가격은 무려 2500달러로 책정됐습니다. 당시 주류 컴퓨터는 1000달러 정도. 당연히 맥 컴퓨터 판매량은 형편없었습니다. 예측치의 10%에 불과했죠. 하지만 잡스는 실패를 인정하는 대신 다른 직원을 꾸짖었다는데요. 직원을 향해 ‘똥(shit)’ 또는 ‘멍청이(asshole)’ 같은 욕을 퍼붓는 건 그에겐 일상적인 일이었죠.
1985년 스컬리 CEO는 잡스 해고를 위한 이사회를 소집합니다. 익명투표를 벌인 끝에 애플 이사회는 잡스를 축출했죠.
분신 같은 회사에서 쫓겨나는 창업자의 기분은 어떨까요? 잡스가 애플에서 해고된 날, 매킨토시 마케팅 담당이었던 마이크 머레이는 너무 걱정돼서 그의 집으로 찾아가서 몇 시간 동안 함께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잡스가 자살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 때까지 말이죠.
잡스 이후 또 다른 컴퓨터 회사 넥스트(NeXT)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1996년 12월 넥스트가 애플에 인수되면서 다시 애플로 돌아오죠. 그리고 1997년 9월. 마침내 잡스가 애플의 CEO를 맡게 되는데요. 그 이후는 다들 아는 이야기입니다.
훗날 스탠퍼드대학에서 한 유명한 졸업식 축사에서 잡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것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일이었습니다. 성공의 무거움은 다시 초보자의 가벼움으로 바뀌었습니다.”
다시 영웅으로 돌아오려면
회사에서 쫓겨난 리더들이 누구나 스티브 잡스처럼 시련을 딛고 일어나 더 위대해질 수 있는 건 아니죠. 사실 축출된 리더의 화려한 복귀는 영웅 신화(초기 성공-시련의 지속-좌절-최종 승리)만큼이나 드문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반등에 성공한 리더들에겐 공통점이 있다는데요. 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교수는 오래전 하버드비즈니스리뷰(2007년 1월호)에서 이를 분석했습니다. 시간은 꽤 지났지만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해서 소개해드릴게요.
그에 따르면 쫓겨난 창업자나 CEO가 재기에 성공하느냐 마느냐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평판입니다. 이전의 대중적 평판을 재건할 수 있어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죠.
이사회는 리더를 해고하면서 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해고 이유를 일부러 숨기기도 합니다. 예컨대 “개인적인 이유로”, 또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사임했다고 발표하는 식이죠. 이어 언론이 추측 기사를 쏟아내면서 쫓겨난 리더의 평판은 더 훼손될 수 있는데요. 이 때문에 소넨펠트 교수는 함부로 ‘비방 금지 계약’에 서명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회사를 떠난 뒤) 발언하지 않겠다고 동의하면 수년 동안 실업 상태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적극적으로 반박해 평판을 회복해야 하죠.
그런데 이사회가 밝힌 해고 이유에 대해 딱히 반박할 거리가 없다면? 그때도 방법은 있습니다.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거죠. 그에 따르면 “대중은 종종 진정한 회개를 엄청나게 용서합니다.” 평판 지키기 못지않게 중요한 건 자신의 실패에 직면해서 인정하는 겁니다. 과거 실패에 연연해 분노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란 뜻이죠. ‘월가의 황제’ JP모건 CEO 제이미 다이먼은 이를 잘 해낸 모범사례입니다. 1998년 씨티그룹의 후계자로 여겨졌던 다이먼은 자신의 멘토였던 샌디 웨일 씨티그룹 회장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실직 시절 그는 위대한 국가 지도자들의 전기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하죠. 그리고 해고된 지 1년 뒤 샌디 웨일 회장을 점심식사에 초대합니다. 왜? 감사하다고 말하기 위해서요. “나는 이 사건을 뒤로 하고 계속 나아가길 원했다”는 게 그의 회고입니다. 2000년 다이먼은 뱅크 원 은행의 CEO로 화려하게 돌아왔고요. 뱅크 원이 JP모건과 합병하면서 2005년 JP모건 CEO에 오릅니다.
소넨펠드 교수는 반격을 위해선 다른 사람들을 전투에 참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조언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지지를 다시 얻을 수 있는 ‘영웅적인 지위’를 추구해야 합니다. 다시 조직을 만들고, 이끌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일을 하라는 거죠. 마치 잡스가 그랬듯이 말이죠.
그는 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꼽았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80년 재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참패했죠. 주 이란 대사관의 인질을 제때 석방시키지 못한 ‘실패한 대통령’이란 낙인도 찍혔습니다. 하지만 아내 로잘린의 열렬한 지원을 받아 사람들을 모집했고, 1982년 ‘카터 센터’를 세웁니다. 그리고 국제 분쟁 조정과 민주주의·인권 증진에서 역할을 하죠. 이 공로로 그는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합니다.
‘영웅적인 리더’가 아니라서 이런 조언이 딱히 와닿지 않는다고요? 하지만 소넨펠드 교수의 마지막 당부만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 모두가 패배하더라도 삶에서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도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정의할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만이 그것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누구도 우리의 희망과 자부심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By.딥다이브
유명한 기업의 리더가 이사회에 의해 해고되는 사례는 찾아보면 꽤 있습니다. 특히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내쫓기는 창업자 스토리는 큰 이야기거리가 아닐 수 없죠.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스타 창업자도 사업이 실패하거나 경영 판단에 오류가 있으면 잘릴 수 있습니다. 테슬라 창업자 마틴 에버하드, 야후 창업자 제리 양도 그렇게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경영 능력에 큰 문제가 없더라도 부적절한 언행으로 사회적 물의를 빗는 것 역시 해고의 빌미가 됩니다. 룰루레몬 창업자 칩 윌슨은 여성 비하적 발언으로 자리를 잃었습니다.
-해고 이후 오히려 더 대단해진 리더들도 있긴 하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다시 영웅적으로 돌아오려면 평판을 지키고 사람을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죠. 자신의 성공과 실패는 자기 스스로만 정의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