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갇힌 기업들]
대기업들 생산기지 해외 이탈에
중소 협력사들 거래처 끊길 우려
“비전 안 보여… 제조업 한계 온듯”
“경기 영향도 크지만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대거 동유럽, 북미 등에 제조 거점을 확충하면서 협력업체들의 걱정은 배가됐습니다.”
13일 이보영 평택상공회의소 회장은 현재 경기 전망을 더 어둡게 보는 이유 중 하나로 ‘산업 공동화’를 꼽았다. 이 회장은 “비용 부담 때문에 해외로 따라 나가지 못하는 중견·중소기업들은 국내에서 어떻게 먹고살지 고민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기 남부와 충청권에는 반도체(삼성전자), 자동차(현대자동차·KG모빌리티)와 자동차부품(전장·HL만도), 배터리(LG에너지솔루션), 디스플레이(삼성디스플레이) 등 한국 주력 산업 관련 소재 및 부품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국내 생산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진 대기업들은 줄줄이 해외 생산기지 구축에 나서고 있다. 규모가 크거나 자금 여력이 있는 협력사들은 해외 시장에 동반 진출해 새로운 기회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 협력사에는 ‘언감생심’이다. 대기업의 생산기지가 해외로 이전하면 중소 협력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기존 거래처를 잃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커진다. 이 때문에 적기에 투자를 하지 못하고, 이는 다시 경쟁력 저하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이 이뤄진다.
한 중소 협력업체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위기만 넘기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지만, 공장들이 해외로 나가는 지금은 아예 비전이 안 보인다”며 “국내 제조업이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은퇴를 앞둔 협력업체 대표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가업 승계보다는 사업을 접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다른 전장 협력사 관계자는 “젊은 인력 확보도 어려운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해외로 떠나면 사업을 유지하기가 정말 어려워진다”고 했다.
대기업 입장에서 해외 생산기지 구축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현지 시장을 공략하면서 물류비용을 줄이기 위해선 현지 공장 구축이 필수이고,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현지 생산 제품에 대해서만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을 확대하고 있어서다.
다만 산업 공동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대기업들도 국내 생산 비중을 축소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공장을 ‘마더 팩토리(Mother Factory)’로 삼아 전 세계 생산의 중심축을 맡는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대표적이다. 마더 팩토리는 신제품 양산, 기술 개발 등에 앞장서는 전진기지에 해당한다. 삼성전자 경기 용인시 기흥캠퍼스, LG에너지솔루션의 충북 ‘오창 에너지플랜트’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울산공장에 전기차 신공장을 짓는 한편으로 신용보증기금과 함께 해외 동반 진출 협력업체에 대한 금융지원도 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