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비스업 취업자, 전체 78.7%(10월 기준) 2. 2000년 이후 24년째 서비스 수지 적자 3. 기업 R&D 지출 중 서비스업 비중 OECD 꼴찌 4. 정부 투자 이끌 법안 12년간 국회 표류
회사 사장이 됐다고 해봅시다. 10명이서 일하는 작은 회사인데, 8명이 한 가지 사업에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업은 돈을 벌어오긴커녕 매년 적자가 나고 있습니다. 그럼 사장인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사업을 안 하면 된다고요? 그건 안 됩니다. 사실 이건 우리나라 얘기거든요. 지난달 기준으로 한국 취업자 중 78.7%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15.5%는 제조업, 5.8%는 농림어업에 종사하고 있죠.(통계청 대분류 기준)
대강 취업자 10명 중 8명이 서비스업에 일하는 셈인데, 한국은 서비스업에선 외화를 벌어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잃고 있죠.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한국의 서비스 수지는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 딱 2개 연도(1998, 1999)를 제외하면 적자를 봤습니다. 2000년부터 24년째 적자가 이어져 오고 있는 셈입니다. 올해 9월도 약 32억 달러 적자를 봐서 작년 5월부터 17개월째 적자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상수지에 한정하면 한국은 노동력의 8할을 쓰고 있지만 해외에선 돈을 잃는 사업을 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나라를 기업에 비유하는 건 조심해야 할 일이지만요.
왜 그럴까요?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몇 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생산성이 낮다
한국 서비스업은 생산성이 낮습니다. 노동생산성은 근로자 1인이 일정 기간 산출하는 생산량 또는 부가가치를 의미합니다. 노동생산성이 높은 산업일수록 같은 양의 노동력을 투입했을 때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서비스업 취업자당 노동생산성은 2019년 기준 6만4000달러로 OECD 조사 대상 36개국 중 28위입니다. 1인당 국민총소득이 한국과 비슷한 이탈리아(8만3000달러)나 스페인(7만6000달러)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저부가가치 산업 중심
이는 한국 서비스업 종사자가 대부분 저부가가치 산업에 분포해 있기 때문입니다. ‘생활 편의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무형의 용역을 제공’하는 서비스업은 요식업이나 배달부터 정보통신, 과학기술까지 분야가 다양합니다. 최저 시급을 받는 음식점 아르바이트보다는 대기업에서 과학 기술을 연구하는 연구직이 아무래도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겠죠.
한국의 서비스업 일자리는 도소매 및 숙박, 음식점업이나 운수, 창고업에 몰려 있습니다. 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체 서비스업 취업자 중 도소매 및 숙박, 음식점 종사자 비중은 한국이 30.0%로 OECD 국가 중 9위에 해당합니다. 운수, 창고업은 12위(7.9%)였죠. 서비스업 강국으로 불리는 영국은 각각 20.8%(29위), 5.8%(29위)에 그칩니다.
반대로 고부가가치, 지식기반 서비스업 비중은 작습니다. 서비스업 취업자 중 정보통신업 비중은 4.5%로 OECD 22위, 전문 과학 및 기술서비스업 비중은 6.2%로 28위에 그칩니다. 영국은 각각 5.8%로 9위, 10.0%로 5위네요.
투자가 적다
기업과 정부의 투자도 적습니다. 기업 연구개발(R&D) 지출 중 서비스업 비중은 2019년 기준 10.4%로 OECD 조사 대상 35개 국가 중 최하위였습니다. 연구원 1인당 연구개발비용도 2020년 기준 17만7000달러로 미국(39만1000달러), 독일(27만3000달러), 일본(24만2000달러), 프랑스(19만1000달러) 등 주요 선진국보다 크게 부족한 수준이었습니다.
기업들 입장에서 서비스업 R&D에 투자할 유인이 적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나 감면을 의미하는 R&D 정부 지원율을 살펴보면, 한국은 2021년 기준 2.0%로 조사 대상 37개국 중 31위에 그쳤습니다. OECD 평균(17.5%)보다도 한참 부족한 수준이었죠.
서비스업 투자 이끌 법안, 12년간 국회 표류
정부는 서비스업 투자를 촉진하기 위한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최근이냐고요? 아뇨. 12년 전입니다.
의료, 관광, 콘텐츠 등 유망 서비스 산업에 연구개발(R&D) 자금을 지원하고 세제 혜택을 주기 위한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서발법)은 2011년 정부 입법으로 처음 발의됐지만 12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습니다. 공공성이 강한 의료·보건 분야가 서비스업에 포함돼 의료계 등에서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죠. 서발법이 ‘의료 서비스를 영리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게 주요 반대 논리였습니다.
서발법은 서비스업 발전에 투입될 자금 지원 및 세제 혜택의 근거를 만드는 걸 골자로 하는 법입니다. 기획재정부 내에 ‘컨트롤타워’를 설치하고 5년 단위 계획을 만드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정부는 현재 ‘서비스산업 발전 TF’를 만들어 가동 중입니다. 올해 6월엔 TF를 통해 서비스 산업에 수출금융을 5년간 64조 원 공급하겠단 계획도 발표했습니다. 서발법이 통과되면 기재부 내에 상설 위원회가 생겨 서비스 산업 관련 장기 계획을 수립하게 됩니다.
정부는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기 전에 서발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의료 분야가 서발법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하는 조항을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안에 포함시킨다는 방침입니다. 이렇게 하면 의료계와 야당의 합의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2018년 민주당에서도 의료 분야를 뺀 서발법을 김정우 당시 의원 대표 발의로 제출한 적이 있기 때문에 여야가 합의할 여지는 충분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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