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너무도 당연해서 이름조차 생각해 보지 않은 것들이 많다. “왜, 그 있잖아, 그거”하면 상대방도 찰떡같이 알아들어서 굳이 정확한 명칭을 고민해 보지 않는 그런 것들. 특히 사무실에서 볼 수 있는 문구 가운데에는 늘 곁에 있고 친근해서 따로 이름이 있는지도 몰랐던 문구들이 많다. 여기서 문제 하나!
Q. 다음 문구의 이름은?
다들 어디서 본 것들이긴 하다. 심지어 사용해본 적도 있다. 어쩌면 이렇게 궁금해 했던 적도 있을 테다.
“스테이플러 심 빼는 기구 이름이 뭐지? 왜 스테이플러랑 닮은 거 있잖아.” “그냥 클립은 아니고 손잡이가 돌아가는 이 클립은 뭐라고 부르지?”
오늘은 사무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문구의 흔하지 않은 이름을 함께 조명해 보려고 한다. 이른바 ‘너의 이름은(ver.문구). 과연 독자님들은 오늘 소개할 문구들 가운데 몇 가지나 이름을 들어 봤을지 궁금하다.
1. 제침기
사무직 직장인이라면 스테이플러는 너무나도 익숙할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이 문구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 주변의 직장 동료들에게 이 문구의 이름을 아는지 물어봤을 때, 이름은 커녕 쓰임새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이 문구의 이름은 ‘제침기’다. 제침기(除針器)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침을 제거하는, 즉 스테이플러 심을 제거할 때 사용하는 도구다.
10장 내외의 종이를 스테이플러로 고정했다면 제침기를 동원하지 않아도 손톱이나 볼펜심 등을 이용해 심을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종이 장 수가 많으면 심을 제거하기가 어렵다. 또 손톱으로 뜯다가 오히려 손톱이 뜯기거나 볼펜심을 이용하다가 볼펜을 종이에 그어버리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곤 한다. 만일 스테이플러 심이 한 번에 제대로 뽑히지 않고 1자로 서면 뽑는 일이 더욱 수고롭다.
바로 이때, 제침기가 필요하다. 사무실에서 주로 사용하는 스테이플러의 사이즈는 10호와 33호이다. 제침기는 스테이플러 사이즈와 관계없이 사용할 수 있다. 제침기의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제침기의 날 부분으로 스테이플러 심을 살짝 힘주어 잡으면 쉽게 뽑힌다. 더 이상 손가락 아파하며 뽑지 않아도 된다. 스테이플러 심을 잘못 뽑아서 심이 일자로 서버린 경우에는 제침기의 뒷면을 이용해서 뽑을 수 있다.
스테이플러가 그렇듯 제침기에도 다양한 형태가 있다.
이 같은 형태의 제침기는 스테이플러 심은 물론이고 압정핀도 쉽게 뽑을 수 있다. 게다가 뒷면은 커터 칼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일석이조의 효과를 주기 위한 문구 디자이너의 센스다. 아마 한 번 써보고 나면 이후에는 꼭 제침기를 찾게 될 것이다.
2. 파로크립
이 네 가지 ‘클립’들의 이름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첫 번째 클립은 우리가 보통 ‘클립’이라고 부르는 도구로 얇은 스틸을 꼬아서 종이를 임시로 고정할 때 사용한다.
두 번째 클립의 이름은 ‘날클립’ 혹은 ‘날크립’이다. 이는 종이를 집은 자국을 남기지 않으면서도 스테이플러보다 더 여러 장을 고정할 수 있고 재사용할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세 번째는 ‘더블클립’이다. 더블클립은 두 개의 손잡이가 있는데 손잡이를 안쪽으로 당기면 클립이 벌어져 종이 등을 고정할 수 있다. 사이즈도 다양해서 많은 양의 종이를 고정하는 데 효과적이다.
마지막 ‘파로크립’은 날클립과 더블클립을 합친 형태로 손잡이를 펼치지 않으면 날클립처럼 생겼는데 손잡이를 펼치면 더블클립처럼 보인다.
이중에서 나는 파로크립을 가장 선호한다. 더블클립의 경우 클립 손잡이 부분이 튀어나와 있어서 종이를 넘길 때 손잡이만큼의 공간이 붕 뜬다. 하지만 파로크립은 손잡이 부분을 옆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 그럼 종이를 넘겨도 스테이플러나 날클립으로 고정한 것처럼 깔끔하게 똑 떨어진다. 이처럼 180도 접히는 손잡이는 세계 최초로 개발된 것이다. 또한 파로크립은 특수 도금 처리로 장기간 녹이 슬지 않게 만들어서 오랜 기간 문서 보관이 가능하다. ‘행정기록 보존용 크립’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런데 다른 클립들과 달리 ‘파로크립’이라는 명칭은 모호하다. 클립의 형태나 사용성과 이름이 매치되지 않아 기억이 힘들다. 처음 접했을 때 사용성에 반해서 재구매하려고 했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나 한참 구하지 못했었다. 왜 이름을 ‘파로크립’으로 지었는지 궁금해서 제조사 ‘바이하츠’에 직접 문의를 해봤다. 제조사로부터 받은 답변을 공유한다.
3. 비망록
오피스디포나 알파문구처럼 사무용 문구들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에 가면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얇은 수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문구도 단지 ‘수첩’이 아니라 ‘비망록’, 또는 ‘비망노트’라는 전문적인 이름이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비망록의 사전적 의미는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두는 책자다. 보통 군인이나 간호사 등의 직업군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니폼 주머니에 넣을 수 있도록 작고 얇게 나온다. 또한, 측량회사에서도 많이 사용하는데 야외 지질 조사시 답사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하는 용도다. 이처럼 내가 일하는 회사에서 자주 사용하는 문구가 아닐지라도 다른 산업군과 직군에서 즐겨 찾는 문구가 무궁무진할 것이다.
100년이 넘은 일본의 문구회사 고쿠요(KOKUYO)에서도 비망록과 비슷한 노트를 ‘스케치북’, ‘레벨북’이란 제품명으로 판매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이를 과거에는 측량회사 등에서 사용했지만 이제는 쓰임새가 조금 달라졌다.
비망록은 휴대를 강조한 노트인 만큼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얇고 가볍다. 이에 비망록을 여러 권 엮어서 하나의 두꺼운 다이어리로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내지의 양이 많지 않아서 ‘영화표 수집’, ‘하루에 한 번 감사한 일 기록’ 등 주제를 하나 정해 간단하게 기록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나는 ‘나만의 단어 사전 만들기’라는 커뮤니티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데 비망록에 이 주제를 담아 기록하고 있다.
두꺼운 노트는 쓰고 있으면 ‘이걸 언제 다 쓰나’ 하는 생각에 기록을 꾸준히 하기 힘든데 얇은 노트를 활용하면 몇 장 안 써도 노트 한 권을 금방 다 썼다는 뿌듯함과 보람을 비교적 쉽게 느낄 수 있다. 노트를 다 쓰는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기록을 습관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한편, 고쿠요에서는 ‘100인 100개의 노트’라는 기획으로 비망록을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사용하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림 도장을 찍어서 도안을 수집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이도 있었고 레시피 노트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4. 카드링
이 제품은 학창시절 영어 단어 좀 외워봤으면 친숙한 물건이다. 그런데 명칭은 가물가물하다. 주변에 물어보니 ‘열쇠고리’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았다. 정답은 ‘카드링’이다. 카드링은 종이에 구멍을 뚫어 고리에 종이를 걸어두는 용도로 쓰인다.
사무실마다 쓰임새가 달라 자주 쓰는 곳이 있는가 하면 ‘우리 사무실에는 없는데요?’라고 할 수도 있다. 다만 카드링은 잘만 사용하면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예컨대 공지문이나 안내문처럼 자주 쓰는 문서의 경우 매번 인쇄하는 것도 아깝고 낭비다.이때, 한 장만 인쇄해서 코팅한 후 펀치로 구멍을 뚫어 카드링으로 묶어두면 걸어서 보관하기도 쉽고 다음에 또 쓸 수도 있다.
나만의 메모 수첩도 만들 수 있다. 사무실에 남아돌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이면지를 원하는 크기(A4용지의 2분의 1 혹은 4분의 1)로 잘라서 모은 후 펀치로 구멍을 뚫어 카드링으로 묶으면 완성이다. 간단하지만 원하는 사이즈로 만들 수 있고 용지가 모자라면 언제든 추가할 수도 있어서 편리하다. 그냥 버려지는 것들이 다시 쓸모를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고마운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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