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카’가 다시 유행하는 이유 : 일본 쇼와 시대 카메라 포스터 열전 [브랜더쿠]

  • 인터비즈
  • 입력 2023년 12월 1일 10시 00분


‘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필자가 유년기를 보낸 90년대, 어른들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외벌이를 하는 가정이 많았음에도 저축을 하면 이자를 불려 집과 자동차를 살 수 있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감과 여유가 저녁 밥상에서 모락모락 피어났다. 대한민국의 고도성장기 끝자락에서 나는 미묘하게 그 감성을 경험하며 자라났다. IMF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일본은 이러한 국면을 한국보다 훨씬 이전에 경험했다. 쇼와(일본 천황의 연호 중 하나. 1926~1989년)후반기인 1955년부터 20년에 걸쳐 기록적인 경제성장을 했고 1980년대의 일본은 미국을 능가할 정도로 경제적 위상이 어마어마했다. 버블 경제 시대로도 불리는 이 시기에 많은 일본인들이 저축 대신 부동산과 주식 시장에 뛰어들었고 “도쿄를 팔면 미국도 산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거품이 꺼지는 건 순식간이었지만, 이 당시를 경험한 세대는 이 시대를 매우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 특히 사치품이던 카메라.

빠르게 성장하던 쇼와 후반기의 일본에는 백색가전을 중심으로 자동, 전자동이 트렌드였다. 손맛이 사진의 질을 좌우하던 필름 카메라에도, 전자동 바람이 불며 누구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세상이 열렸다. 그 당시의 일반 가정의 수입을 생각하면 카메라는 매우 고가였지만, 이를 만드는 몇몇 제조사들이 앞다퉈 신제품을 내놓았고 경쟁적으로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후지필름의 포스터는 시대의 반전이었다. 어린이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모습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 이때만 해도 카메라를 조작하려면 조리개나 렌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후지필름은 이런 생각에 도전하듯 어린이라도 손쉽게 조작할 수 있는 카메라를 선보인다. 제품명(후지펫토) 역시 카메라를 일상 속 친숙한 존재로 여기게 만드는 네이밍이다. 펫토는 반려동물을 지칭하는 영어 펫(Pet)의 일본식 발음을 연상시킨다. 어린이가 말을 하는 듯한 “나도 카메라맨”이라는 카피는 단순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다.



카메라 제조사들은 여성들까지 잠재 소비자로 인식하고 이들을 신규 소비자층으로 공략했다. 이 시대 카메라 광고는 복잡한 기술을 소비자에게 쉽게 설명하고 카메라의 ‘한 끗’ 차이를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한 지침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광고 역시 카탈로그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코니카*는 카피에 기술적인 내용을 함께 서술했다. 아래는 1980년대 펜탁스, 니콘 등 제조사에서 여성 소비자를 타깃으로 내놓은 카메라들의 광고다.

*코니카 :1873년 설립된 일본의 디지털 카메라필〮름 제조 전문회사. 2003년 8월 미놀타와 합병해 현재는 코니카 미놀타로 불린다.



하지만 80년대 들어 카메라 제조사의 기술이 전반적으로 고도화되면서 기능으로 광고의 차별화 포인트를 잡는 것은 어려워졌다. 대신에 더 많은 소비자들을 사로잡기 위한 감성적인 카피가 대중의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당대 최고의 인기스타 미야자키 요시코가 등장한 미놀타의 X7 포스터의 문구는 카메라 셔터 소리가 피사체에 띄우는 인사라고 말한다. 셔터가 눌리는 순간을 사람 사이의 인사라고 표현해, 카메라가 차가운 금속 물체라는 점을 잊게 만든다. 빛으로 피사체를 담아두는 카메라의 기능을 청춘의 스냅샷처럼 탁월하게 묘사했다.

이 포스터가 등장하고 나서 일본 전역의 카메라 가게에서는 미놀타 X7는 물론이고 CF송도 함께 대히트를 쳤다. 크리스마스 캐롤과 함께 12월 거리에 울려 퍼진 그 노래의 제목은 ‘지금의 당신은 반짝반짝 빛나서’이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입가에 오르내리고 있다고 한다.

한편 카메라에서 ‘필름’의 중요성은 빼놓을 수 없다.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기 전에는 전자식 카메라의 기능이 아무리 좋아도 필름이 없다면 사진을 인화할 수 없었다.


후지필름은 카메라는 필름이 본진이라는 것을 광고 카피를 통해 강조했다. 필름이 연상케 하는 ‘한 장’이라는 표현이 매우 영리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당신’이라는 표현은 앞서 소개한 미놀타 X7 카피의 연장선상처럼 ‘순간’의 소중함을 담고 있는 듯하다.



위 광고 카피는 외출할 때는 필름과 카메라와 함께 하겠다는 독백처럼 읽힌다. 포스터 하단의 초록 글자는 “앞으로도 후지필름은, 사진의 매력을 둘도 없는 문화로서 계속 전달할 것입니다”고 안내한다. 촬영을 하나의 문화로 가꾸어 가겠다는 의지와 다짐이 뚜렷하다.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고 스마트폰이 대세가 되면서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일은 보기 드문 일이 됐다. 그런데 최근 일본 젊은이들은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디지털 사진보다는 화질이 떨어지더라도, 오히려 완벽하지 않아 멋스러운 느낌을 준다고 여기는 것 같다. 이들은 자신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쇼와 후기 시대의 윤택함과 멋스러움, 동경을 담아 이를 ‘쇼와 레트로’라고 부르며 일상 속에 과거를 소환한다.

이들은, ‘우쯔룬데스(찍힙니다)’를 해시태그로 하여 그 시절 감성을 흉내낸 사진들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며 쇼와 레트로의 하부 문화로서 이를 즐기고 있다. 이 해시태그로 검색되는 게시물은 11월 초 기준으로 130만건에 육박한다.

전자동식 필름카메라의 시대가 저물고 디지털카메라 시대도 저문 지금, 스마트폰 세대들이 아날로그 감성에 빠지게 된 이유를 그 시절의 광고 카피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브랜더쿠#광고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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