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약 400실 규모 ‘생활형숙박시설(생숙)’에 실거주 중인 이모 씨. 이 씨는 생숙에 부과되는 이행강제금을 피하기 위해 같은 시설 소유자들과 ‘협동조합’을 결성해 숙박업으로 등록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내년 말 유예가 종료되는 이행강제금의 부과 대상에서 벗어나려면 오피스텔로 용도를 변경하거나 숙박업으로 등록해야 하는데, 오피스텔의 건축 기준이 생숙보다 까다로워 용도 변경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 씨는 “숙박업으로 등록하기 위한 최소 조건인 30개의 객실을 확보해 소유자 간의 ‘숙박업 협동조합’을 설립하려는 것”이라며 “조합과 객실 소유주가 장기체류계약을 맺으면 이행강제금을 피함과 동시에 실거주도 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생숙의 이행강제금 부과를 두고 갈팡질팡하는 사이 생숙 소유자들이 각종 방법으로 이행강제금을 피할 수 있는 ‘우회로’를 찾고 있다. 도심 주택 공급이 부족했던 시기에 ‘아파트 대체재’로 허용됐던 생숙을 주택 용도로 쓰는 방안이 뒤늦게 금지되면서다. 올해 10월로 예정된 이행강제금 부과 유예 기간이 내년 말로 연기되면서 생숙 보유자들은 잠깐의 시간을 벌었지만, 근본적인 요구사항이 해결되지 않은 탓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대로라면 생숙 보유자들의 편법으로 각종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생숙은 호텔식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취사도 가능한 숙박 시설로 흔히 ‘레지던스’라 불린다. 외국인 관광객과 장기 체류 숙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2017년 이후 부동산 규제를 피할 수 있는 ‘아파트 대체재‘로 여겨지며 투자 수요가 급등했다. 정부는 2021년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해 생숙을 숙박업으로 신고하거나 오피스텔로 용도 전환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기로 했고, 현재는 내년 말까지 이행강제금 부과가 유예된 상황이다.
부산에서 행정사사무소를 운영 중인 박모 씨(38)는 올해 들어 생숙 숙박업 신고와 관련된 상담을 연일 이어가고 있다. 부산은 물론이고, 수도권과 강원 등 전국 각지에서 계속되는 문의 전화의 대부분은 이행강제금을 피하는 방법을 묻는 내용이다. 박 씨는 “올해 상반기(1~6월)만 해도 위탁관리업체를 통한 숙박업 등록이 주를 이뤘는데, 최근에는 숙박 소유자들이 직접 협동조합을 설립해 숙박업을 등록하려는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건물을 아예 헐고 다시 짓지 않는 한 오피스텔로의 용도 변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생숙 소유자들이 이행강제금 부과를 피하는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전문 위탁관리업체를 선정하고, 같은 건물 내 30개 객실을 묶어 숙박업으로 등록할 수 있다. 이 경우 매달 3만 원에서 5만 원을 관리 수수료로 내게 된다. 다만, 추후 위탁업체가 수수료율을 인상하거나 관리 수수료만 받고 부도를 낸 후 잠적하는 등의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인기를 끄는 것은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방식이다. 같은 건물 내 생숙 소유자들이 직접 30개 객실을 모집해 결성한 조합이 위탁관리업체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숙박업 신고 시점에 서류 작성이나 지자체 신고 대행 등의 비용으로 약 300만 원을 내고 나면, 매달 관리 수수료도 낼 필요가 없다.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합에 참여할 소유자를 직접 찾고 설득하는 어려움이 크고, 내부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중재하고 협의를 이끄는 것이 쉽지 않다.
부동산 업계 전문가들은 이대로라면 생숙 이행강제금을 피하기 위한 각종 편법이 더 등장하거나 부작용이 속출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올해 9월 생숙을 주거용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며 이행강제금 부과를 내년 말로 유예한 것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전국레지던스연합회는 정부의 정책 변화를 촉구하며 30일 부산 남구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생숙 소유자들은 이행강제금 문제로 매각도 어렵고, 오피스텔로의 용도 변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며 “더 이상의 시장 혼선을 막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생숙의 숙박업 등록 기준을 완화하는 등의 당근책을 제시해서라도 생숙 소유자들에게 탈출구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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