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내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2.1%로 낮췄다. 물가 상승률 전망은 올해 3.6%와 내년 2.6%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고금리, 고물가가 장기화되면서 경제 성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은 30일 발표한 ‘수정 경제 전망’에서 올해 성장률은 기존 1.4%를 유지하고, 내년은 2.1%로 0.1%포인트 낮췄다. 올 5월(2.3%), 8월(2.2%)에 이어 세 차례 연속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경제 성장률은 국내외 긴축 장기화와 더딘 소비 회복세의 영향으로 인해 8월 전망치를 밑돌 것으로 예상한다”며 “미국 등 선진국들의 성장률이 떨어지는 추세라는 것을 감안하면 2%대 성장률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한은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넘길 경우 내년 성장률이 1.9%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올해와 내년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6%와 2.6%로 기존보다 각각 0.1%포인트, 0.2%포인트 상향 조정됐다.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3.5%로 7연속 동결했다.
이창용 “긴축기조 6개월보다 길어질 것”
내년 성장률 전망 하향 긴축 조기중단 관련 “시장 앞서나가” 내년 하반기 이후 금리 인하 나설듯 경기 부양보다 물가 안정에 방점
한국은행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내리면서도 물가 안정을 위해 당분간 긴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물가 상승률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충분히 장기간 긴축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긴축 종료 시기와 관련해선 “현실적으로 보면 6개월보다 더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물가 상승률이 2%로 수렴하는 시기는 내년 말이나 2025년 초로 예상한다”며 “미국보다는 빠르게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긴축 조기 중단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서는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의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시장에서 앞서 나가는 것 같다”고 못 박았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한은이 내년 하반기(7∼12월) 이후에야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 총재는 경기 부양보다 물가 안정에 치중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는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냐고 묻는다면 제 답은 아니다”라며 “섣불리 부양에 나섰다가 부동산 가격만 올릴 수 있다”고 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는 재정이나 통화 정책이 아닌 구조조정이 정답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가 이어지고 물가가 반등하자 이 총재가 매파적(통화 긴축적) 발언에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올 3분기(7∼9월) 말 기준 가계신용은 1759조1000억 원으로 2분기(4∼6월) 대비 11조7000억 원 늘었다. 물가 상승률도 7월까지 2%대로 둔화됐으나 8월 3%대에 진입한 뒤 지난달에는 3.8%까지 치솟았다. 지난달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3.2%로 떨어지면서 한미 물가 상승률이 6년 2개월 만에 역전됐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총재의 발언은 긴축 조기 중단을 원하는 시장의 기대와는 간극이 있었다”며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며 증가한 가계부채와 물가 상승률을 잡기 위해 매파적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날 한은 금통위는 만장일치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경기 부진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물가 상승 등 여러 변수로 인해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딜레마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금통위원 6명 중 4명은 향후 3개월 금리 전망에서 기준 금리를 3.75%로 올릴 가능성을 열어놓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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