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선 직업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정해지는데 한국에선 직업을 선택할 수 있어서 좋아요.”
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2023 북한이탈주민 일자리 박람회’에 참석한 탈북민 A씨(2014년 입국)는 박람회장 곳곳을 둘러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회복지자격증을 소유한 A씨는 사무직 경리로 1년2개월을 근무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둔 뒤 5개월 간 실업급여를 받다가 탈북민 일자리 박람회를 찾았다. 그는 이날 박람회에 참석한 공공기관에 면접을 본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통일부가 주최하고 한국무역협회, 남북하나재단이 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141개 기업과 정부기관, 공공기관이 온·오프로 참가 등록을 했으며 전국 25개 하나센터에 등록된 구직을 희망하는 북한이탈주민과 하나원 교육생, 대학생, 대안학교 학생 등 1000여명이 참석했다.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한 일자리 박람회가 열린 것은 지난 2014년 이후 9년 만이다.
이날 부스를 운영한 기업과 정부기관, 공공기관들은 현장 면접과 취업예정 정보들을 제공하고 면접 상담 등을 진행했다. 하나재단 취업상담사와 북한이탈주민 전문 강사들이 면접에 동행해 상담을 지원하기도 했다.
‘엘코잉크 한국지점’은 전국 시내 공항 내 면세점에서 중국 혹은 동남아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제품을 판매하게 될 서비스 직종 구직자들을 채용할 계획으로 박람회에 참가했다. 이 부스에는 중국어에 능통한 제3국 출생 탈북민 대안학교 학생 등이 주로 방문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 학생들을 데리고 직접 행사장을 방문한 한겨레 중고등학교의 이진희 교장은 “제3국 출생 탈북민 자녀들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왔기 때문에 중국어에 능통하다”면서 “졸업 후 이런 글로벌 기업에서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것은 이들의 적성을 살리는데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승객 수하물을 탑재·하기하는 인력을 뽑는 주식회사 ‘유니에스’와 ‘스위스 포트코리아’ 측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 제3국 인력보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채용을 우대한다”면서 이번에 25명 정도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류·직물기업인 ‘A무역’은 해외영업·생산MD·시설관리 등 다양한 직종에서 북한이탈주민을 채용할 계획을 밝혔으며 취업상담사의 사전 매칭 및 서류심사를 거쳐 선정된 6명과 현장면접을 진행했다. 현재 공공기관에서 시설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 B씨(2011년 입국)은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유명한 회사인 ‘A무역’에서 도전적으로 일을 해보고 싶어 지원했다”라고 밝혔다.
사단법인 ‘더 브릿지’는 구글 사회공헌 조직인 구글닷오알지(Google.org)의 ‘모든 여성을 위한 임팩트 챌린지’에 한국기관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더 브릿지’는 구글 임팩트 챌린지 지원으로 여성 북한이탈주민의 취업과 창업을 통한 자립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의 기획 및 운영을 맡을 매니저를 구인하고 있다. 이 부스를 방문한 한 탈북민은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 “다양한 취업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의료·요양 관련 기관 및 기업도 다수 참여해 관련 자격증을 소지한 구직자들의 발걸음도 이어졌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요양기관 취업 상담창구를 개설해 여성 북한이탈주민들이 선호하는 간호조무사·요양보호사·사회복지사 자격 취득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자격증 소지자들에게는 취업가능한 요양기관도 알선해줬다. 이와 관련, 자생한방병원, 화성에이스요양원 등은 간호사, 간호조무사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소지한 탈북민들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번 박람회에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등 공공기관들도 참여했다. 현재 관광버스 기사로 재직중인 C씨(2015년 입국)는 “평소 공공기관에 관심이 있었는데, 박람회를 통해 각 기관들이 어떤 자격증과 업무역량을 요구하는지 파악해 준비하기 위해 참가했다”라고 말했다.
인사혁신처도 북한이탈주민 구직자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부스를 운영하며 ‘찾아가는 공직박람회’ 프로그램을 통해 채용정보를 제공했다. 세무관련 자격을 취득하고 현재 세무사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는 D씨(2010년 입국)는 인사혁신처 부스를 방문해 시험과목과 구체적인 수험정보를 얻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열린 개회식에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윤석열 정부는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지원 문제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그 가운데에서도 취업문제 해결에 집중해 왔다”면서 “이번 박람회를 통해 북한이탈주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갖는다면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 구성원으로 공헌한다는 소속감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과 함께 통일 준비에도 이바지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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