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0명대 출산율을 기록한 한국이 청년고용, 가족예산, 육아휴직 등의 여건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개선하면 출산율이 대략 1.6명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합계 출산율 1.6명은 OECD 평균을 앞서는 수치다.
한국은행이 3일 발표한 11월 경제전망 중장기 심층연구 보고서에는 한은 경제연구원 소속 황인도·남윤미 등의 이 같은 연구 결과가 실렸다.
저자들이 OECD 35개국 패널 자료를 활용해 시나리오 분석을 한 결과, 우리나라의 6개 출산 여건이 모두 OECD 평균 수준으로 개선되는 경우 합계 출산율은 0.85명 만큼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 0.78명에 0.85명을 더하면 1.63명이 나온다. OECD 평균인 1.58명(2021년)보다 높다.
저자들이 주목한 6개 출산 여건은 △가족 관련 정부지출 △육아휴직 실이용 기간 △청년 고용률 △도시인구 집중도 △혼외출산 비중 △실질 주택가격 지수 등이었다. 출산율에 주요한 여건들을 앞선 연구 결과에 기초해 추려냈다.
다만 저자들은 이 여건을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녹록지 않다고 주의했다.
예컨대 도시인구 집중도 개선은 무려 0.41명의 출산율 제고 효과가 기대되지만 2019년 기준 한국의 도시 집중도는 OECD 평균의 4.5배에 달한다. 장기로 개선할 수밖에 없다.
청년 고용률 역시 0.12명이라는 양호한 출산율 제고 효과가 예상되는데, 우리 청년 고용률(58.0%)을 OECD 평균(66.6%)까지 끌어올리려면 무려 78만명 청년이 추가로 취업을 해야 한다.
황인도 한은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단기에 변하기 쉽지 않은 도시인구 집중도, 혼외 출생아 비중 등 2개 여건의 출산율 개선 효과를 더하면 (전체 개선 효과의 절반을 넘는) 0.6명 수준”이라며 “해석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초저출산의 근본 원인으로 청년들이 겪고 있는 ‘불안’과 높은 ‘경쟁 압력’을 지목했다.
근거는 객관적인 조사와 실험으로 뒷받침했다.
먼저 연구진은 청년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통해 이들이 느끼는 경쟁 압력을 측정했다. 이때 경쟁 압력을 더 많이 느낀 이들(1075명)의 평균 희망 자녀 수는 0.73명으로, 경쟁 체감도가 낮은 이들의 희망 자녀 수보다 0.14명 적었다.
황 실장은 “0.14명은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경쟁에 짓눌린 절반 이상의 청년이 그렇지 않은 절반 이하보다 16.1%나 아이를 덜 낳는단 얘기라서다.
높은 집값이 출산에 미치는 악영향은 한은이 의뢰한 실험에서 드러났다.
한국갤럽이 한은 의뢰로 작년 9월에 실시한 무작위통제실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에서 25~39세 2000명은 주거비·교육비·의료비에 관한 질문과 정보를 제공받자 결혼 의향과 희망 자녀 수가 뚜렷이 낮아졌다.
예컨대 주거비를 연상케 한 그룹의 결혼 의향은 43.2%로 여타 그룹(48.5%)보다 5.3%포인트(p) 낮았다. 희망 자녀 수도 주거비 연상 그룹은 다른 그룹 평균(1.64명) 대비 0.1명 적은 1.54명이었다.
청년의 고용 불안이 결혼과 출산에 미치는 악영향도 실험에서 드러났다.
황 실장은 “미취업보다 취업 청년의 결혼 의향이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취업자 중에서도 비정규직은 오히려 결혼 의향이 미취업 청년보다 낮게 나왔다”며 “반면 취업자 중 공공기관 근로자나 공무원이면 결혼 의향 비중이 훨씬 높았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해법으로 고용·주거 불안과 경쟁 압력을 낮추는 ‘구조정책’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양육 불안을 낮추려면 정부 예산 지원을 늘리고 실질적인 일-가정 양립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또 변화하는 가치관에 맞춰 아이 중심 지원 체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특히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가 있으나 실질적으로 이용 못하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며 “남성, 중소기업의 육아휴직 사용률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노력 없이 저출산을 방치하면 경제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연구진은 효과적 정책 대응이 없다면 2050년대 한국은 0% 이하 성장세를 보일 확률이 68%라고 경고했다.
반면 정책 노력으로 출산율을 0.2명 끌어올리면 2040년대 잠재성장률을 0.1%p 높일 수 있다고 부각했다.
우리나라는 합계 출산율 1.3명 미만의 초저출산을 2002년부터 21년째 겪고 있으며 2년 후인 2025년부터는 65세 이상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국제적으로 20년 이상 초저출산을 경험한 국가는 3곳뿐(홍콩, 마카오, 한국)이며, 홍콩을 제외하고 출산율 세계 꼴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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