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63·사진)이 그룹 최고경영진인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63), 장동현 SK㈜ 부회장(60), 김준 SK이노베이션 부회장(62),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60)을 일본으로 불러 퇴진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도쿄포럼 2023’ 참석차 일본에 있던 지난달 30일 조 의장과 부회장단이 모두 참석한 만찬 자리를 가졌다. 최 회장은 이날 만찬과 이튿날 개별 면담을 통해 조 의장과 부회장들에게 그룹 세대교체 의지를 전달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현 최고경영진은 2016년 김창근 당시 수펙스 의장을 필두로 선배 경영인들이 대거 교체될 당시 주요 계열사 대표직에 올라 7년간 그룹을 이끌어 왔다. 이들이 모두 물러날 경우 지난해 SK E&S 대표이사직을 내려놓고 미주대외협력총괄로 부임한 유정준 부회장(61)과 서진우 중국담당 부회장(62)도 동반 퇴진이 유력하다. 최 회장은 그룹 쇄신 방향을 준비하면서 이 같은 인사 방침을 최근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1일 밤 귀국한 최 회장은 생일(3일)이 낀 주말을 한국에서 보낸 뒤 4일 트랜스퍼시픽 다이얼로그(TPD) 참석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다. 최종현학술원이 2019년 발족한 TPD는 한미일 전현직 고위 관료와 석학, 재계 인사들이 경제안보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4∼6일(현지 시간) 미 워싱턴에서 열린다.
최태원, 잇단 투자실패 질책… SK, 50대 사장단 체제로 세대교체
崔회장, 60대 부회장단 퇴진 요청 美 금리인상-경기침체 등 복합 위기… 그룹 체질 개선으로 민첩 대응 의도 수펙스 의장 후임에 최창원 거론… 하이닉스는 곽노정 단독대표 점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최고경영진 동시 교체’ 카드를 꺼내든 것은 반도체·배터리를 비롯한 그룹 주력 사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결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순위를 2위까지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60대 부회장단 체제’를 뒤로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50대 사장단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뜻이다.
3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 경영진 인사는 7일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63) 후임으로는 최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59)이 물망에 올랐으나 본인이 최근까지 고사한 것으로 알려져 선임 여부는 미지수다.
SK㈜와 SK이노베이션 후임 대표이사에는 장용호 SK실트론 사장(59)과 박상규 SK엔무브 사장(59) 등이 거론된다. 장 사장은 SK㈜에서 사업지원담당, PM2부문장 등을 거치며 그룹의 반도체 소재사업 진출 전략을 주도했다. 2015년 SK머티리얼즈 인수를 성공시켰다. 박 사장은 SK이노베이션의 전신인 유공으로 입사해 SK㈜ 투자회사관리실 기획팀장, SK네트웍스 총괄사장 등을 거쳤다. 두 사장은 지난해 SK 수펙스 인사에서 김준 부회장(62)의 환경사업위원장직과 서진우 부회장(62)의 인재육성위원장직을 각각 물려받았다.
SK하이닉스는 박정호 부회장(60)이 빠질 경우 곽노정 사장(58) 단독대표 체제로의 전환이 점쳐진다. 의장과 부회장단 퇴진이 이뤄진 뒤 추가적인 부회장 승진자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짙다.
SK그룹 각 계열사는 점진적으로 세대교체 기조를 이어 왔다. 2021년 SK텔레콤이 박정호 부회장-유영상 사장(53) 공동대표에서 유 사장 단독대표 체제로, 지난해 SK E&S가 유정준 부회장-추형욱 사장(49) 공동대표에서 추 사장 단독대표 체제로 전환된 게 대표적 사례다. 이번에 부회장들이 한꺼번에 자리를 내놓으면 수펙스 내 최고경영진 전체의 연령대와 직급이 이전보다 낮아지게 된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새로 구성될 최고경영진이 쉽지 않은 과제를 떠안게 됐다고 보고 있다. SK그룹은 2016년 이래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신산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카본 투 그린’(탄소에서 친환경으로) 전략을 필두로 그룹 체질 전환에 나서 왔다. 2017년 SK실트론 인수, 2018년 첫 미국 배터리 공장 투자, 2020년 SK넥실리스 인수, 2021년 인텔 낸드부문·베트남 빈커머스 지분 인수 등 굵직한 투자도 이어졌다.
하지만 미국 금리 인상 랠리와 글로벌 경기 침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복합 리스크가 불거지면서 공격적인 투자가 ‘독’이 돼 돌아오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최 회장은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최고경영진 회의 ‘SK CEO 세미나’에서 이례적으로 SK온, SK하이닉스, SK㈜, SK에코플랜트 등 주요 계열사들의 투자 사례를 직접 지목하면서 강한 질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시 변수를 고려하지 않고 투자에 나섰다는 이유에서였다. 최 회장은 결국 새 경영진에게는 위기에 놓인 주력사업 안정화와 함께 글로벌 리스크에 대한 보다 민첩한 대응을 주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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