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프’ 대목앞 폐업 나선 佛 라데팡스… 中쇼핑타운도 고금리 한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6일 03시 00분


[세계 경제 고금리 후유증]〈2〉 얼어붙은 각국 소비-자산시장
파리 대표적 상업지구 라데팡스… 고물가에 상권 무너지고 가격 폭락
中 왕징소호 1층 3곳중 1곳 꼴 폐점
글로벌 부동산기업 채무위기 ‘휘청’… “저금리 시기 유동성 잔치 청구서”

‘블랙 프라이데이’ 앞 텅 빈 佛 라데팡스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라데팡스의 대형 쇼핑몰 웨스트필드 레카트르탕에 입점한 한 남성복 매장에 재고 처리를 알리는 광고가 걸려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블랙 프라이데이’ 앞 텅 빈 佛 라데팡스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라데팡스의 대형 쇼핑몰 웨스트필드 레카트르탕에 입점한 한 남성복 매장에 재고 처리를 알리는 광고가 걸려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재고 정리합니다. 50% 할인에 2개 이상 품목 구입 시 10% 추가 할인.’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라데팡스 쇼핑몰 레카트르탕. 쇼핑몰 중앙에 있는 남성복 매장 ‘카포랄’ 쇼윈도에 이런 문구가 적힌 대형 광고가 붙었다. ‘블랙 프라이데이’를 불과 나흘 앞두고 있었지만 점심 시간 ‘틈새 쇼핑’을 하는 직장인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매장을 홀로 지키고 있던 사장 발랭탕 장티 씨는 “10년간 이곳에서 장사를 했는데 이제는 정말 버틸 수가 없어서 한 달 뒤 가게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연말 대목에 폐업을 결정한 것이다. 이 매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보다 고객이 30%가량 줄었다.

쇼핑몰 곳곳에 재고 정리와 세일 간판이 걸려 있지만 사정은 비슷하다. 장사가 안 되다 보니 점포 약 100곳 가운데 중앙 2곳을 포함해 총 12곳이 공실로 남아 있다. 여기저기 폐업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라데팡스는 파리 서부 외곽의 버려진 장소였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150m 이상의 초고층 빌딩이 10여 채 들어서면서 새로운 상업지구로 탈바꿈했다. 현대식 건물과 쇼핑몰을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도시 재개발의 모범 사례로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주변 상권이 침체되기 시작했다. 라데팡스 지역의 공실률은 지난해 15.7%까지 치솟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금리·고물가로 인해 파리 시민과 관광객 등의 소비가 줄어들면서 도시의 상권이 완전히 무너졌고 부동산 가격은 폭락했다.

● 얼어붙은 소비…문 닫는 쇼핑몰


이 같은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중국 베이징의 랜드마크 상업용 건물인 ‘왕징 소호’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타워1의 1층 매장은 3곳 중 1곳꼴로 문을 닫았다. 올 3분기(7∼9월) 베이징 지역의 평균 공실률은 19.5%에 달한다. 왕징 소호의 편의점에 근무하는 점원은 “코로나19 때보다 오가는 사람이 늘었지만 지갑을 여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간판 내린 美 위워크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미트패킹 지역 옛 위워크 지점 현장.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간판 내린 美 위워크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미트패킹 지역 옛 위워크 지점 현장.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미국의 부동산 시장은 더 차갑게 얼어붙었다. 한때 기업가치 470억 달러에 달했던 공유경제의 아이콘 ‘위워크’의 몰락은 그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뉴욕 맨해튼의 미트패킹 건물을 비롯해 미국과 캐나다에 밀린 월세, 임대차 계약 관련 소송 비용 등을 포함한 위워크의 부채는 187억 달러에 이른다. 뉴욕에서만 47개 지점을 운영했던 위워크는 35개 지점의 임차 계약 종료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 뉴욕 현지의 부동산 중개업체 관계자는 “갖은 소송전과 공실 등으로 위워크를 임대인으로 두고 있는 건물들의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고금리와 높은 공실률로 인해 주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데 찬물을 부은 격”이라고 말했다.

고금리·고물가에 의한 자산시장의 위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 뉴욕 크라이슬러 빌딩을 비롯해 글로벌 랜드마크 빌딩을 거느린 오스트리아 부동산·유통 기업 시그나그룹도 지난달 29일 파산 신청을 했다. 앞선 올해 8월에는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의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현실화되면서 아시아 지역의 부동산 업계가 출렁였다.

● “부동산 위기, 유동성 잔치 청구서”


각국 소비시장이나 부동산 업체들의 위기는 저금리 시기에 과도한 레버리지를 일으킨 공격적인 차입 경영이 부메랑이 됐다. 고금리·고물가로 인한 소비 위축도 이런 위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백화점이나 쇼핑몰 등은 수익이 감소하면서 지점 폐쇄 결정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추가 공실이 발생하고, 주요 도시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근무가 정착되고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한 소비 패턴이 일상화되면서 도심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도 부동산 가격 회복이 더딜 것으로 예상되는 원인 중 하나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금리 시기에 유동성 잔치를 벌인 데 대한 청구서가 날아들고 있다”며 “고금리·고물가의 영향으로 최소한 내년 후반기까지 소비 침체와 함께 상업용 부동산의 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블랙 프라이데이#라데팡스#폐업#중국#쇼핑타운#고금리 한파#위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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