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 ‘실거주 의무’ 혼란]
정부 1월 “폐지”… 국회 통과 못해
둔촌주공 등 4만7595채 규제 유지
분양가보다 시세 하락한 단지에선 “LH가 차라리 사달라” 문의 쇄도
분양 주택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방안이 12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면서 시장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올해 1월 정부 발표를 믿고 청약을 받은 이들 중 갑자기 수억 원의 잔금을 마련하거나 계약금을 날리고 집을 포기하는 경우가 나올 수 있다. 집값 상승기 도입된 근시안적 규제가 시장 혼란을 초래하는데도 정부와 국회가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수도권 아파트는 지난달 기준 총 72개 단지, 4만7595채에 이른다. 서울 9개 단지(7647채), 경기 50개 단지(3만221채), 인천 13개 단지(9727채) 등이다. 일반분양만 4786채 규모인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도 포함된다. 법이 통과되지 않으면서 해당 주택을 분양받은 이들의 상당수는 이사나 자금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상황이다.
실거주 의무는 수도권 분상제 아파트 당첨자가 2∼5년간 분양 주택에 실제 거주하도록 하는 제도로, 기간 내 이주하면 해당 주택을 LH에 팔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징역 1년 이하 혹은 벌금 1000만 원 이하에 처해진다.
일각에서는 법을 차라리 어기겠다고 나서는 경우까지 나온다. 2021년 인천에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돼 공급된 A단지가 대표적이다. 당시 3.3㎡당 분양가가 1100만 원대로 인근 B단지 가격(3.3㎡당 1600만 원대)보다 저렴해 수요가 쏠렸다. 하지만 내년 4월 입주를 앞두고 최근에는 아파트값이 하락하면서 B단지 가격이 1100만 원대로 떨어졌다. 입주할 때쯤엔 A단지도 집값이 분양가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자 A단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실거주 의무를 어기면 집을 제값에 팔 수 있어 오히려 좋다”는 얘기가 나온다. 실거주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집을 팔아야 하는데, 매매가격은 분양가에 정기예금 이자를 더한 값으로 정해져 있다. 분양가에 시세차익까지 보장되는 셈이다.
LH 관계자는 “올해 10월까지 실거주 의무 위반에 따른 매각 규정을 문의하는 상담이 약 550건 진행됐다”며 “인천 등 집값 하락세가 뚜렷해 분양가보다 시세가 떨어진 지역에서 LH에 얼마를 받고 팔 수 있는지 묻는 전화가 많다”고 밝혔다. A단지 같은 사례가 더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1월 정부가 실거주 의무 폐지를 발표한 것을 보고 청약에 나선 이들이 많은데 제때 법 개정이 안 되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거주 의무 규제
부동산 시장이 과열된 2021년 2월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도입됐다.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주택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은 입주 때부터 2~5년간 분양 주택에 실제 거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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