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손님들에게 특별한 하루를 선물해 드리고 싶어요. 각박한 세상 속에서 맛있는 음식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서로 에너지를 얻어가는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붕어빵 오마카 ‘붕마카세’. 누가 이 조합을 상상이나 했을까? 친숙하기만 했던 두 단어가, 합쳐 놓으니 낯설기 그지없다. 게다가 이 만남엔 근본적인 의문이 샘솟는다. 붕어빵은 겨울철 지나가다 보이면 한두 개 가끔 먹고 마는 간식이 아니던가. 오마카세로 즐길 게 있을까? 의심은 이제 넣어두길 바란다. 휘황찬란한 라인업을 보면 그래서 예약은 어디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묻게 될 테니.
MZ 사장, 붕어빵 장사를 시작하다
작년, 99년생 젊은 사장이 아버지의 떡볶이 가게 밖에 조촐하게 차린 붕어빵 노상 '떡붕'이 '떡상'했다. 피자, 뿌링콘치즈, 고구마 등 특색 있는 메뉴가 SNS에서 빠르게 반응을 얻은 덕이다. 오픈 전 인스타그램, 당근마켓으로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묻고, 친구들에게 시식 후기를 듣기도 하며 야심 차게 개발한 메뉴들이다. 오래된 시장에 위치한 가게들 사이에서 정통에서 빗겨난 메뉴로 더 주목받기도 했다. 손님이 밀려들고 나날이 길어지는 웨이팅에 인당 5개로 구매 제한을 걸었다. 하지만 기뻐할 틈도 없었다. 감당 안 되는 판매량으로 붕어빵을 미리 만들어 두고 팔기 시작하자, 기다림과 유명세에 비해 맛이 아쉽다는 후기가 이어졌다.
사장은 고민을 시작했다. 최고의 붕어빵을 제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때 붕어빵 장사 시작 전 지인들을 상대로 펼쳤던 이벤트인 '붕마카세'가 떠올랐다. 가장 맛있는 상태의 갓 구운 붕어빵을 제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눈앞에서 굽는 퍼포먼스에 호응도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시장 상권 특성상 해가 진 후에는 유동 인구가 없었기에, 붕어빵 기계와 공간의 효율을 최대로 올릴 수 있는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반 오마카세처럼 정적인 공간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어 떠오른 건 제주도에서 45일 동안 머물렀던 경험이다. 게스트 하우스의 소규모 파티에서 영감을 얻었다. 주류도 즐기며 다 같이 스몰 토크를 나누는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올해 9월 붕마카세가 탄생했다.
'붕마카세'라는 독특한 어감과 컨셉 덕분인지 따로 광고하지 않고 인스타그램 계정만 운영했는데 점점 입소문을 탔다. 휴무 없이 매일 1부와 2부를 진행하다 보니 크고 작은 시행착오가 쌓여 체계도 생기고 노하우 역시 자리 잡고 있다. 손님들과 얘기를 나누며 웃으면서도 '세 번째 메인 붕어빵이 나왔을 때 시간은 9시 5분 정도' 등 머릿속으로는 매뉴얼을 되짚는다.
붕어빵 치고 비싼 가격 때문인지 악플을 다는 사람도 많다. 처음엔 마음이 많이 쓰여 하루 종일 들여다보기 일쑤였지만 이제 의연하다. 여러 손님들과 보낸 즐거운 시간, 그리고 그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으로 나날이 단단해졌다. 새로운 사람과 잘 어우러지는 덕에 "천직인 것 같다"고 말 하는 붕마카세 사장. 붕마카세의 진정한 콘텐츠는 붕어빵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경험과 소통이었다. 삭막한 서울에서 느낄 수 있는 느슨한 연대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꽉 찬 2시간! 기자가 다녀온 1부 Timeline
20:00 자리에 앉아 주류를 주문하며 붕마카세가 시작된다. 1부를 예약한 총 5명의 손님, 그리고 사장님이 서로 자기소개를 하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MBTI 'I'로 시작하는 사람도 걱정하지 말 것. 혼자 방문하는 손님이 대다수라고 한다. 참고로 기자도 혼자 방문했다.
20:10 주류 서빙 후 메인 붕어빵이 구워지기 시작한다. 붕어빵은 손님이 앉아 있는 테이블 바로 옆에서 굽는 오픈 키친이다. 첫 메뉴는 피자 붕어빵. 따끈 바삭한 겉면에 토마토 미트 소스와 치즈가 어우러진, 호불호 갈리지 않을 맛이었다.
20:30 대화 소재가 고갈되거나 찰나의 정적이 흐르면 사장님이 대화 카드를 꺼낸다. 한 명이 카드를 뽑아 적힌 질문을 읽으면, 그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 첫 질문은 '30년 동안 한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이었다. 피자, 김밥, 김치찌개,…. 다양한 답과 이유가 오간다. 다음 질문은 '최근 일어난 웃긴 사건은?'이다. 다들 재밌어할 이야기를 떠올려야 한다는 부담을 조금 느끼며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21:00 타코야끼, 바질크림치즈토마토, 핫도그 붕어빵이 이어 나왔다. 모든 메뉴가 특색이 있고 재료가 가득 들어가 있어 연달아 붕어빵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핫도그 붕어빵 위에 케첩으로 뿌릴 땐 고객의 요구에 따라 그림을 그려주는 맞춤형 퍼포먼스도 준비돼 있었다.
21:30 디저트 붕어빵으로는 견과류가 잔뜩 들어간 인절미 크림 붕어빵과 아이스크림을 얹은 누텔라 붕어빵이 나왔다. 술을 한두 잔 더 시키는 손님도 더러 있다. 누군가의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듣거나 사장님의 애창곡을 듣기도 한다. 자연스레 대화의 소재가 옮겨가고, 분위기도 무르익는다.
22:00 벌써 끝날 시간이라니! 사장님이 나눠 준 포스트잇에 방명록을 적는다. 너무 즐거웠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오늘의 만남을 기념하며 다 같이 붕어 머리띠를 착용하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폴라로이드는 가게 벽면에, 셀카는 떡붕 인스타그램에 올라간다. 사장님의 클로징 멘트를 들으니 다음 달 붕어빵 라인업에는 ‘트러플 감자 붕어빵’이 있다고. '다음 달에 또 올까?'하는 생각을 하며 어느덧 친근해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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