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활동성 중시 젊은 세대
상체만 덮는 ‘쇼트 패딩’ 인기
LF-노스페이스 등 신제품 잇따라
짧은 기장 탓에 스타일링 어려워… 상하의 같은 톤으로 우아하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겨울 아우터의 대명사는 무릎까지 덮는 롱패딩이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김말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렸던 롱패딩은 전 국민 옷장에 한 벌씩은 있는, 겨울철 필수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최근 겨울 아우터의 대세는 짧은 아우터다. 엉덩이를 덮지 않는 기장의 ‘쇼트 패딩’ ‘쇼트 다운’이 런웨이를 넘어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얼죽숏’(얼어 죽어도 쇼트 패딩)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쇼트 패딩의 인기는 올 시즌 들어 다채로운 패턴과 색상을 앞세워 트렌드를 굳혀가고 있다.
쇼트 패딩의 인기는 복고풍 의상에 대한 관심과도 연결돼 있다. 특히 1990년대 반짝 유행하다 잊혀진 푸퍼 스타일의 쇼트 패딩이 대세 아이템으로 주목 받고 있다. 여기서 푸퍼(Puffer)는 ‘부풀다’는 뜻의 영어 단어 퍼프(Puff)에서 나온 말로, 솜이나 오리털 또는 거위털 등의 충전재를 채워 넣어 부풀린 옷을 가리킨다. 보통 허리춤에 오거나 엉덩이를 살짝 덮는 짧은 기장의 패딩을 뜻한다. 가볍게 걸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방한 성능도 중요하지만 스타일은 놓칠 수 없는 1020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으며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10, 20대가 자주 이용하는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쇼트 패딩 판매액은 1년 전보다 14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패션업계도 스타 마케팅을 내세우며 발 빠른 대응에 나섰다. LF의 스포츠 브랜드 리복은 1990년대를 호령한 가수 이효리를 모델로 한 ‘이효리 펌프 패딩’을 내놓으며 주목을 받았다. 출시 첫날 오전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는 동시 접속자 1만3000명이 몰렸고, 약 800명의 접속 대기 인원이 발생하기도 했다. 배우 수지와 한소희를 각각 모델로 한 아웃도어 브랜드 K2와 휠라도 푸퍼 스타일의 패딩을 주력 아이템으로 내세웠다. 쇼트 패딩의 원조 겪인 노스페이스 역시 배우 차은우를 모델로 한 쇼트 패딩 컬렉션을 선보이는 등 패션 기업들이 앞다퉈 관련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추세다.
갑작스러운 인기 때문일까. 쇼트 패딩에 대한 질문 중 상당수는 ‘어떻게 입어야 멋있느냐’다. 자칫 잘못하면 촌스러운 패션이 되기 쉽게 때문에 쇼트 패딩 스타일링은 입기 전에 철저하게 계산할 필요가 있다.
해답은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에서 찾을 수 있다. 런웨이에 소개된 제품의 반 이상을 짧은 기장의 패딩으로 채운 루이비통을 참고해보자. 실키한 소재의 큼직한 패딩 재킷에 여유 있는 실루엣의 셔츠와 팬츠를 더해 갑갑함을 덜어내는 식이다. 이때 상하의를 같은 톤으로 맞추면 잘 차려 입은 슈트만큼이나 우아한 분위기를 가진 아이템으로 격상시킬 수 있다. 클래식 스타일의 대가 르메르도 마찬가지. 오버사이즈 쇼트 패딩에 셔츠와 팬츠, 로퍼로 단정하게 조합해 군더더기 없는 스타일을 완성했다.
격식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유니크한 스타일을 만들어 줄 쇼트 패딩은 사카이 컬렉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갈한 슈트 위에 아노락 스타일의 패딩 점퍼를 턱 끝까지 채워 입고 발라클라바를 더하면 패션 리더의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VTMNTS와 베르사체도 눈여겨볼 만하다. 올 블랙 룩으로 연출한 쇼트 패딩은 일상 생활에서도 한 번쯤 시도해보고 싶을 만큼 스타일리시한 감각을 자랑한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듯한 쇼트 패딩으로 예술작품 같은 컬렉션을 탄생시킨 드리스 반 노튼도 있다. 체크 셔츠, 후드 집업, 카무 팬츠, 크로스 백, 선글라스 등 스포츠와 유틸리티가 결합된 캐주얼하고 일상복의 진수를 선보인 지방시와 타미힐피거도 참고할 만하다.
일각에서는 쇼트 패딩의 유행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부담이 커지면서, 롱 패딩을 잇는 ‘등골 브레이커’가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한파가 지속되면 다시 롱 패딩을 찾는 이가 늘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쇼트 패딩의 유행은 보온성과 활동성을 모두 얻고 싶은 요즘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유행을 타지 않으면서 오래 입을 수 있는, 내게 딱 맞는 아우터를 고르려는 현명한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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