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갑진년을 앞두고 희망보다 걱정이 앞선다는 중소기업인이 많다. 당장 내년 1월부터 50인 미만 사업장도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의 적용을 받게 된다. 중소기업중앙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의 80%가 ‘아직 법 시행에 준비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기업은 1.2%에 그쳤다.
법상 의무를 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1년 이상 징역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소규모 사업장은 사업주가 구속되거나 징역형을 받으면 폐업에 내몰릴 수 있다. 기업이 무너지면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지역 경제도 활력을 잃는다. 중소기업중앙회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처법 2년 유예를 주장해온 이유다.
모든 기업에서 근로자의 생명과 안전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현장에 가보면 영업부터 제품 개발, 때로는 기계까지 직접 돌리면서도, 안전 보건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사업주가 많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다수 중소기업이 준비하지 못한 데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 중처법은 제정 당시부터 의무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준수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계속 있어 왔다. 또 인력 확보, 예산 수립, 유해·위험 요인 개선절차 마련·점검 등 관리적 조치를 요구하고 있어 사업주가 혼자 다 챙길 수 없다는 목소리도 많다.
특히 법 시행 이후 중소기업에서는 안전 전문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외부 컨설팅을 맡기려면 비용이 수천만 원에 달해 영세 중소기업엔 부담이 적지 않다. 최소한 사업주가 노력하면 준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다음에 법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국민의힘 지도부는 최근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중처법 유예 법안 통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조건부지만 취지에 공감했다. 중소기업의 목소리에 여야가 모두 화답한 것이다.
노동계 등에서는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법을 준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법을 적용하는 것은 ‘중대재해 예방’이란 입법 취지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전은 공짜가 아니다.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경영 여건이 어려운 영세 중소기업들은 정부 지원이 절실한데, 내년도 지원 예산은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중대재해 예방 지원은 중처법에도 근거가 있고, 올해 3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정이 확대하기로 합의한 사항이기도 하다.
유예기간을 2년 연장해 중소기업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정부의 예산 지원을 대폭 확대해 중소기업의 안전보건 수준이 획기적으로 향상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중소기업중앙회도 중소기업에서 중대재해를 감축하는 데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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