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자들, 호주·UAE·미국·캐나다로 이민 러시

  • 주간동아
  • 입력 2023년 12월 16일 09시 15분


[돈의 심리] 상속세가 가장 큰 이유… 35억 부자, 국적 바꾸면 10억 절세

10억 원을 줄 테니 교도소에 들어가 1년간 살라고 하면 교도소에 들어가겠는가. 이는 돈에 어느 정도 가치를 두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많이 인용된다. 교도소는 자유가 없고 또 교도소에 들어간다는 건 범죄를 저지른다는 의미다. 돈 10억 원을 위해 그런 짓을 하겠는가.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10억 원을 선택할 리 없다. 그런데 설문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절반 정도가 그 돈을 받고 교도소에 가겠다고 응답한다. 2018년 법률소비자연맹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51%가, 2019년 흥사단 조사에서는 고교생 57%가 교도소에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또 2020년 법률소비자연맹 조사에서는 대학생 45%가 교도소에 가겠다고 응답했다. 질문은 단지 교도소에 가겠느냐고 물었을 뿐, 실제 어떤 범죄를 저지를 것인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10억 원을 위해 실제 범죄를 저지를 것이냐고 물으면 이 비율은 많이 감소할 것이다. 하지만 돈을 위해 교도소에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 과도한 상속세로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이가 늘고 있다. [GETTYIMAGES]
최근 과도한 상속세로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이가 늘고 있다. [GETTYIMAGES]


한국 부자 이민율 1위
10억 원을 받기 위해 교도소를 선택하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적잖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한국 국적 포기 시 10억 원을 준다면?” 10억 원을 받고 한국을 배반하는 매국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매국노가 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을 배반할 필요도 없고, 한국에 해가 되는 일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다른 나라 국적을 얻기만 하면 된다. 한국을 완전히 떠날 필요도 없다. 외국 국적을 가지고 한국에서 계속 살아도 된다. 그냥 한국 국적을 다른 나라 국적으로 바꾸면 10억 원을 벌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교도소에 가는 것과 10억 원을 맞바꿀 수 있다는 사람이 절반가량이나 된다. 그렇다면 국적을 바꾸는 것으로 10억 원이 생긴다면 국적을 바꾸려는 사람도 최소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실제 “10억 원을 줄 테니 교도소에 갈래”라고 제안하는 경우는 현실적이지 않다. 돈을 주고 범죄를 사주하는 사람, 돈을 받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있지만 그렇더라도 10억 원까지 주지는 않는다. 반면 국적을 바꾸면 10억 원이 생길 수 있다는 건 현실적이다. 한국은 상속세가 세계적으로 높은 나라다. 재산이 35억 원 정도 있으면 상속세로 10억 원을 낸다. 배우자가 있고 재산이 40억 원가량인 사람은 10억 원이 상속세다. 이 사람이 미국이나 캐나다 국적을 취득한다면 상속세가 0원이다. 미국이나 캐나다로 국적을 바꾸면 상속세 10억 원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재산이 많으면 절약되는 돈은 더 커진다. 50억 원을 가진 사람은 17억 원을, 100억 원을 가진 사람은 40억 원을 절약할 수 있다. 한국을 떠날 필요도 없고, 한국에 해로운 활동을 하는 매국노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한국 국적만 포기하면 이 정도 돈이 생긴다. 그럼 생각해볼 일 아닌가. 10억 원이면 교도소도 가는데, 단지 국적을 옮기는 것만으로 10억 원이 생긴다면 더 쉬운 일 아닐까.

최근 국제투자이민 컨설턴트사 헨리 앤드 파트너스가 순자산 100만 달러(약 13억 원) 이상 부자들의 국제 이주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순자산 100만 달러 이상인 사람이 외국으로 이주한 1등 국가는 중국으로 올해 1만3500명 정도로 예측된다. 그 뒤 순위는 2위 인도 6500명, 3위 영국 3200명, 4위 러시아 3000명, 5위 브라질 1200명, 6위 홍콩 1000명, 그리고 7위가 한국으로 800명이다. 이 사람들이 이주한 국가는 호주,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 미국, 스위스, 캐나다 등이다.

부자가 외국으로 떠나는 국가 1위가 중국인 것은 이해된다. 현재 중국은 공동부유를 외치며 부자들을 옥죄고 있다. 재산을 언제 어떻게 모두 빼앗길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많은 중국 부자가 외국으로 나가고 있다. 영국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영향으로 보이고, 러시아는 전쟁 중이니 이주자가 많을 수 있다. 홍콩도 중국화되면서 사람들이 이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합당한 이유가 있는 나라들에서 부자들이 이주를 선택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한국 부자들이 한국을 뜨고 있다. 한국 사회에 부자들이 살기 어려운 뭔가가 있다는 뜻이다.

한국 부자 이민자는 매해 800명으로 예측되는데, 그렇게 많지 않은 거 아니냐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한국 인구 5000만 명 가운데 매해 800명이 외국으로 이주하고 있다. 중국은 10억 명 중 1만3500명이다. 한국 인구가 10억 명이라고 가정하면 매해 부자 1만6000명이 외국으로 이주한다는 뜻이다. 중국보다 많다. 실질적으로 부자가 가장 많이 떠나는 국가가 한국이다.

서구 국가들, 과거 상속세 높였다가 확 줄여
왜 한국 부자들은 외국으로 떠날까. 한국 교통 시스템과 의료보험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치안도 한국만큼 좋은 데가 없다. 많은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 오려고 애쓴다. 혹자는 한국은 물가가 비싸서 물가가 싼 외국으로 이주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건 답이 아니다. 한국 부자는 물가가 싼 동남아로 이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보다 생활비가 더 들어가는 미국, 캐나다, 호주로 간다.

한국 부자가 한국을 뜨겠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상속세다. 10억 원이면 교도소에도 갈 수 있다. 그런데 35억 원 부자가 상속세 없는 나라로 국적을 바꾸면 10억 원이 생긴다. 25억 원 부자도 국적을 바꾸면 상속세 6억 원을 건질 수 있다. 이 정도면 해외 이주를 생각할 만하지 않나. 더구나 상속세가 없는 나라는 유럽, 캐나다 등 선진국이다. 미국은 상속세율이 높기는 하지만 130억 원 이상 재산이 있을 때나 상속세를 낸다. 외국으로 이주하는 것만으로도 최소 몇억 원은 건진다.

개인적으로 이전에는 상속세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재산이 있으면 상속세를 내도 별 상관없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100억 원에서 상속세 40억 원을 내도 60억이 남는다. 60억 원이면 충분히 큰 부자 아닌가. 별문제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상속세를 내야 하는 대상이 된 건 몇 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상속세로 최소 몇억 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되고서야 알았다. 상속세는 단순히 세금을 내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다. 경제활동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친다. 내가 앞으로 돈을 더 번다고 해보자. 지금부터 뭔가 새로운 일을 해서 10억 원을 벌 자신이 있나. 솔직히 없다. 새로운 일을 시작해 10억 원을 벌 수도 있겠지만 말아먹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런데 10억 원을 확실히 건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상속세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부자 이민 비난하기 어려워
상속이 얼마 남지 않은 기업을 생각해보자. 상속세를 줄이려면 사업을 더 늘려서는 안 되고 있던 사업도 줄여야 한다. 이익을 올려서 얻는 이득 증대 분보다 이익을 줄여서 얻는 상속세 절감 이득이 더 크다. 사업을 잘해 이익을 얻는다 해도 10% 이익률이면 정말 잘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속세를 줄이는 작업은 수익률이 50%다. 사업을 잘하는 것보다 주가를 떨어뜨리고, 근로자 수를 줄이며, 사업 규모를 축소하는 것이 수익률 면에서 더 좋다. 아예 사업을 접고 이민을 가면 전 재산을 지킬 수 있다.

상속세를 찬성하는 사람은 100억 원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40억 원을 걷고, 이 40억 원을 공공을 위해 사용하면 더 좋은 사회가 된다고 본다. 물론 그렇게 되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100억 원을 가진 사람은 상속세로 40억 원을 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부자라서 싫어하는 건 아니다. 자기 재산의 절반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면 누구나 싫다. 결국 100억 원 부자는 상속세가 없는 외국으로 가버린다. 40억 원을 공공재원으로 사용하려다 100억 원 자체가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유럽 등 서구 국가도 원래는 상속세가 높았다. 그런데 상속세 때문에 국가 재산이 자꾸 외국으로 빠져나가자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확 줄였다. 상속세로 40억 원을 걷지 못하더라도 100억 원이라는 돈이 외국으로 나가는 것보다 나라에 남아 어떤 방식으로든 사용되는 게 보통 사람에게는 훨씬 도움이 된다.

물론 부자들이 “상속세를 내기 싫어 이주한다”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는다. 애들 교육 때문에, 가족이 외국에 있어서, 살아보고 싶어서 등등 다양한 이유를 든다. 하지만 그 깊은 곳에는 상속세 문제가 있다. 실제로 지금 한국 부자가 외국으로 이주하면 큰 재산을 절약할 수 있다. 사람들은 상속세를 내기 싫어 외국으로 나가는 부자를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10억 원을 위해 교도소에 갈 수 있다는 사람이 절반가량이나 되는 게 우리 사회다. 10억 원 넘는 돈을 챙기려고 국적을 바꾸는 부자를 비난만 하기 어려운 이유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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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주간동아 1419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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