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올해 상반기(1∼6월)부터 실시한 랩어카운트·신탁 운용 실태 검사에서 증권사들이 온갖 위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거액 자금을 예치한 법인 고객을 잡아두기 위해 과도한 경쟁을 벌인 결과다. 금감원은 9개 증권사의 임직원 30명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통보할 계획이다.
17일 금감원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채권형 랩·신탁 잠정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랩·신탁이란 증권사가 고객과 일대일 계약을 맺고 자산을 운용하는 금융상품이다. 다수의 고객 자금을 운용하는 펀드와 달리 개별 고객의 수요, 투자 성향을 반영할 수 있어 법인들의 대표적인 재테크 수단으로 꼽힌다. 금감원은 올해 5월부터 9개 증권사(교보·미래에셋·유진·하나·한국투자·키움·NH투자·KB·SK)의 랩·신탁 실태를 집중 검사해 왔다.
금감원의 검사 결과 증권사들은 우량 법인 고객 계좌의 목표수익률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위법행위를 펼쳤다. 우선 증권사들끼리 서로 짜고 불법 자전거래를 하면서 고객의 투자 손실을 다른 고객에게 전가했다. 한 증권사가 만기가 도래한 고객의 기업어음(CP) 등을 다른 증권사로 하여금 시세보다 비싸게 사게 하고, 그 대신 만기가 남은 다른 고객의 계좌를 통해 상대 증권사의 유사한 CP를 비싸게 사주는 식이다. 고객의 수익률을 보장해주기 위해 회삿돈(자기자본)을 동원한 사례도 이번에 확인됐다.
고객과 약속했던 만기와 신용등급을 벗어난 금융상품에 투자한 사례도 다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이 단기로 자금을 맡아 달라고 했는데도 높은 수익률을 내기 위해 유동성이 낮은 장기 채권을 편입해 운용하는 식이었다. 일부 증권사의 경우 만기불일치 등으로 인해 고객의 환매 요청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자, 새 고객의 투자금을 기존 고객에게 지급하는 돌려막기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권사들은 이런 식의 운용 방식이 업계의 관행이었다는 해명을 하고 있다.
금감원은 9개 증권사의 임직원 30명에 대해선 업무상 배임 소지가 있다 보고 주요 혐의 사실을 수사당국에 제공할 방침이다. 감독 소홀, 위법행위 묵인 등의 혐의로 징계 등 행정 처분을 받게 될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도 생길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투자자들도 금융상품에 가입할 때 증권사가 과도한 목표 수익률을 제시하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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