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은 최근 “정부의 물가 안정화 시책에 동참하려 내년 1∼3월 출발 항공권 할인을 진행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수년간 항공업계를 취재해온 기자로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항공사들에는 여름휴가 시즌만큼이나 겨울철 성수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최대한 수익을 올려야 비수기를 버텨낼 수 있다. 공급보다 수요가 월등히 많은 이 시기에 할인 행사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른 항공사들의 시각도 비슷했다. 대한항공이 스스로 할인에 나섰을 리 없다는 것이다. 항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토교통부가 물가 잡기 일환으로 운임을 낮추라고 요청했고, 대한항공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이를 수용했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제야 ‘정부의 물가 안정화 시책에 동참하려’라는 보도자료 내 문구가 이해됐다. 왜 성수기에 할인을 하는지, 유독 대한항공만 그러는지까지도.
비싼 항공운임을 할인하면 소비자들도 당장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기업이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가 아니라 정부 압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내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일시적으로 항공료를 내리면 항공사들은 어떤 식으로든 손해를 만회하려 할 것이다. 고객에게 돌아가던 서비스를 줄일 수 있고, 다른 시기의 항공권 가격을 올릴 수도 있다. 시장 왜곡에 따른 엉뚱한 피해자가 양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올 들어 물가 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라면값, 농수산물 가격, 통신비 등이 대표적인 타깃이다. 당연히 기업들에 가격 인상 자제를 강하게 요청했다. 서로 눈치만 보던 기업들은 원자재가 인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은 이달 들어 주류, 우유 등의 가격을 잇달아 올리고 있다. 한편으론 항공요금을 서민 물가로 봐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물가’를 외치니 국토부가 너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오스트리아학파의 거장인 자유주의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저서 ‘자유를 위한 계획’에서 우유 가격이 너무 높다고 가격을 통제하면 공급과 생산이 왜곡되면서 결국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사례를 적었다.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시장에 개입하는 일이 반복되면 점차 사회주의로 빠져들게 된다는 경고도 했다. 미제스는 윤석열 대통령이 2019년 검찰총장에 취임하면서 “사상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물가 안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특정 품목, 특정 기업을 향한 정부의 ‘두더지 잡기 식’ 정책은 금방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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