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 내몰리는 건설업계]〈상〉 줄도산 위기감 확산
위기의 건설업계… 551곳 폐업, 17년만에 최다
6월 건설사 법정관리로 올스톱
땅-건물 공매 내놔… 6차례 유찰
PF發 위기에 ‘돈맥경화’ 심화… “우량 사업장 대출부담 낮춰줘야”
이달 18일 오후 4시경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방배 신일해피트리’ 주상복합 공사 현장. 지하철 4·7호선 이수역에서 2분 거리인 역세권 알짜 땅으로, 여느 때라면 골조 공사로 레미콘트럭이 쉴 틈 없이 드나들어야 하지만 이날 현장은 적막하기만 했다. 자물쇠로 굳게 잠긴 주 출입구 철문 틈에는 먼지 쌓인 통신사 요금 명세서가 빼곡히 꽂혀 있었다. 짓다 만 건물 한복판에 수개월째 방치된 타워크레인만 덩그러니 서 있다.
이곳 현장이 멈춘 건 올해 6월 시공능력평가 순위 113위인 신일이 지난해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다. 당시 공정 45%에서 올스톱됐고, 시행사까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장에 실패해 1195㎡(약 362평) 규모의 땅과 공사 중인 건물이 공매로 나왔다. 서울 한복판 ‘더블 역세권’ 땅인데도 공매가 6차례 유찰되며 가격은 617억 원에서 364억 원으로 반 토막 났다. 공매 담당자는 “예전 같았으면 경쟁이 치열했을 텐데 입찰 참여자가 단 1명도 없었다”고 했다.
건설업계 자금 압박이 심화하며 건설사들이 줄도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올 들어 종합건설사 폐업이 급증해 17년 만에 최대치를 나타낸 데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건설사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대로라면 부동산 PF발(發) 위기가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잇달아 폐업·부도…“줄도산 위기”
19일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전국에서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총 551곳으로 전년(327곳) 대비 약 1.7배 급증했다. 이는 2006년(557곳) 이후 17년 만에 최대치다. 올 상반기(1∼6월) 112곳이었던 지방 건설사 폐업이 올해 하반기 들어 189곳으로 늘어나는 등 지방을 중심으로 폐업한 기업이 가파르게 늘었다.
자금난에 빠져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업체도 속속 나온다. 시공능력평가 908위인 광주의 해광건설은 만기가 된 어음을 막지 못해 이달 13일 부도 처리됐고, 이달 1일엔 285위인 경남 창원의 남명건설이 부도났다.
시행사들의 자금 압박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경기 오산시 일대에서 약 2600채 규모 대단지 아파트를 지으려는 시행사는 최근 브리지론 대출 연장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미 매년 200억 원씩 이자를 부담하고 있는데 최근 금융기관이 대출 연장 단위를 1년에서 3개월로 줄이고 발생한 이자를 먼저 낼 것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부동산 PF는 부지 매입과 인허가에 필요한 초기 자금을 조달하는 브리지론과 분양과 착공에 들어갈 자금을 조달하는 본PF로 나뉜다. 브리지론은 사업 초기 불확실성이 높아 금리가 높고 주로 증권사 등 제2금융권에서 대출한다. 그런데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이 브리지론 연장이 쉽지 않은 데다 본PF로도 제때 전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행사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매도 늘고 있다. 신탁사의 토지 매각 공매가 급증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개발사업 도중 대출 연장이나 상환에 실패한 시행사가 늘었다는 의미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온비드 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날까지 개찰이 진행된 신탁사의 토지(대지) 매각 공매 건수는 3346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년 동안 진행된 공매 건수(1418건) 대비 두 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특히 이렇게 넘어온 공매 중 올해 낙찰 건수는 46건으로 전체의 1.4%에 그친다. 금융사들이 일부라도 대출금을 회수하려면 공매가 빨리 진행돼야 하지만, 시장 여건이 워낙 나빠 자구책이라 할 수 있는 공매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자산 매각도 못 하는 상황이다.
● 중소 건설사, 대형 건설사에 “보증 서달라” 읍소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시행사들이 손을 들면서 보증을 섰던 건설사들이 PF 대출을 떠안으며 자금난이 전이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이달 15일 995억 원 규모의 경기 안성 가유지구 물류센터 PF 대출을 떠안게 됐다. 시행사가 대주단에 갚지 못한 PF 대출 금액을 책임준공을 약속한 HDC현대산업개발이 대신 떠안는 것이다.
중소·중견 건설사가 대형 건설사에 보증을 서달라며 읍소하는 일도 생긴다. 서울 강남구에서 진행 중인 약 3000억 원 규모의 주상복합 개발 사업 현장은 중소 건설사가 시공하고 시공 순위 5위권인 대형 건설사가 ‘책임준공’에 나섰다. 시공에 참여하지 않는데도 PF 대출의 위험만 나눠 부담하는 대가로 수수료 150억 원을 받기로 한 것. 건설업계 관계자는 “금융기관에서 PF 대출을 극도로 꺼리고, 실행한다고 해도 대형 시공사의 책임준공을 요구해 중소·중견 건설사들은 대형사에 읍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PF 부실로 인한 건설업계 자금난이 더 가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당분간 고금리가 유지되며 건설사 부담도 커질 것”이라며 “정부나 금융권이 현장별로 옥석을 가려 우량 사업장은 대출 부담을 낮춰주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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