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이 먼저일까, 이익이 먼저일까. 창업 초기 기업이 늘 고민하는 질문이다. 아마존은 빠르게 몸집을 불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전략으로 시장을 선점한 대표 성공 사례로 꼽힌다. 반면 학계에서는 이익이 우선시되지 않는 성장에 회의적 의견을 내비쳐 왔다. 2009년 호주 퀸즐랜드공대 연구진은 1990년대 중후반에 걸친 4년간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성장이 더디더라도 이익을 우선시한 기업이 궁극적으로 고성장, 고수익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1990년대 데이터로는 현재 모바일,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반영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4년이라는 데이터 수집 기간이 너무 짧다는 지적도 나왔다. 아마존만 해도 첫 수익을 창업 후 8년째인 2002년부터 실현했다. 프랑스 ISEG와 스트라스부르 경영대 연구진은 이 연구 결과가 오늘날에도 재현되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연구진이 유럽연합(EU) 중소기업의 약 40%에 해당하는 66만4629개 기업의 2011∼2019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익을 우선시한 기업이 성장을 우선시한 기업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게 나타났다. EU 기업 중 직원 10∼250명인 기업을 표본으로 삼았다. 구체적인 연구 방법은 2009년 퀸즐랜드대 연구진이 사용한 방법을 그대로 썼다. 연구 결과는 14년 전과 똑같았다. 초기에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기업은 나중에 오히려 저성장, 저수익 기업으로 전락하기 쉬웠다.
이 같은 재현 연구는 기업 초기부터 수익을 우선시해야 성공 확률이 높다는 학계의 주장을 다시 한번 검증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서로 다른 지역, 다른 기간에 해당하는 표본을 분석했는데도 기존 연구와 결과가 같았다. 66만 개가 넘는 유럽 중소기업의 8년에 걸친 데이터에서도 수익 우선 전략의 효과성이 확인된 것이다. 물론 내부 조직의 혁신을 통한 성장을 추구했는지, 외부 조직의 인수와 합병을 통한 성장을 추구했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는 있다. 하지만 초기 기업의 성장 우선 전략이 부실기업을 양산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2000년대 인터넷 버블 붕괴도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물론 에어비앤비, 테슬라 등 성장 우선 전략으로 시장 우위를 확보한 반례도 있지만 이 전략은 결코 스타트업의 금과옥조가 아니다.
그동안 현장에서는 수익보다 성장을 중요하게 여겼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의 창업자 폴 그레이엄은 “스타트업은 곧 성장이다”라고 말하며 유니콘 기업이 되려면 주간 10%는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많은 창업 프로그램, 정부 정책도 이 같은 견해를 바탕으로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성장 우선 전략을 통한 성공은 특별한 예외일 수 있다. 성공을 담보하고 싶은 창업가라면 모두가 외쳤던 성장에서 잠시 고개를 돌려 수익을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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