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극복의 새 길, 신중동]〈2〉 급성장 중동 누비는 K-자동차
현대차, 사우디 첫 공장 연내 착공… “2030년 중동시장 점유율 20% 목표”
탄소중립 발맞춰 전기차 제품 확대
현지매장 하루 100여명 몰려 인기… 이스라엘-이라크 한국차 판매 1위
《“K전기차로 중동서 도요타 잡겠다”
현대자동차는 1976년 바레인에 포니 40대를 수출하며 중동 시장에 첫발을 들였다. 기아는 한 해 전 카타르에 픽업트럭 10대를 수출하며 중동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총 50대로 출발했던 현대자동차그룹은 작년 1∼11월 34만3785대를 팔았다. 2022년 연간 판매량을 이미 넘어섰다. 현대차는 지난해 이스라엘에서 점유율 1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2위를 달렸다. 2026년 사우디에 연간 생산 5만 대 규모의 공장을 완공하고, 전기차 판매가 궤도에 오르면 중동의 강자 도요타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새로운 기회의 땅 중동 현장에서 현대차·기아의 질주를 살펴봤다. 》
“이곳도 몇 년 뒤에는 몰라보게 달라지겠죠.”
사우디아라비아 킹 압둘라 경제도시(KAEC)의 마케팅 업무를 돕는 왈리드 카라누 씨의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3일(현지 시간) 방문한 KAEC 현대자동차 반조립제품(CKD) 공장부지는 그의 말대로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올 상반기(1∼6월) 착공 예정인데, 이미 잡목을 뽑고 울퉁불퉁한 땅을 평탄화하는 1차 사전 작업은 지난해 말에 끝난 상태였다. 지금은 지평선까지 누런 흙이 끝없이 펼쳐진 허허벌판이지만 2026년 상반기가 되면 연간 생산 5만 대 규모의 현대차 공장이 완공될 예정이다.
카라누 씨는 “이미 공장 설계는 거의 다 마무리됐고 막바지 최종 조율을 마친 뒤 착공에 돌입할 것”이라며 “공장이 완성된 뒤 ‘사우디 생산’ 자동차가 시장에 풀리면 그때 인기는 엄청날 것이다. 전기차로 넘어가는 흐름을 현대차가 주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중동, 2030년 자동차 판매 300만 대 시장
현대차그룹이 중동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2030년경에는 2022년 대비 약 30% 커진 ‘연간 판매 300만 대’ 시장으로 급성장할 것으로 분석되는 중동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중동은 평균 연령 40세 미만의 청장년층 인구가 69.6%에 달할 정도로 ‘젊은 소비자’가 많다. 연평균 인구 성장률도 1.7%로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지금보다 미래가 더 기대되는 곳이다. 사우디 정부는 여성의 운전을 2018년부터 합법화하면서 여성 운전 인구가 늘고 있는 것 또한 자동차 시장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2030년쯤 55만 대를 판매하는 게 목표다. 시장점유율로 따지면 약 20%에 달한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사우디에 처음으로 중동 지역 생산 거점을 마련해 현지에서 선두를 내달리는 일본 도요타를 추월하겠다는 계획이다.
‘메이드 인 코리아’ 자동차의 인기는 이미 현지 판매 매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3일 사우디 제다 시내에 자리한 현대차 매장을 찾으니 500㎡(약 150평) 안팎의 실내에 방문객 20여 명이 몰려 북적거린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손님을 응대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던 한 직원은 “평일 기준 하루에 100∼150명이 매장을 찾는다”며 “그중에서 50명 정도는 계약과 관련해 구체적인 설명을 받을 정도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이튿날 찾은 인근 기아 매장의 판매 책임자인 제하드 므나이젤 씨는 “현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중에선 텔루라이드, 세단 중에선 K5 모델이 고객들한테 가장 인기 있다”며 “뛰어난 성능에 비해 가격대도 합리적인 수준인데 중국 차량과 비교할 때 더 고급스럽다는 인식도 있다”고 말했다. 제다 지역의 한 제네시스 매장 직원은 “출산율이 높아 고객들이 자녀 및 보모까지 함께 탈 수 있는 차를 선호한다”며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높은 SUV의 판매 비중이 높아 수익성이 좋은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 한국의 ‘7대 車 수출국’ 사우디
현대차그룹은 중동 시장에 오랫동안 공들여 왔다. 현대차는 1976년 바레인에 포니 40대를, 기아는 1975년 카타르에 브리사 픽업트럭 10대를 수출하며 첫발을 내디뎠다. 한국 건설업체들이 중동에 진출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온 1970, 80년대 ‘1차 중동 붐’ 시절에 이미 중동 시장의 잠재력을 알아본 것이다. 처음엔 고군분투했지만 50년 가까이 현지 경험을 쌓은 결과 이제는 인기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1∼10월 기준으로 중동 최대 자동차 시장인 사우디에서 현대차는 판매량 2위(9만4754대), 기아는 4위(3만9096대)를 차지했다. 그 다음 규모인 아랍에미리트(UAE)에서는 현대차가 4위(9974대), 기아가 5위(8526대)를 차지했다. 중동 주요 시장에선 대부분 도요타가 선두를 달리지만 이스라엘에서는 현대차(4만2210대)가, 이라크에서는 기아(2만7339대)가 각각 판매 1위를 차지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사우디(6만1859대)와 이스라엘(5만598대)은 각각 한국 자동차 기업의 7번째, 8번째 수출 시장으로 꼽힌다.
● “전기차 강화해 도요타 잡는다”
이제 한국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중동 지역은 아직 충전기 인프라가 많이 깔리지 않아 전기차 시장이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는 성장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우디의 경우 2030년까지 ‘연간 50만 대 전기차 생산’과 ‘수도 리야드의 전기차 비율 30%로 확대’를 목표로 내걸었다. 카타르 역시 2030년까지 전기차 보급률 10%를 달성하겠다는 등 중동 국가들도 글로벌 탄소중립 움직임에 발을 맞추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중동 전기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현지 전기차 제품군을 늘리고 있다. 현대차가 2022년 사우디에서 전기차를 팔기 시작한 후, 지난해 5월부터는 제네시스가 전동화 모델 판매에 가세했다. 올 1분기(1∼3월)에는 기아가 SUV 전기차 EV6와 EV9의 사우디 판매를 개시할 예정이다. 현대차가 2종, 제네시스가 3종을 이미 팔고 있고 기아까지 가세하면 현대차그룹이 사우디에서 판매하는 전동화 모델은 총 7종이 된다.
현대차는 2027년까지 전기차 제품군을 현재 대비 2배 이상으로 늘려 중동 판매 차량 전체 제품군 중 3분의 1을 전기차로 구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32년에는 중동 전체 판매량 중 전기차 비중을 15% 이상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유재선 현대차 아중동권역 마케팅 팀장은 “중동 시장 1위인 도요타가 전기차 시장에 적극적이지 않아 현대차는 전기차 시장 공략을 계기로 사우디에서 시장 1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내연기관차가 대세인 중동 국가에서 전기차 선호도가 높아지려면 여러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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