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 아가일, 스트라이프 코디
우아하고 클래식한 매력
‘올드 머니 룩’ 부상하면서 주목
미니멀한 실루엣과 디자인… 스쿨룩 오피스룩 경계 허물며 인기
‘엄친아’의 로망을 실현시켜줬던 소녀들을 기억하는가. 상류층 틴에이저다운 품격 있는 스타일로 눈을 사로 잡던 하이틴 영화 속 주인공들 말이다. 그중 레전드로 꼽히는 1996년 영화 ‘클루리스’에서 베벌리힐스 고등학교의 퀸카로 등장하는 얼리샤 실버스톤의 키치한 프레피 룩은 당시 10대들 사이에서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주로 셔츠와 플리츠 스커트에 니트 베스트나 재킷을 매치하고 니 삭스와 로퍼로 마무리하는 식. 스쿨 룩을 대표하는 체크, 아가일, 스트라이프 패턴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자유분방한 매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특징이다. 개봉한 지 3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MZ세대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다양한 레퍼런스가 되고 있다.
프레피 룩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의외의 영화가 있다. 바로 2001년 영화 ‘금발이 너무해’다. 호들갑 넘치고 화려한 볼거리가 난무하는 이 영화에서 냉철한 하버드대 법대생 셀마 블레어의 클래식한 패션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용히 빛을 발한다. 그가 ‘법정 룩’으로 자주 선보인 셔츠와 니트 베스트의 우아한 조합은 언제 봐도 흥미롭고,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다. 여기에 빈티지한 무드를 살리는 진주 목걸이와 헤어밴드까지 ‘셀마의 재발견’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2007년 시즌1을 시작으로 총 6개의 시즌도 모자라 최근 리부트작까지 방영하며 많은 팬을 양산한 미국 드라마 ‘가십걸’은 프레피 룩 유행에 본격적인 불을 지핀 작품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의 동쪽에 자리한 부촌인 어퍼 이스트사이드의 명문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다채로운 스쿨 룩은 프레피 룩의 교과서다. 우아하고 클래식하게, 힙하고 시크하게, 매 시즌 달라지는 주인공 레이턴 미스터와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스타일 변주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게 이어진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 스크린에서 보았던 프레피 룩이 이번 시즌 런웨이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Y2K가 저물고 집안 대대로 부유한 삶을 사는 상류층 패션을 의미하는 조용한 럭셔리, 이른바 ‘올드 머니 룩(Old Money Look)’이 트렌드로 급부상하면서 미니멀리즘이 컬렉션 전반을 침투했다. 프레피 룩도 더욱 간결하고 클래식한 무드로 업데이트됐다. 미니멀한 실루엣과 디자인으로 스쿨 룩과 오피스 룩의 경계를 허물며 품격을 높인 것이 이번 시즌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럭셔리 프레피 룩의 대표주자는 단연 미우미우. 프레피 룩의 전형인 폴로 셔츠와 플레어 미니 스커트에 정갈한 미우미우 로고를 새겨 넣은 블레이저를 얹은 미우미우의 모델은 우아한 카리스마를 그려냈다. 포인트는 로 라이즈 실루엣으로 슬쩍 드러낸 스포츠 언더웨어. 덕분에 힙한 무드가 한 스쿱 더해졌다. 미우미우 고등학교가 있다면 이런 교복 느낌이 아닐까! 그런가 하면 루이비통은 광택이 흐르는 고급스러운 옐로 베이지 컬러 블레이저와 플리츠 스커트 콤보로 스쿨 룩의 앙상블을 기품 있게 재현했다.
누구나 하나쯤은 장롱 속에 갖고 있을 법한 체크무늬 셔츠와 니트 카디건의 조합을 내세운 샤넬과 로에베도 있다. 하의로는 각각 하프 팬츠와 플레어 스커트를 선택해 한결 편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톤온톤으로 구성한 클래식 스커트 슈트를 다수 선보인 구찌 역시 사립학교 자제처럼 럭셔리한 프레피 룩을 연출했다. 다양한 굵기의 체크 재킷과 스커트 셋업으로 좀 더 자유분방한 무드를 드러낸 MSGM과 안드레아스 크론탈러 포 비비안 웨스트우드도 빼놓을 수 없다. 전통적인 프레피 룩 무드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한 무릎까지 당겨 신은 니 삭스와 샌들의 매치도 눈여겨볼 만하다.
프레피 룩이 여고생을 위한 옷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번 시즌에는 용기를 내봐도 좋겠다. 반가운 사실은 굳이 새롭게 쇼핑 카트를 채우지 않더라도 충분히 트렌드에 편승할 수 있다는 것. 학생 시절 이후 옷장 속에 고이 접어둔 폴로 니트 스웨터와 플레어 미니 스커트를 소장하고 있다면 말이다. 포근한 봄을 알리는 3월이 다가오면 오버사이즈 코트나 재킷을 받쳐입고 거리로 나가볼 것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그 시절 향수를 일깨워 준 멋진 소녀들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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