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막스플랑크硏 이끌 차미영 교수
노벨상 31명 배출 ‘기초과학 성지’… ‘상대성이론’ 아인슈타인도 거쳐가
코로나 팩트체크 151개국에 전파… “우리 삶 나아지는 연구 이어갈 것”
세계적인 기초과학 연구기관이자 ‘노벨상 사관학교’라고 불리는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첫 한국인 단장이 나왔다. 차미영 기초과학연구원(IBS) 데이터사이언스 연구그룹장(KAIST 전산학부 교수)이 주인공이다. 9일 대전 IBS 사무실에서 만난 차 그룹장은 “아직 얼떨떨하다”며 “우리의 삶이 좀 더 나아지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뮌헨에 본부를 두고 있는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독일 전역과 해외에 총 85개 산하 연구소와 300여 개의 연구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 그룹마다 단장이 있다. 차 그룹장은 독일 보훔에 있는 막스플랑크 보안 및 정보보호 연구소 내 ‘인류를 위한 데이터 과학’ 연구 그룹의 단장으로 선임돼 6월부터 일한다.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기초과학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전신이었던 카이저빌헬름 연구소를 포함해 총 3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상대성이론’으로 유명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이곳 출신이다. 이 연구소에 한국인이 단장으로 선임된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8월 강사라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교수가 막스플랑크 기후과학 연구소 단장으로 선임된 적이 있지만 그는 미국 국적자다.
차 그룹장은 막스플랑크 연구소가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배경으로 독특한 ‘연구 철학’을 꼽았다. 그는 “막스플랑크는 기존의 연구자와 유사한 연구를 하는 연구자를 절대 뽑지 않는다”며 “300여 개의 연구 그룹 중 같은 연구를 하는 그룹은 단 한 곳도 없다”고 말했다. 새로운 연구를 하면서 10년간 논문 한 편 쓰지 않아도 질책하지 않는다. 연구 주제를 바꿔도 무방하다.
이런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철학은 차 그룹장과 잘 맞았다. KAIST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토종 한국인’인 차 그룹장은 “대학 시절 ‘최고’, ‘최초’, ‘유일’한 연구 중 하나의 조건은 만족시켜야 좋은 연구라고 배웠다”며 “지금까지 세 가지 조건 중 ‘최초의 연구’에 주력해왔다”고 말했다.
차 그룹장이 개척한 분야는 데이터를 활용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다. 차 그룹장은 허위정보 문제가 본격 불거지기 전인 2012년부터 인터넷 속 혐오 표현과 허위정보에 대해 분석해왔다. 이 연구를 기반으로 2020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허위정보를 팩트체크해 151개국에 전파하기도 했다.
차 그룹장은 과학자로서 몰입할 수 있었던 힘을 ‘지루한’ 어린 시절에서 찾았다. 강원 춘천에서 자란 그는 “TV나 각종 놀잇감이 부족해 혼자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그 덕에 하나에 몰입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별이 형성되는 과정을 배운 뒤 눈을 감으면 별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고 했다.
차 그룹장은 “TV보다는 음악이나 책처럼 상상의 폭이 넓은 콘텐츠를 즐긴다. 과학을 연구할 때도 상상력이 넓어진다”며 “과학자는 나를 어디에 노출시키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독일 이주를 앞두고 있는 차 그룹장은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올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 그는 “막스플랑크 연구소는 교수와 학생이 일대일로 계약을 맺지 않고, 연방노동청이 정해놓은 연봉테이블에 따라 월급을 받는다”고 전했다. 교수와 학생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적이기 때문에 더 자유로운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 그룹장은 “KAIST의 배려로 교수직을 유지하게 됐지만 한국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힘들 것 같다”며 “하지만 연구 협력을 통해 한국 학생들의 연구 역량을 높이는 데 계속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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