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민의힘이 총선을 3개월 앞두고 연체된 채무를 전액 상환한 대출자에 대한 신용회복을 지원하기로 했다. 금융 소외층의 재기를 돕는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지만 성실 상환 대출자에 대한 역차별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신용사면으로 인해 일부 대출자의 ‘도덕적 해이’가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1일 국회에서 열린 ‘서민·소상공인에게 힘이 되는 신용사면 민당정 협의회’를 마친 뒤 브리핑을 통해 “연체 채무 전액 상환자 최대 290만 명에 대한 신용회복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며 “금융권은 신속히 신용회복 지원 방안을 마련해 이르면 내주 초 협약을 체결하고 조치를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용사면이란 신용점수가 낮은 소비자의 정상적인 금융활동을 돕기 위해 연체 기록을 삭제해주는 것이다. 2021년 9월부터 이달까지 2000만 원 이하 연체자 중 올해 5월 말까지 전액 상환한 취약계층이 대상자다.
당정이 이같이 협의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서민들이 고물가 등으로 힘겨워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코로나19 기간 서민들의 대출 통신요금 등의 연체 기록을 삭제해주는 것”이라며 “약 700만 명의 소상공인 가운데 290만 명이 혜택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정책위의장도 “지난 정부에서도 신용사면을 추진했던 만큼 취지에 공감한다”며 “어려운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이 신속히 마련되기를 희망한다”고 지지를 표했다.
당정은 금융 채무와 통신 채무를 통합하는 취약계층 채무조정 기능도 강화하기로 했다. 신속채무조정 이자 감면 폭을 현행 30∼50%에서 50∼70%로 확대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 대한 신속채무조정 특례도 확대한다. 당정은 이를 통해 연간 5000명 정도의 수급자가 상환 부담을 덜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이번 신용사면에 대해 빚을 제때 갚아온 대출자에 대한 역차별이란 지적이 나온다. 취약계층의 경제 부담을 덜어줄 수는 있겠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연체를 남기지 않으려 노력해온 이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만성적인 신용사면 정책이 금융시장의 건전한 질서를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연체자들 사이에서 ‘경기 어렵고 금리 높으면 신용사면을 또 해주겠지’라는 믿음이 확산될 수 있다”며 “이 같은 기류로 인해 대출자의 도덕적 해이가 심화된다면 금융 시장의 질서를 저해하는 안 좋은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